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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3월 25일 11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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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 어쩌면 거의 모든 야구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한국의 준우승, 아니 그 비슷한 수준에 오를 거란 예상을 내놓지 않았다. 4달여 전, 국내 유수의 감독들이 WBC의 수장을 맡길 거부해 우리는 감독조차 내정하지 못했다. 진통 끝에 초대 사령탑을 거쳤던 김인식 감독이 어렵게 자리를 수락했지만 남은 감독들은 하나같이 코치로 도움을 주는 것조차 난색을 표했다. 나서지 않았던 게 어디 감독, 코치뿐이었나? 박찬호, 이승엽은 개인과 팀 사정을 들어 대표팀 유니폼을 정중히 거절했고, 김병현은 난데없이 여권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올림픽 금메달의 대한민국이었지만, 진갑용-이승엽-고영민-박진만-김동주는 박경완-김태균-정근우-박기혁-이범호로 바뀌었다. 우리에게 환희를 안겨준 베이징에서의 주전 내야수는 반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싹 바뀌었다.
미국야구, 일본야구를 자주 본 사람들은 아무리 애국심을 곁들여도 우리나라의 전력을 결승진출 팀으로 보기 힘들었다. 그들의 눈에 메이저리거들은 엄정욱 급 스피드에 손민한 급 제구력에 류현진 급 체력을 갖춘 선수들이고, 우린 그냥 아시아에서 좀 하는 동네 형정도?
하지만 동네 형들에겐 남들이 갖고 있지 않았던 게 있었다. 이기고자 하는 열망, 그것이 우리를 결승까지 이끌었다.
우리는 패했지만 더 이상 한국 야구의 1회 대회 4강과 지난 올림픽 우승이 기적이나 행운이 아닌 실력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했다. 아시아의 변방에서 세계 야구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일본처럼 스몰볼을 하는 나라가 아닌 한국식 토털 야구를 하는 나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고영민은 가슴 아픈 실책을 범했지만, 2번의 신기한 주루 플레이로 가슴을 설레게 했다.
김인식 감독의 결승전 고영민 기용은 실패였지만, 그 전까지의 용병술은 극적이었다.
정근우는 수비 강화로 3회에 교체된 선수였지만, 정작 가장 많은 호수비를 펼쳤다.
추신수는 10타수 1안타로 부진했지만, 준결승의 대승을 알리는 3점 홈런으로 우뚝 섰다.
김태균이 있었기에 이승엽의 공백은 아무도 느낄 수 없었다.
김광현이 있었기에 봉중근은 일본의 눈길을 피할 수 있었다.
윤석민이 있었기에 우리는 좌투수만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이용규가 있었기에 우리는 ‘투혼’의 의미를 가슴 뜨겁게 느낄 수 있었다.
‘안네 이진영’이 있었기에 우리는 경기가 끝난 저녁에도 즐거웠다.
박기혁의 존재는 박진만의 공백이 더 이상 절망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임창용은 마지막에 무너졌지만, 그가 있었기에 도쿄에서 콜드패를 갚아줄 수 있었다.
최정이 유격수 연습을 하고 오지 않았다면 이범호는 국가대표에서 빠졌을 것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또 한 번 행복한 3월을 보낼 수 있었다.
야구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누가 자꾸 그런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이번 WBC는 결코 드라마가 아니었다. 드라마의 필수조건인 악역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가 3월의 승자이자 우리 가슴 속의 MVP다.
엠엘비파크-유재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