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욱 7년만에 PGA 첫승… 저스틴 팀벌레이크 오픈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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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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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급 신동’ 불리다 210번 쓴맛… 첫승 열매 더 달았다

재미교포 나상욱(28·타이틀리스트)은 ‘1000만 달러의 사나이’다. 2004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데뷔한 뒤 지난달까지 그가 받은 상금은 1025만4294달러(약 121억 원)나 된다.

PGA투어 프로 골퍼가 1000만 달러를 버는 건 신기한 일이 아니다. 그의 기록이 특별했던 건 한 번의 우승 없이 이만한 상금을 벌었기 때문이다. PGA투어에서 1승도 없이 1000만 달러 이상을 번 선수는 그를 포함해 3명밖에 없다.

나상욱은 3일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 불명예스러운 이 기록을 미련 없이 내려놨다.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첫 우승을 따낸 것이다. 3일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서머린TPC(파71)에서 끝난 PGA투어 가을 시리즈 첫 대회인 저스틴 팀벌레이크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나상욱은 6언더파 65타를 치며 합계 23언더파 261타로 감격적인 첫 우승을 따냈다. 올해 2승을 거둔 장타자 닉 와트니(미국)를 2타 차로 따돌렸다. PGA투어 211번째 도전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우승 상금 79만2000달러(약 9억3000만 원)를 더한 나상욱은 올해 225만9465달러(약 26억6000만 원)를 벌어 상금 랭킹에서도 33위로 뛰어올랐다.

○ 아마 시절 우즈와 동급

나상욱의 첫 우승이 이렇게 늦게 나오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마 시절 그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급 선수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해냈다” 7년만의 포효 나상욱이 18번홀에서 우승을 확정 짓는 파 퍼트를 성공한 뒤 두 팔 벌려 환호하고 있다. 2004년 PGA투어에 데뷔한 나상욱은 7년 동안 211번째 대회 출전 만에 감격적인 첫 우승을 따냈다. 라스베이거스=AP 연합뉴스
“마침내 해냈다” 7년만의 포효 나상욱이 18번홀에서 우승을 확정 짓는 파 퍼트를 성공한 뒤 두 팔 벌려 환호하고 있다. 2004년 PGA투어에 데뷔한 나상욱은 7년 동안 211번째 대회 출전 만에 감격적인 첫 우승을 따냈다. 라스베이거스=AP 연합뉴스
여덟 살이던 1991년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아홉 살 때 처음 골프채를 잡은 뒤 미국 아마추어 무대에서 각종 최연소 기록을 도맡아 썼던 ‘골프 천재’였다. 열두 살 때 US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 본선에 진출하며 미국골프협회(USGA) 주관 대회 사상 최연소 출전 기록을 세웠다. 고교 신입생이던 2001년에는 LA시티챔피언십, 나비스코 주니어 챔피언십, 핑피닉스 챔피언십, 오렌지볼 국제 챔피언십 등을 모조리 휩쓸었다. 2001년 미국 주니어 랭킹 1위도 그의 차지였다.

당시 세계 최고의 골프 인스트럭터로 평가받던 부치 하먼(미국)은 나상욱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하먼이 제자로 들인 아마추어 선수는 우즈와 나상욱 2명밖에 없었다. 나상욱은 스무 살이던 2003년 PGA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하며 기대에 부응했다.

○ 210전 211기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PGA투어는 만만치 않았다. 2부 투어와 아시아투어 등에서는 우승을 맛봤지만 PGA 투어에서는 번번이 우승을 눈앞에서 놓쳤다. 2005년 FRB오픈과 그해 크라이슬러 클래식에서는 연장 끝에 준우승에 머물렀고, 지난해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도 준우승했다. 올해 노던트러스트오픈을 포함해 3위도 5번이나 했다.

이날도 와트니의 추격에 끝까지 애를 먹었다. 전반에 2타를 앞섰으나 14번홀에서 보기를 범하며 동타를 허용했다. 하지만 15, 16번홀 연속 버디를 잡아낸 데 이어 17번홀(파3)에서 13m 거리의 버디 퍼트를 성공하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 샷은 PGA투어닷컴이 꼽은 ‘오늘의 샷’에 선정됐다.

나상욱은 “더블 브레이크가 있는 S자 라인이었다. 이전에도 많이 연습했던 라인이라 자신 있었다. 퍼트를 하는 순간 생각대로 공이 굴러갔고 이 대회는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승 후 인터뷰에서 “어젯밤에도 2위로 대회를 마치는 악몽을 꿨다”며 “그동안 기대했던 우승이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정말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 악몽은 이제 그만

나상욱에게는 불명예 기록이 또 하나 있다. 4월 발레로 텍사스 오픈 1라운드 9번홀에서 기록한 한 홀 최다 타수 기록이다. 나상욱은 이 홀에서 무려 12오버파를 치며 16타 만에 홀 아웃 했다. 이는 PGA투어가 홀마다 스코어를 집계하기 시작한 1983년 이후 파4홀 최악의 타수다. 최근에는 샷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한 평론가로부터 ‘거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우승으로 나상욱은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한 방에 날릴 수 있게 됐다. 나상욱은 “한 번 우승을 계기로 우승을 자주하게 된 선수를 주변에서 볼 수 있다. 나도 앞으로 더 자주 우승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 PGA투어 가을시리즈는

나상욱이 첫 승을 따낸 저스틴 팀벌레이크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가을 시리즈(Fall Series)의 개막전이다. 올해 가을 시리즈는 이번 주말 프라이어스닷컴 오픈과 맥글래드리 클래식, 칠드런스 미러클 네트워크 호스피털 클래식까지 4개 대회가 열린다.

가을 시리즈는 2007년 플레이오프와 함께 만들어졌다. 정규 시즌 대회나 플레이오프에 비해 상금도 적고 지명도도 떨어져 중하위권 선수들이 주로 출전한다. 다음 해 PGA투어 시드를 유지하려면 그해 상금 랭킹이 125위 안에 들어야 하는데 이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가 많이 출전한다. 한국 골프의 에이스 김경태(25·신한금융그룹)도 그런 이유로 마지막 대회인 칠드런스 미러클 네트워크 호스피털 클래식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또 가을 시리즈 우승자는 향후 2년간 PGA 정규 투어 출전권을 부여 받는다. 이번에 우승한 나상욱도 2013년까지 풀 시드권을 따냈다.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에도 자동 초청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급 선수들 가운데 가을 시리즈를 찾는 선수가 적지 않다. 가을 시리즈를 계기로 대성공을 거둔 선수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09년 가을 시리즈에서 한 차례 우승했던 맷 쿠차(미국)는 지난해 PGA투어 상금왕을 차지했다. 올해 페덱스컵 우승으로 100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은 빌 하스(미국)도 지난해 가을 클래식 개막전인 바이킹 클래식에서 우승했다.

재기를 꿈꾸는 타이거 우즈(미국)도 실전 감각 회복을 위한 무대로 가을 시리즈를 선택했다. 15년 만에 세계 랭킹이 50위 밖(51위)으로 떨어진 우즈는 6일 시작되는 가을 시리즈 두 번째 대회 프라이어스닷컴 클래식에 나상욱과 함께 출전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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