[비하인드베이스볼] 확신에 찬 투구, 포수 손가락에 달렸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5월 19일 06시 40분


야구는 투수의 경기일까 아니면 포수의 경기일까. 18.44m 거리에서 사인으로 말을 주고받는 배터리를 부부라고 부른다. 오래 산 부부는 말이 없어도 서로를 이해하지만 배터리는 사인의 내용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18일 사직구장에서 넥센의 포수 허도환(왼쪽)과 투수 오재영이 마운드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직|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bluemarine007
야구는 투수의 경기일까 아니면 포수의 경기일까. 18.44m 거리에서 사인으로 말을 주고받는 배터리를 부부라고 부른다. 오래 산 부부는 말이 없어도 서로를 이해하지만 배터리는 사인의 내용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18일 사직구장에서 넥센의 포수 허도환(왼쪽)과 투수 오재영이 마운드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직|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bluemarine007
김경문 감독 “사인 내는 속도 매우 중요”
빠른 포수 리드, 투수 공에 자신감 심어
신중하다 보면 사인 늦어져 불안감 야기

타자 분석·빠른 머리 회전 뒷받침 돼야

야구는 스피드의 경기다. 투수가 던지는 공의 스피드는 하나하나 전광판에 찍히고 관중들은 빠른 공의 스피드에 환호한다. 타자가 휘두르는 배트 스피드는 공과 충돌해 짜릿한 파열음을 낸다. 주자의 발은 야수가 던진 공과 스피드 경쟁을 펼친다. 그러나 팬들은 물론 상대팀도 잘 알 수 없는 숨겨진 스피드가 있다. 바로 포수 손가락 스피드다.

‘야구는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현대야구, 특히 프로야구의 시작은 그에 앞선 포수의 사인이다. 특히 메이저리그에 비해 한국프로야구는 ‘어떤 공을 던질 것이냐’의 첫 판단을 포수가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포수 출신인 NC 김경문 감독은 “사인을 내는 손가락의 스피드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현역시절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경계했던 부분인데, 경력이 쌓이면서 조금 더 뭘 안다고 이것저것 더 따지고 신중하다 보니 손가락이 펴지는 속도가 느려지더라. 투수 입장에서는 ‘아 포수가 망설이는 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포수가 확신에 찬 모습으로 신속히 사인을 내고 ‘내가 다 책임질 테니 믿고 던져라’고 했을 때와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손가락이 펼쳐지며 표현되는 사인이지만 빠른 머리회전과 상대 타자를 분석하는 예리한 눈, 그리고 경험에서 나오는 직감까지 매우 종합적인 판단이다. 그만큼 포수마다 스피드가 다를 수밖에 없다.

투수는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직업 중 하나로 꼽힌다. 특급 투수라 할지라도 컨디션이나 아주 작은 환경변화에 따라 형편없는 공을 던지기도 한다. 그만큼 투수를 리드하는 포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LA 다저스가 박찬호의 전성기 때 많은 손해를 감수하고 전담포수를 인정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물론 신중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포수가 투수의 리듬을 방해서는 안 된다. 젊은 포수들이 시원시원하게 좋은 투수 리드를 보여줄 때가 있다. 확신에 찬 사인을 빨리빨리 내면서 투수의 자신감을 끌어 올릴 때 이런 결과가 자주 나온다”고 덧붙였다.

명 투수 출신인 롯데 김시진 감독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투수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공과 코스를 포수가 재빨리 똑같이 사인을 내면 아무리 강타자가 타석에 있어도 절대 안 맞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는 말을 했다. 확신에 찬 포수리드가 갖는 위력을 투수 입장에서 느낀 부분이다.

반대로 포수의 사인에 투수가 망설이는 경우는 어떨까. 김경문 감독은 “공격형이 아닌 경우 포수의 주 임무는 우리 투수의 입장에서 상대 타자를 분석하는 것이다. 투수가 망설이면 포수가 자기 가슴을 치며 ‘날 믿고 던져라’고 확신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많이 공부하고 준비해왔는데 투수가 계속 고개를 흔들어버리면 그날 계획이 엉망이 된다. 그 다음부터는 투수가 선택하도록 의미 없는 사인이 나온다. 그럴 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경기는 많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잠실|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트위터 @rushlkh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