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과 내일/이종석]50년 前 중국, 지금의 중국이틀 전 헨리 키신저가 CNN 방송에 나와 중국 얘기를 했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시절인 1971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던 그는 비밀리에 중국을 찾아 역사적인 미중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인물이다. 이듬해 닉슨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과 정상회담을 했다. 방송에서 키신저는 50년 전을 떠올리면서 “내가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중국은 가난하고 약한 나라였는데 지금은 꽤 부유하고 아주 강한 국가”라며 중국의 위상 변화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면서도 상황을 대참사로 몰고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도전 과제라고도 했다. 미중 데탕트로 이어진 1972년 닉슨의 중국 방문은 이때까지 열쇠구멍으로 세상을 보던 중국이 문고리를 열어젖히고 죽의 장막 너머로 고개를 내밀게 한 계기가 됐다. ‘자고 있는 중국을 깨우지 마라. 깨어나는 순간 세상이 흔들리게 된다.’ 한참 앞서 살다 간 나폴레옹이 중국을 사자에 빗대 이런 말을 했다고는 하지만 당시 닉슨이나 키신저는 50년쯤 뒤 중국이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는 유일한 라이벌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닉슨이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건 아닌지 두렵다”며 중국에 문을 열어준 걸 후회하듯 말하기 시작한 건 한참이 지나서였고 이때 이미 사자는 잠에서 깨 있었다. 이제 중국은 미국과 이마를 맞대고 싸우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세계 2강이다. 경제 규모뿐 아니라 군사, 정보, 우주기술 등 영역에서 빠른 속도로 미국을 따라잡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약 70%까지 쫓아왔다. 일본이 미국의 25% 정도다. 극초음속미사일 분야에선 중국이 이미 앞질러 오히려 미국 우주사령관이 “빨리 따라잡지 않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고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중국이 미국을 넘어설 수도 있을까. 그럴 수 있다는 견해가 없지는 않지만 아직은 힘들 것으로 보는 쪽이 많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강 패권국이 되기는 쉽지 않을 걸로 보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킨들버거 함정’이 그중 하나다. 새로 부상한 패권국이 기존 패권국이 갖고 있던 리더십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맞게 되는 위기를 말하는데, 중국이 그럴 거라는 얘기다. 경제, 군사 분야 등에서 막강의 힘을 갖춰, 말 그대로 ‘부강한’ 나라가 돼도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역할과 기여를 안 하거나, 못 하거나 하는 경우다. 중국 당국의 신장, 티베트 자치구 소수민족 인권 탄압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검토를 떠올리면 된다. 또 중국에선 정부가 못마땅해하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쓴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져 행방이 묘연해지는 일이 잦은 것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들이 아무리 ‘다궈펑판(大國風範)’을 외쳐도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이유다. ‘대국의 품격’ 정도 되는 말인데 며칠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화상 정상회담이 끝나자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이 표현이 많이 올랐다. 회담을 통해 시 주석이 대국의 품격을 세계에 보여줬다는 것이다. 키신저는 방송에서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은 중국의 모습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중국은 독단적인 국가였는데 여전히, 상당히 독단적”이라는 것이다. 이종석 국제부장 wing@donga.com}2021-11-24 03:00 
[오늘과 내일/이종석]중국의 살계경후지난주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댄 테한 호주 통상장관이 만났다. 양국 간 통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는데 이 자리에서 타이 대표는 중국이 날리는 ‘무역 펀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호주를 돕겠다고 했다. 호주를 돕기 위해 동맹국들과 힘을 합치겠다고도 했다. 중국은 최근 1, 2년 사이 호주산 소고기, 랍스터, 포도, 와인, 보리, 석탄, 목재 등에 대해 수입을 금지하거나 높은 관세를 매겼다. 고율 관세가 부과된 호주산 와인은 올 1분기 수출액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90% 넘게 줄었다고 한다. 호주가 원래부터 중국에 이런 대접을 받던 나라는 아니다. 양국은 1970년대부터 괜찮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호주 의회를 방문했을 때 의원들은 기립박수로 맞았다. 당시 시 주석은 호주 의회에서 연설을 했는데 “중국인들은 평화적인 발전의 길을 가고 있다. 세계 모든 나라가 같은 길을 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말도 했다. 중국이 유독 호주에 집중포화를 퍼붓고 나선 건 일종의 본보기로 삼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에 가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똑똑히 보라는 것이다. 2년 전 호주는 정부기관이 중국 통신장비 회사 화웨이 5세대(5G) 장비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국가 기밀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우려해서다. 작년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국제사회가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호주는 4개국 협의체 ‘쿼드(Quad)’에도 미국, 일본, 인도와 함께 참여하고 있다. 기밀정보를 공유하는 동맹체 파이브 아이스(Five Eyes)에도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와 함께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화웨이 장비 사용을 막거나, 코로나19의 중국 우한 기원설을 조사해야 한다는 나라는 호주 말고도 많다. 중국의 인권 문제를 비판하는 나라는 더 많다. 그렇다고 중국이 이들 모든 나라에 호주처럼 대응하지는 않는다. 작년 한 해 호주는 전체 수출액 중 42%를 중국 시장에서 기록했다. 두 번째로 많은 일본 시장(13%)의 3배가 넘는다. 선진국 중에서 대중국 수출 비중이 이렇게 높은 나라는 드물다. 중국이 살계경후(殺鷄儆후)의 시범 케이스로 호주를 골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원숭이를 겁주려고 닭을 죽인다’는 말인데 무역 제재를 가하면 타격이 가장 클 것 같은 나라를 택해 다른 나라들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 편에 서면 누구든지 호주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외신도 “중국이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금지하는 등 그동안 여러 나라에 무역 제재를 가하긴 했지만 호주는 전례가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중국이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막았던 건 2010년 노벨위원회가 중국의 반체제 민주화운동가 류샤오보(1955∼2017)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노벨위원회 위원을 노르웨이 국회가 선정한다. 중국은 이런 이유로도 무역 제재를 가한다. 중국 국방대학전략연구소 교수 다이쉬가 지난해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중국이 미국한테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는데도 중국 편을 드는 나라가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 뒤늦은 반성인지, 불만의 표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을 지지하는 나라가 왜 없는지는 그동안 한 일을 돌아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싶다. 이종석 국제부장 wing@donga.com}2021-07-26 03:00 
13년 지나도 달라지지 않은 특수근로종사자 산재보험료[광화문에서/이종석]직장인들이 매달 받는 급여 명세서를 보면 미리 덜어낸 돈 내역이 나온다. 소득세 등과 함께 국민연금·건강·고용·노인장기요양보험료도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 5대 사회보험 중 4개다. 보험료는 근로자와 사업주(회사)가 절반씩 낸다. 나머지 하나인 산업재해보상보험료는 명세서 공제 내역에 없다. 보험료를 회사가 다 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재보험료를 사업주와 절반씩 나눠 부담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종사자)’들이다. ‘계약 형식에 관계없이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하는데도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지 않아 업무상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사람.’ 산재보험 사업을 맡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은 특수종사자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별개로, 근로자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 종사자는 ‘마음과 힘을 다해 일하는 사람’이란 뜻이니 둘 다 좋은 말이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고 못 받고의 엄청난 차이가 있긴 하지만. 특수종사자의 산재보험 가입은 2007년 법 개정으로 특례조항이 만들어지면서 가능해졌다. 이듬해인 2008년 보험설계사와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건설기계 자차기사까지 4개 직종이 산재보험 당연 적용 대상이 됐다. 사회보험 중 제일 먼저 도입된 산재보험 제도 시행(1964년) 44년 만이다. 2012년엔 택배 기사, 퀵서비스 기사가 추가됐다. 4년 뒤 2016년에는 대출 모집인, 신용카드 모집인, 대리운전 기사가 포함됐다. 올 7월 방문강사, 방문판매원, 대여제품 방문점검원, 가전제품 설치원, 화물차주까지 더해져 모두 14개 직종의 특수종사자들이 산재보험 적용을 받고 있다. 특수종사자에게 산재보험료 절반을 내게 한 건 고용된 근로자에 비해 사업주로부터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지휘감독을 덜 받는다는 점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개인사업자와 근로자의 중간쯤으로, 일감을 넘겨받아 알아서 처리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도 단서 조항을 따로 뒀다. 사용종속 관계의 정도를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종은 보험료를 사업주가 다 부담하게 했다. 사업주에게 종속돼 일하는 특수종사자는 사실상의 근로자로 보고 보험료를 부과하지 말라는 취지다. 법이 개정된 2007년 후 13년간 대통령이 세 번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관련 ‘대통령령’은 없다. 특수종사자들이 산재보험료 절반을 내고 있는 이유다. 그 사이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의 입법 취지를 강조하면서 사업주에 대한 특수종사자의 종속성 인정 기준을 넓히는 판결을 몇 차례 내렸다. 최근 과로사로 보이는 택배 기사의 사망 사고가 잇따랐다. 택배회사 측이 산재보험료를 부담하지 않으려고 기사들의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를 대리 작성한 사실도 드러났다. 정부는 이런 문제 전반을 조사하겠다고 한다. 조사도 조사지만 특수종사자들이 내고 있는 보험료를 이번 기회에 손볼 필요가 있다. 특수종사자들의 보험료 부담이 사라지면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 제도도 있을 이유가 없다. 설령 그냥 둔다고 해도 사문화될 게 뻔하다. 14개 직종 전부는 아니더라도 법이 규정한 대로 종속 관계가 분명한 경우라면 보험료는 사업주가 부담토록 하는 걸 고민해봐야 한다. 이종석 정책사회부 차장 wing@donga.com}2020-10-27 03:00 
아플 땐 쉬어도 된다는 직장 분위기 자리 잡아야[광화문에서/이종석]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대국민 설문조사를 한 적 있다. 응답자의 54%가 생활방역 5대 수칙 중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게 아프면 3, 4일 쉬는 거라고 했다. 거리 두기나 30초 손 씻기, 하루 두 번 환기를 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구인구직 업체가 직장인 약 1100명에게 물었더니 90% 이상이 ‘아파도 출근한 적 있다’고 했다. 이유로는 ‘회사, 상사 눈치가 보여서’라는 대답(복수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국내 기업 10곳 중 4곳가량은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으로 아플 때 쓸 수 있는 병가(病暇) 규정을 두고 있다. 근로자 100∼299명 사업장은 약 65%, 300∼999명은 70%, 1000명 이상 사업장은 80% 정도가 그렇다. 유급병가를 둔 곳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직장인들은 아파도 쉬기 어렵다고 한다. 사정이 이런 데는 병가가 법으로 규정돼 있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엔 유급이든 무급이든 병가 규정이 없다. 병가는 법의 보호를 받는 권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공무원이라면 국가·지방공무원 복무규정에 따라 1년에 60일까지 유급병가를 쓸 수 있다. 근로자가 부모나 배우자, 자녀, 조부모, 장인, 장모 등 아프거나 다친 가족을 돌보기 위해 쉴 수 있는 권리는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그렇게 돼 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아플 때 쉴 권리가 법으로 보장돼 있지 않은 것이다.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으로 TV에서 거의 매일 볼 수 있게 된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사무관이던 1999년의 일이다. 당시 국민건강보험법 제정과 관련한 업무를 맡고 있던 김 차관은 지급할 수 있는 급여 중 하나로 상병(傷病)수당을 법안에 담으면서 ‘우리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시절엔 상병수당이라는 게 낯선 제도였던 듯하다. 상병수당은 ‘업무와 관련이 없는’ 부상이나 질병으로 일하지 못할 때 지급하는 공적보험이다. 건강보험법엔 ‘상병수당 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아직 도입되진 않았다. ‘할 수 있다’는 근거를 뒀지만 시행하지는 않고 있다. 현재 업무와 연관이 있는 부상이나 질병일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 수급 근로자는 요양급여와 함께 상병수당 격인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한 달 전 문재인 대통령이 “아프면 쉴 수 있는 상병수당의 시범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아프거나 다친 근로자가 소득 감소에 대한 걱정 없이 쉴 수 있게 사회안전망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이런 발표가 있자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상병수당을 도입하면 적게는 연간 8000억 원, 많으면 1조7000억 원가량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재원 확보도 중요하다. 하지만 상병수당 도입을 위해 필요한 변화의 첫 번째로 ‘병가의 법적 권리 보장’을 꼽는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아직 상병수당 제도가 없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뿐인데 그래도 미국은 ‘가족 및 의료 휴가법’에 병가 규정이 있다. 상병수당 제도가 잘 굴러가려면 ‘아플 땐 쉬어도 된다’는 분위기가 사회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이종석 정책사회부 차장 wing@donga.com}2020-08-20 03:00 
아파트 경비원 업무 범위, 현실 반영해 조정해야[광화문에서/이종석]가장 반가운 날은 비 오는 날이라고 했다. ‘공동작업’이라 부르는 풀 뽑기, 가지치기, 소독하기 같은 일이 없어서다. 비가 밤까지 내리면 외부인 차량 야간 주차 단속도 하루 건너뛸 수 있다. 퇴직 후 아파트 경비원 등으로 일하며 겪고 느낀 걸 책 ‘임계장 이야기’에 담아낸 60대 저자는 그래서 비가 오면 좋았다. 풀 뽑기를 포함해 대개 ‘공동작업’이라 부르는 것들은 원래 경비원의 업무가 아니다. 청소나 쓰레기 분리수거, 택배를 대신 받아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경비원의 일은 현행법상 시설 경비에 해당한다. ‘도난, 화재 그 밖의 혼잡 등으로 인한 위험 발생을 방지하는 업무’라고 돼 있다. 누구라도 업무 범위를 벗어난 일을 시키면 처벌 대상이다.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가볍지 않다. 아파트 경비 일을 갓 시작한 분들이 업무일지에 ‘분리수거’라고 적어놓으면 관리소장이 득달같이 불러서 다시 쓰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최저임금 제도를 시행한 건 1988년이다. 그런데 경비원들이 제도 적용 대상이 된 건 2007년부터다. 이마저도 감액이 적용돼 최저임금의 70%만 받을 수 있었다. 비율이 차츰 높아져 2015년에 100%가 됐다. 경비원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시간과 휴일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직종이다. 사용자가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승인받는 건 어렵지 않다. 제도와 법이 이럴 수 있는 건 아파트 경비원을 ‘감시(監視)가 주 업무이고 정신·육체적 피로가 적은 일을 단속적(斷續的)으로 하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일본 노동기준법을 참고해 우리 근로기준법을 만들었을 당시엔 그랬을 수 있다. 지금은 안 그렇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전국 15개 지역 아파트 경비원 3388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작년 11월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방범 업무 비중은 평균 31%다. 나머지는 분리수거, 청소, 주차 관리, 택배, 조경 업무다. 이런 방범 외 업무가 90% 가까이 되는 곳도 있다. 최근 15년 이내 들어선 아파트의 80% 이상은 기계 경비 시스템을 도입한 것으로 나와 있다. 분리수거, 청소, 조경 등도 대개 외부 용역업체에 맡긴다. 하지만 오래된 아파트에선 아직 경비원이 한다. 이런 일을 24시간씩 2교대로 돌아가며 하는데 ‘피로가 적다’고 보긴 어렵다. 150가구 이상 공동주택에서 일하는 경비원만 10만 명쯤 된다. 15개 지역 경비원들은 200만 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주 정부가 ‘공동주택 경비원 근무환경 개선 대책’을 내놨다.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고용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 경비원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방범 외 업무를 인정하면 근로기준법이 적용돼 연장근로 시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관리비 인상으로 이어져 일자리가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입주민(2124명) 대상 조사에선 15개 지역 모두 ‘관리비가 인상돼도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응답이 ‘감원 불가피’보다 더 많았다. 경비 업무 비중이 3분의 1밖에 안 될 만큼 다른 일을 많이 하고 있다면 현실을 반영해 업무 범위를 조정하는 게 맞아 보인다. 이종석 정책사회부 차장 wing@donga.com}2020-07-14 03:00 
“살아있는 권력 수사, 人事로 통제하려 하면 공수처도 소용 없어”[파워 인터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은 정치적 독립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55)은 검사와 수사관 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구성원의 정치적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회장은 “공수처 제도 도입이 과거 정치 권력과 손잡은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공수처(검사 25명, 수사관 40명 이내)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 부서 3개 정도를 합친 정도의 작은 규모여서 실제로 정치적 외압에 휘둘릴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12월 30일 국회를 통과한 공수처 설치법은 7명으로 구성된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7명엔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과 함께 대한변협회장도 포함돼 있다. 공수처 설치법은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날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돼 있어 이르면 7월 공수처가 설치된다. 지난해 2월 취임한 이 회장의 임기는 2021년 2월까지여서 초대 공수처장 후보 추천에 참여하게 된다. 3일 서울 강남구 대한변협회관 집무실에서 이 회장을 만났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 구성을 어떻게 보나. “여야가 각각 원하는 2명이 포함된 전체 7명의 추천위원 중 6명이 동의해야 공수처장 후보로 추천할 수 있게 돼 있다. 외견상으로는 추천 기준이 아주 엄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야당 몫 추천위원 2명이 다 반대하면 추천을 못하는 것 아니냐 하는 논리로, 아주 중립적인 인사가 후보로 추천될 것 같은 외형을 갖춘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면 의문이 든다. 지금 야당의 성향이 명확하지가 않다. 특히 이번에 ‘4+1’(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뭐랄까, 야당 몫 2명 모두 정말 야당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생긴다.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국회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지켜봐야 하겠지만 국회 지형이 어떻게 달라지든지 간에 공수처장 추천위의 구성은 누가 봐도 동의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어야 한다.” ―2명의 후보를 추천하고 그중 1명을 대통령이 지명하게 돼 있다. “대통령에게 복수의 후보를 추천하게 되면 그중엔 반드시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이 들어가게 돼 있다. 2명을 추천하면 여당 몫과 야당 몫으로 1명씩 포함될 것이다. 그러면 대통령 입장에선 누구를 지명하겠나. 형식적인 추천 절차가 될 수밖에 없다. 그냥 구색 맞추기가 돼 버리는 거다. 복수로 추천하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정말로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공수처장으로 임명하고자 한다면 추천위원들이 며칠씩 밤새워 토론을 하더라도 단수 후보를 추천하는 것이 맞다. 대신 대통령에겐 거부권을 주면 된다. 대통령이 볼 때 단수로 추천된 후보가 공수처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기엔 도저히 곤란한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합리적인 이유를 붙여서 거부권을 행사하면 된다.” ―공수처법 설치법 수정안의 ‘24조 2항’이 논란이 되고 있다. “검찰도 독소조항이라며 우려를 표시한 부분이다. ‘공수처 외의 다른 수사기관이 수사 과정에서 고위공직자 범죄 등을 인지하면 그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건데 정보도 일종의 권력이다. 정보가 한곳에 집중돼 통제되는 그런 구조가 국민의 권리 보장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선 근본적으로 의문이 든다. 우리 경험으로 보면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검찰 권력도 그랬다. 그런 경험에 의해 공수처를 만들기로 한 건데 또다시 한곳에 정보와 권력을 집중시키는 건 문제가 있다. 다른 수사기관이 수사 초기 단계에서 인지한 고위공직자 관련 범죄 정보가 공수처로 집중돼 관리되는 것에 대해선 반드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수정안을 통해 24조 2항이 추가된 것이 선한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경험상 이 부분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조정돼야 한다.” ―판검사와 경무관 이상 경찰로 대상을 제한했지만 공수처가 기소권까지 갖는다. “지금 검찰 개혁 차원에서 추진돼 온 검경 수사권 조정의 방향이 큰 틀에서 보면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하자는 것이다. 검경 간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같은 수사 기관인 공수처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갖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특검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는 구조이긴 하지만 특검은 특정 사건에 대해 한시적으로만 운영된다. 상시적으로 고위공직자 범죄를 수사하는 공수처와는 사정이 다르다.” ―대한변협은 공수처 설치법에 대한 공식적인 의견을 내지 않았다. “국민의 다수가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고 있지만 변호사회 안에서 보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등 다양한 이념적 성향을 가진 모임이 있다. 모두 대한변협 회원들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우리 편이 아니면 전부 적으로 간주해 편 가르기를 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어떤 사안이 생기면 정말 많은 변호사들이 개별적으로 나한테 전화를 하는데 의견이 다 다르다. 새벽 4시에 전화를 하는 변호사도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 문제가 대표적이다. 사퇴 촉구 성명서를 왜 발표하지 않느냐는 질타가 엄청 많았다. 그만큼 많은 변호사들이 검찰 개혁에 대해 왜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고 했다. 특정 사안에 대해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를 거치면 의견이 딱 반으로 나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쪽을 택해 대한변협의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기는 어렵다. 대신 문제가 있어 보이는 공수처법 조항들에 대해선 심포지엄 등을 통해 지적하고 개정을 계속 요구할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어떻게 보나. “공수처도 검경 수사권 조정도 출발점은 모두 검찰 개혁이다.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다. 법무부와 검찰이 수많은 검찰 개혁안을 내지만 아직도 검찰이 개혁돼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다. 그렇다면 큰 틀에선 검경 수사권이 조정돼야 하는 게 맞다. 지금처럼 검찰이 모든 수사를 다 손에 쥐고 기소 여부까지 결정하는 그런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권 조정안에 보완할 부분은 없나. “변호사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검경 수사권 조정 자체에 대해선 찬성하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런데 경찰에 완전히 독립된 수사종결권을 주는 것에 대해선 반대 의견이 더 많았다. 의뢰인을 변론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많이 접촉하는 변호사들이 국민의 인권과 변론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검찰이 갖고 있는 수사권을 경찰에 전부 다 넘기는 것은 위험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수사권 조정 법안에 따르면 경찰은 혐의가 인정되는 사건만 검사에게 넘기고,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사건은 자체적으로 수사를 종결한다) 경찰의 수사 종결로 묻혀버릴 수 있는 사건에 대한 견제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강도 높은 검찰 개혁을 예고했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칼끝을 겨누고 메스를 대야 한다는 그런 여망 때문에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계속돼 온 거다. 그런데 정작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대니까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 보복이다, 먼지떨이식이다 하면서 비난하고 있다.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댄 검사들이 인사에서 보복당할 위험이 있다면 누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있겠나. 살아있는 권력에 칼끝을 들이대라고 주문해 놓고 칼끝이 들어오면 인사로 그 모든 걸 원점으로 돌려놓겠다는 식이면 공수처도, 검경 수사권 조정도 아무 소용이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수사에 대해 이런 식으로 논란을 제기하는 건 문제다. 잘된 수사인지 잘못된 수사인지는 법원이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인을 포함한 신년 특별사면을 했다. “사면권은 대통령의 권한이긴 하지만 원칙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이라고 해서 다른 범죄자보다 특혜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특정 정치인을 사면하려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면권을 쉽게 행사해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이 다수 포함된 이번 사면은 아쉬움이 있다. 이번 사면 대상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포함됐다. 이들을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하면 안 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를 병역의 종류로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니까 이번에 사면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더 이상 현행법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거다. 하지만 정치인 범죄자는 그렇지 않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은△용문고, 연세대 법학과 및 법무대학원 졸업△1998년 제40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30기)△2005년 1월∼2007년 1월 서울지방변호사회 재무이사△2007년 2월∼2009년 2월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 재무이사△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 특별검사팀 특별수사관△2017년 1월∼2018년 12월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2019년 2월∼현재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2019년 3월∼현재 연세대 특임교수이종석 wing@donga.com·배석준 기자}2020-01-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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