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피플] KIA 최향남, 아름다운 ‘138km’ 돌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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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7일 07시 00분


타이거즈 유니폼만 3번째로 입은 ‘풍운아’ 최향남이 마무리를 맡았다. 과연 40대 투수의 마지막 불꽃은 어떻게 빛을 발할까. 사진제공|
타이거즈 유니폼만 3번째로 입은 ‘풍운아’ 최향남이 마무리를 맡았다. 과연 40대 투수의 마지막 불꽃은 어떻게 빛을 발할까. 사진제공|
소속팀 없이 1년 방황 ‘마음 비운 역투’
이승엽도 삼진 마무리…‘여우투’ 빛나
“볼넷은 싫다”…관중들 맘까지 헤아려


어두운 불황의 터널, 마흔을 넘긴 사내들은 어깨가 처진다. 그러나 시속 138km의 느린 직구를 연속해서 한 가운데로 던져 삼진을 잡는 마흔 둘 노장 투수의 모습을 보며 신이 난다. 20대의 패기도, 30대의 열정도 아주 예전 같이 느껴지지만,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다시 돌아온 그의 역투는 다시 한번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핀다.

KIA 선동열 감독은 26일 잠실 LG전에 앞서 “지금 우리 팀 마무리는 최향남이다”고 말했다. 20일 최향남은 대구 삼성전에서 0-0으로 맞선 10회말 마운드에 오른 최향남은 온 힘을 다해 던져도 가장 빠른 공이 시속 138km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미련 없이 한 가운데로 공을 꽂았다. 최형우는 1루 땅볼 아웃, 이승엽은 삼진. 이날의 자신감 넘치는 투구를 지켜본 선 감독은 고민 없이 최향남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그리고 “150km를 던지면 뭐하나. 자신이 없어 볼, 볼, 볼, 볼, 그러다 꽝 맞으면 아무 필요 없다. 최향남은 빨라야 140km 정도일 텐데 오직 직구 하나로 승부한 적도 있다. 그게 투수다”고 말했다.

이날 다시 붉은 색 유니폼을 입고 잠실구장에서 LG와 경기를 앞둔 최향남의 감회는 특별했다. 타이거즈는 그가 처음 프로에 데뷔한 곳이자 3번째로 다시 정착한 고향팀이고, LG는 한때 에이스로서 활약했던 팀이다. 최향남은 최태원 LG 코치가 지나가다 인사를 하자, 유니폼을 만지작거리며 “우와 예전에 제가 입었던 옷과 디자인이 똑같아요”라며 웃었다.

한국 나이로 마흔 둘, 그것도 지난해 소속팀이 없어 1년간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투수가 다시 팀의 승리를 지켜야 하는 마무리가 됐다.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던 용감함 모험가는 의외의 답을 꺼냈다. “솔직히 지난해 마음을 비웠다. ‘이제 끝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다시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것 자체가 너무 기쁜 일이다.”

도무지 포기라는 단어를 모를 것 같던 최향남도 그렇게 아무도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손에서 공을 놓지는 않았다. 혹시 모를 마지막 기회가 올 수도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미국 휴스턴에 한국 중학생들이 유학을 가서 영어도 배우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야구를 할 수 있는 학교가 있다. 거기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혼자 운동을 했다. 개인훈련이 사실 쉽지 않지만, 나야 워낙 경험이 많아서 이제 노하우가 생겼다”며 지난 1년간을 돌아봤다.

최향남의 최근 별명은 ‘퇴근본능’, ‘향운장’이다. 감독만큼이나 관중에게도 투수의 볼넷은 싫다. 거침없이 한 가운데 공으로 승부하는 모습은 더운 여름 시원시원해 더욱 보기 좋다. 특히 이승엽을 삼진으로 잡은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정면승부의 비결을 묻자 눈이 반짝인다. “스스로 밸런스가 완벽하다고 느끼면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가 타석에 서 있어도 절대 못 친다. 삼진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던진다.”

역경을 이겨낸 40대 투수의 공에는 어떤 스피드건도 측정할 수 없는 열정과 관록이 묻어 있었다. 야구가 선물하는 매력, 그리고 감동에는 끝이 없다.

잠실|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트위터 @rush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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