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데이비드 그린(오른쪽)이 1일 남자 400m허들 결선에서 마지막 10번째 허들을 넘고 있다. 그린은 이때까지만 해도 하비에르 쿨손(푸에르토리코)에게 뒤졌으나 놀라운 막판 스퍼트로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 대역전극을 펼쳤다. 그린은 48초26의 기록으로 새 챔피언이 됐다. 대구=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인간은 산소를 체내에서 태워 에너지로 쓴다. 100m와 200m는 이미 저장된 에너지로 레이스를 마칠 수 있지만 ‘단거리의 마라톤’인 400m는 새로운 산소 에너지 공급 없이 40∼50초를 달려야 한다. 저장된 에너지는 고갈되고 젖산이라는 피로 물질이 급격히 늘어 근육은 극도의 고통을 느낀다. 400m를 ‘가장 가혹한 종목’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400m허들도 마찬가지다. 레이스 내내 전력으로 달려야 하는 400m와 달리 허들을 넘는 동안 짧게라도 쉴 수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육상 전문가들은 “두 종목 중 어느 것이 더 힘드냐는 물음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허들은 단거리 선수가 갖춰야 할 스피드는 물론이고 근력과 리듬감이 필요하다. 곡선 주로를 달리는 400m허들은 여기에 원심력을 조절하는 능력과 지구력까지 갖춰야 한다. 게다가 허들은 기술 종목이다. 류샹(중국)이 황인종 최초로 트랙(110m허들)에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허들을 넘는 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류샹은 100m 기록이 10초2, 3대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압도하지 못하지만 가속도를 이용해 허들을 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골반의 유연성을 최대한 활용한다. 400m허들의 개수는 10개로 100m(여자), 110m(남자)와 같다. 출발 뒤 45m를 달려 첫 번째 허들을 넘는다. 허들과 허들 사이의 간격은 35m다. 선수마다 보폭을 조절해 페이스를 배분한다. 허들의 높이는 91.4cm로 110m(106.7cm)보다 낮기 때문에 도약할 때 옆 레인 선수와 부딪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1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400m허들 결선. 가장 가혹한 종목에서 남녀 모두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했다.
남자 결선에서는 데이비드 그린(25·영국)이 예상을 깨고 48초26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8명의 선수 중 두 번째로 마지막 허들을 넘어선 그린은 직선 주로에서 무서운 스퍼트를 선보이며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남자 400m허들은 세계선수권 3연패를 노리던 최강자 케런 클레멘트(26·미국)가 준결선에서 탈락해 L J 반 질(26·남아프리카공화국)과 펠릭스 산체스(34·도미니카공화국), 앤절로 테일러(33·미국)의 3파전이 예상됐다. 반 질은 올해 나온 최고 기록 1∼4위를 모두 작성했을 만큼 클레멘트의 강력한 라이벌로 거론됐다. 산체스는 2001, 2003년 세계선수권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우승했고 2007년 오사카 대회에서 2위를 하는 등 2000년대 중반까지 ‘400m허들의 독재자’로 군림했다. 2000년 시드니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제패했지만 세계선수권에서는 한 번도 3위 안에 들지 못한 테일러는 대회 첫 우승을 별렀다.
그러나 금메달의 주인공은 그린이었다. 2년 전 베를린 대회에서 7위에 머물렀던 그는 지난해 7월 유럽선수권과 9월 대륙컵에서 잇달아 1위를 차지하며 대구에서의 활약을 예고했고 결국 챔피언이 됐다. 그린은 유소년 시절 축구 선수였으나 달리기를 워낙 잘해 육상으로 돌아섰다. 하비에르 쿨손(27·푸에르토리코)이 2위, 반 질이 3위를 했다. 그린은 “초반 200m가 좋지 않았는데 나중에 기회가 왔다. 이제 내가 세계 최고다”라고 말했다.
여자 400m허들에서는 라신다 디머스(28·미국)가 새로운 여왕이 됐다. 디머스는 52초47의 올 시즌 최고 기록으로 1위를 차지하며 2005년과 2009년 2위에 그친 아쉬움을 풀었다. 2연패에 도전했던 2009년 대회 우승자 멜러인 워커(28·자메이카)는 2위로 밀렸다. 동메달은 나탈리야 안튜흐(30·러시아)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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