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종석]중국 우표 속 아기돼지 3마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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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두 자녀 정책 포기하고 셋째 출산 허용
“낳을수록 가난해져” 젊은 세대 반응 싸늘

이종석 국제부장
이종석 국제부장
중국 유정(郵政·한국의 우정사업본부 격)이 2015년 어미 원숭이와 새끼 원숭이 ‘2마리’가 함께 그려진 우표를 공개한 적 있다. 양 무릎 위에 앉은 새끼 둘을 어미가 안고 있다. 이듬해 발행할 신년 우표를 미리 공개한 것이다. 2016년은 원숭이해였다. 이 우표가 발행된 2016년에 중국은 ‘한 자녀 정책’을 포기하고 두 자녀 출산을 허용했다. 중국은 1978년부터 한 명의 자녀만 낳을 수 있게 했는데 1984년부터는 첫째가 딸인 경우엔 둘째 출산을 허용했다. 2002년엔 부모 모두 외동일 경우, 2013년엔 부모 중 한 명만 외동이라도 두 번째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해줬다. 2016년에 이를 전면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2018년에도 유정은 다음 해 신년 우표를 일찌감치 미리 보여줬다. 이번엔 돼지 일가족이 등장한다. 엄마 아빠 돼지 앞에 아기 돼지 ‘3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다. 다섯 가족 모두 웃는 얼굴이다. 2019년은 돼지해다. 유정은 이 우표의 이름을 ‘우푸치쥐(五福齊聚)’라고 했다. ‘5가지 복이 모두 모인다’는 뜻인데, 아이 셋 낳는 부부는 복(福)도 많을 것이라는 의미 정도로 읽힌다.

앞서 새끼 원숭이 2마리가 두 자녀 정책으로 이어졌으니 아기 돼지 3마리는 세 자녀 출산 허용을 알리는 것일 수 있다는 추측이 많았다. 당시 AP는 ‘중국이 산아 제한을 사실상 포기하는 신호’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은 2019년에 세 자녀 정책을 실시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부 내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둘째 아이를 허락한 지 3년밖에 안 되는데 그새 다시 세 자녀로 가버리면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먹혔는지 중국은 2년을 더 버틴다. 하지만 두 자녀 정책은 시행 첫해에만 신생아 수가 전년보다 늘었고 이후로 계속 줄어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세 자녀 정책을 꺼내 들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일할 사람이 계속 줄고 있는데 더 이상 그냥 둬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틀 전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이 회의를 열고 셋째 아이를 낳는 것도 허용하기로 했다. 이 회의에는 당 총서기인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참석했다. 중국은 노동인구(16∼59세)가 2011년 9억2500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줄어 작년에 8억9400만 명까지 떨어졌다.

일당 독재 사회주의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직접 주재한 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인데 반응은 어땠을까.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사용자들에게 ‘셋째를 낳을 것인지’ 물었다. 30분이 채 안 돼 3만 명 넘게 답했는데 90% 이상이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CNN은 이 설문조사가 ‘조용히 사라졌다’고 했다. 또 중국 경제는 일할 사람들이 필요한데 세 자녀 정책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될 것 같다고 전하면서 ‘사는 게 이렇게 피곤하고 힘든데 어떻게 아이를 가질 수 있겠느냐’고 했다는 한 웨이보 사용자의 반응도 곁들였다.

세 자녀 정책이 나온 뒤 중국 인구학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전문가는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의견을 냈다. 아무리 시 주석이 있는 자리에서 결정한 정책이라 해도 출산 이후 감당해야 하는 양육, 교육, 주거비 문제와 관련한 구체적인 대책이 없는데 ‘이제부터 셋까지 낳아도 된다’고만 해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출산을 꺼리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선 ‘낳을수록 가난해진다(越生越窮·월생월궁)’는 말이 퍼져 있다고 한다. 중국의 젊은 세대 얘기만은 아니겠지만….

이종석 국제부장 wing@donga.com



#중국#우표#셋째출산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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