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하지 말고 늦게 돌아오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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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속에서 응원하는 사랑이에게
‘16강 거미손’ 보여주세요

투혼-자신감 넘치는 우리 대표팀
나이지리아 반드시 꺾으세요

《“곁에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한국대표팀의 ‘철벽 수문장’으로 떠오른 정성룡(25·성남)의 부인 임미정 씨(23)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눈길을 끌고 있다. 아르헨티나전이 열린 17일이 부부 사이에서 태어날 ‘사랑이’(태명)의 출산 예정일이었기 때문. 임 씨는 이날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병원에 입원할 예정이었지만 진통이 시작되지 않아 출산은 일단 미뤄졌다. 비록 아르헨티나에 패배했지만 조별리그가 23일까지 이어지고, 16강 진출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어 임 씨는 사랑이를 낳은 뒤 산후 조리까지 홀로 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성룡 부인 임미정 씨

축구대표팀의 수문장 정성룡(왼쪽)과 아내 임미정 씨가 지난해 제주도 여행 중 셀카로 행복한 순간을 남겼다. 사진 출처 임미정 씨 블로그
축구대표팀의 수문장 정성룡(왼쪽)과 아내 임미정 씨가 지난해 제주도 여행 중 셀카로 행복한 순간을 남겼다. 사진 출처 임미정 씨 블로그
삭의 아내를 두고 간 정성룡은 경기에 전념하느라 통화도 자주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14일 오후 훈련캠프인 루스텐버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저 건강하게 잘 태어나 줬으면 좋겠고, 아내도 건강했으면 좋겠다”며 말을 아끼면서도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동덕여대 모델과에 재학 중인 임 씨는 학업도 중단한 채 혼자서 꿋꿋하게 출산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아기가 신났는지 엄마한테 계속 놀아 달라고 한다. 쿵쿵쿵 가만히 있질 않네. 아기랑 얘기하고 노느라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간다.” “(초음파로 본)우리 사랑이 아빠랑 어찌나 똑같이 생겼던지. 눈 코 입이 다 아빠랑 똑같아.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구나. 빨리 보고 싶어 사랑아. 설렘으로 하루하루 보내는 엄마가.”

임 씨는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인터넷 미니홈피에 글로 적으며 차분히 출산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정성룡에게도 “미안해하지 말고, 국가대표로 가는 만큼 될 수 있는 대로 늦게 돌아오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둘은 2006년 처음 만났다. 정성룡이 친구 미니홈피에서 임 씨를 발견하고 친구에게 “소개팅을 주선해 달라”고 졸랐던 것. 천생연분이었을까. 정성룡은 ‘2006년 미스코리아 경남 진’ 출신으로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임 씨를 만나자마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임 씨 역시 수더분한 성격에다가 훤칠한 키(190cm)까지 갖춘 정성룡이 마음에 들었다. 교제를 시작한 둘은 2008년 12월 20일 결혼식을 올렸다.

정성룡에게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지붕에 기와를 얹는 일을 하며 아들을 뒷바라지하던 아버지는 2000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독히 가난했지만 “후회 없이 끝까지 해보라”고 항상 아들의 축구를 응원하던 아버지였다. 정성룡은 이때 “반드시 국가대표가 되겠다”고 다짐했고, 당당히 월드컵 선발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정성룡이 ‘16강둥이’의 아버지가 돼 16강 무대에서 다시 한번 ‘거미손’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팬들은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김남일 부인 김보민 아나운서

공청소기’ 김남일(33·톰 톰스크)의 부인 김보민 씨(32·KBS 아나운서)도 이날 대표팀의 패배가 너무 아쉬웠다. 그는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선수들이 워낙 가족같이 지내고, 아르헨티나가 갖고 있지 않은 투혼과 전우애가 넘치기 때문에 왠지 이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요. 나이지리아를 이기고, 16강 가면 되죠 뭐. 우리 남편도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하던데요.”

김 씨는 2006년 독일월드컵 이후 남편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주장으로 대표팀을 이끌던 김남일이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하면서 주장 완장도 박지성에게 넘어갔기 때문. 그는 “남편이 ‘노란 완장을 차면 정말 팔이 무겁다’고 자주 얘기할 정도로 주장에 대한 책임감이 컸다”며 “처음 주장 완장을 벗었을 때 상실감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남일은 역시 마음씨 넓은 ‘대인배’였다. 아내가 행여 마음고생이라도 할까 봐 “지성이가 이미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지성이가 아니면 누가 주장을 하냐”며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던 것. 2002년과 2006년, 승부욕으로 똘똘 뭉쳐 중원을 호령하던 남편은 어느덧 “후배들이 잘돼야 나도 잘되는 것”이라고 오히려 부인을 위로하는 어른이 돼 있었다. 김 씨도 이제 “1분을 뛰더라도 팀에 보탬이 되는 남편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남편은 수많은 경기를 치르면서도 매 경기마다 항상 승리만을 원해요. 승리를 한다면 정말 좋지만 승리와 당신의 부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남편에게 늘 말하죠. 나이지리아전에 출전한다면 다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좋겠어요.”

김 씨는 “남편이 이제는 팀의 중심이 아니지만 후배들이 항상 중심에 서 있을 수 있도록 뒤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선배가 됐으면 좋겠다”며 “남편이 너무 보고 싶지만 아직 나이지리아전이 남았고, 16강 8강 4강 결승전도 있으니 꾹 참겠다”고 덧붙였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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