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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민간인 희생에 눈감는 미국 [오늘과 내일/이종석]

입력 2021-12-20 03:00업데이트 2021-12-2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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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오폭 인한 피해 계속 드러나도
‘정당한 공격’ 주장하며 책임 안 물어
이종석 국제부장
오늘은 미국이 32년 전 파나마를 침공한 날이다. 1989년 12월 20일 새벽 미국은 중미 국가 파나마를 공습했다. 침공 이유를 두고는 여러 얘기가 있는데 당시 미국이 주장한 건 마약밀매 혐의를 받는 군부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1934∼2017)를 체포하고 파나마에 민주정부를 다시 세우겠다는 것. 파나마 내 미국인 보호도 명분 중 하나였다. 당시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미국을 비난했었다.

미국 육군은 파나마 침공에 관한 설명을 홈페이지에 올려놨는데 ‘2만6000명에 가까운 전투 병력이 배치된, 당시로선 베트남전쟁 이후 가장 크고 복잡한 작전이었다’고 돼 있다. 파나마는 국토 면적이 미국의 130분의 1 정도로 한반도의 남한보다 작은 나라다. 침공 2주 만인 이듬해 1월 3일 노리에가가 항복했고 한 달도 안 된 1월 12일 작전을 종료하면서 ‘완벽한 성공’을 거뒀다는 내용도 있다. 파나마인 사상자를 최소화했다는 설명도 나온다.

미국의 침공으로 희생된 파나마 민간인은 신원이 확인된 경우만 2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소 400명의 파나마인이 사망했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가 있었고, 인권단체들은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이 사상자의 많고 적은 기준을 어디다 뒀는지는 몰라도 적다고 볼 수 없다.

미군이 2년 전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본거지를 공습하는 과정에서 어린이를 포함해 50명이 넘는 민간인이 사망했는데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지난달 보도했다. 민간인 피해를 숨기기 위해 미군은 공습 현장을 불도저로 밀어버렸다고 한다. 사건 조사에 참여한 미군 법무관들이 이 공습을 ‘잠재적 전쟁범죄’로 규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지난주 미국 국방부는 8월 어린이 7명을 포함해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10명의 희생자를 낸 드론 오폭과 관련해 ‘누구도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실수였다’며 오폭은 인정했지만 미국 언론들의 보도로 오폭 정황이 이미 굳어진 뒤였다. 국방부는 IS를 타깃으로 한 ‘정당한 공격’이었다고 주장하다가 20일 가까이 지나 오폭이었다고 밝혔다. 어제는 미군이 중동 지역에서 저지른 항공 오폭으로 사망한 민간인 숫자가 2014년 이후로만 1300명이 넘는다는 내용의 국방부 비밀 문건이 뉴욕타임스 보도로 공개됐다. 오폭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징계나 처벌 사례는 없는 걸로 돼 있다.

파나마에선 오늘 ‘블랙마치(Black March)’가 있을 것이다. 파나마인들은 미국의 침공 당시 희생된 이들을 애도하기 위해 12월 20일이면 검은 옷을 입고 행진을 한다. 지금까지도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실종자 가족 중엔 차마 블랙마치에는 나서지 못하고 이날 하루 사진첩만 열었다 닫았다 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파나마 침공 당시 미군 작전명은 ‘오퍼레이션 저스트 코즈(Operation Just Cause)’였다. ‘오로지 대의(大義)를 위해 벌이는 작전’ 정도의 의미인데, ‘정당한 침공’이라는 걸 강조하려 했을 것이다. 미군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공습에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다는 것이 ‘미국’ 언론 보도로 계속 드러나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피해는 더 많을 수 있다. 미국의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인권을 강조하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미군 오폭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에 대해선 별말이 없다.


이종석 국제부장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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