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막내 모태범 예고된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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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7일 07시 00분


체육과학연구원 ‘9개월전 테스트’자료 입수

스타트·피니시 이강석·이규혁 능가, 내일 주종목 1000m 출격 2관왕 Go!
과학은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는다. 16일, 모태범(21·한국체대)의 2010밴쿠버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금메달. 과학의 힘으로 산출한 데이터는 이미 9개월 전, 무명의 대반란을 예고하고 있었다.

2009년 5월. 체육과학연구원(KISS)은 스피드스케이팅 대표선수들을 대상으로 개인별 체력 및 스타트 반응시간을 측정했다.

당시 모태범은 한국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 이규혁(32·서울시청), 2006토리노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이강석(25·의정부시청)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부문별 1위를 독식했다. 대표팀 김관규 감독(43·용인시청)조차 놀랄만한 결과였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체력은 다리로 빙판을 미는 힘. 즉 신(伸)근력이다. 스타트 이후, 스피드 증가는 바로 신 근력에서 나온다. 이후에는 초반스피드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근지구력이 가장 중요하다.

KISS는 사이벡스(Cybex)라는 이름의 특수기기로 30회의 반복운동을 실시해 선수들의 근지구력을 측정했다. 1회 째에서 선수들이 썼던 힘을 100으로 가정할 때, 마지막 30 번째에서 초기 근력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를 재는 방식이었다.

이규혁의 지구력비가 71%, 이강석의 지구력비가 68%였던데 반해 모태범의 지구력 비는 73%였다. 30회의 반복 운동은 ‘약 30초’ 동안 진행됐다. ‘약 35초’ 내외에서 승부가 갈리는 500m레이스에서 모태범이 그만큼 스피드를 유지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이 측정을 담당한 KISS 관계자는 “그 때부터 스타트만 잘 끊으면 모태범이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했다”고 밝혔다.

출발신호 이후 첫 발 착지 소요시간에서도 모태범은 선배들을 앞섰다. 스타트 총성이 울린 뒤 첫 움직임에 걸린 시간은 모태범과 이강석이 0.23초로 같았고 이규혁은 0.27초였다. 하지만 이후 모태범은 0.50초 만에 빙판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강석은 0.52초, 이규혁은 0.58초였다.

특히 이 결과는 스타트와 초반 100m에서 세계정상으로 알려진 이강석마저 제친 것이라 놀라움이 더 컸다.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이 결과를 토대로 KISS와의 협의 하에 근지구력과 스피드 파워를 향상시키는 훈련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자전거로 타이어 끌기 반복, 탄력밴드를 이용한 추진력 반복 등이 그것이다. 이강석이 맹장수술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하계훈련의 시기, 모태범은 가장 의욕적으로 근지구력 향상 프로그램에 참가한 선수였다. KISS관계자는 “현재 모태범의 근지구력은 더욱 향상 됐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 종목인 1000m레이스(18일)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스포츠에서 우연은 없다. 특히 1000분의 1초로도 순위가 결정돼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기록경기로 불리는 남자스피드스케이팅 500m라면 더 그렇다. 챔피언의 육체를 알아본 관계자들은 모태범의 금빛 레이스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 다시보기 = 모태범, 한국 빙속 사상 첫 번째 금메달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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