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끊고… 찬스 잇고… ‘족집게 김인식’

  • 입력 2009년 3월 17일 02시 57분


기가 막힌 용병술이 만들어낸 한 편의 드라마였다. 16일 멕시코전에서 ‘국민 사령탑’ 김인식 감독(뒤)을 비롯한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용병술은 승부처마다 빛이 났다. 김 감독은 “의외로 모든 작전이 다 들어맞았다”고 겸손해했다. 한국은 18일 숙명의 라이벌 일본과 4강 직행 티켓을 건 이번 대회 세 번째 맞대결을 펼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기가 막힌 용병술이 만들어낸 한 편의 드라마였다. 16일 멕시코전에서 ‘국민 사령탑’ 김인식 감독(뒤)을 비롯한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용병술은 승부처마다 빛이 났다. 김 감독은 “의외로 모든 작전이 다 들어맞았다”고 겸손해했다. 한국은 18일 숙명의 라이벌 일본과 4강 직행 티켓을 건 이번 대회 세 번째 맞대결을 펼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야구 대표팀 김태균(오른쪽)이 16일 미국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 라운드 멕시코와의 첫 경기에서 2-2로 맞선 4회 역전 솔로홈런을 날린 뒤 류중일 3루 코치와 주먹을 맞대고 있다. 한국은 2회 이범호, 4회 김태균, 5회 고영민의 솔로홈런 등 장단 12안타를 터뜨려 멕시코를 8-2로 크게 이겼다. 한국은 앞선 경기에서 쿠바를 6-0으로 꺾은 일본과 18일 낮 12시 4강 티켓을 놓고 승자 결승전을 치른다. 샌디에이고=연합뉴스
야구 대표팀 김태균(오른쪽)이 16일 미국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 라운드 멕시코와의 첫 경기에서 2-2로 맞선 4회 역전 솔로홈런을 날린 뒤 류중일 3루 코치와 주먹을 맞대고 있다. 한국은 2회 이범호, 4회 김태균, 5회 고영민의 솔로홈런 등 장단 12안타를 터뜨려 멕시코를 8-2로 크게 이겼다. 한국은 앞선 경기에서 쿠바를 6-0으로 꺾은 일본과 18일 낮 12시 4강 티켓을 놓고 승자 결승전을 치른다. 샌디에이고=연합뉴스
멕시코전 현란한 용병술

고영민 홈런-정현욱 쾌투…교체멤버 작전대로 척척

7회엔 허찌른 더블스틸… 김감독 “내가 뭐 한게있나”

한국이 16일 미국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 라운드 첫 경기에서 홈런 3개를 몰아치며 멕시코를 8-2로 꺾었다. ‘국민 사령탑’ 김인식 감독(한화)을 비롯한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작전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 작품이었다. 승부처에서 반짝반짝 빛난 용병술을 김 감독의 발언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 무너진 선발… “이번엔 바꿔야 산다”

필승 카드로 내세웠던 선발 류현진(한화)은 기대에 못 미쳤다.

1회를 3자 범퇴로 막았지만 공을 19개나 던지는 등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결국 2회 멕시코에 2점을 내줬다.

한국은 바로 동점을 만들었지만 류현진은 3회 다시 2사 1, 2루의 위기를 맞았다. 아웃카운트 하나만 남겨뒀지만 김 감독은 류현진을 불러들였다.

시간을 거슬러 7일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 라운드 일본과의 1차전.

한국은 선발 김광현(SK)이 1회초 3점을 내줬지만 1회말 김태균(한화)의 투런 홈런을 앞세워 2-3으로 따라붙었다. 김광현은 2회에도 등판했고 결국 5점을 더 내준 뒤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그때는 바로 따라 붙으니까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그대로 뒀는데…. 8점이나 내줬으니 별수 있나. 그 경기는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한 거지.”

한국은 이날 2-14, 7회 콜드게임 패의 수모를 당했지만 아껴둔 투수진은 결국 9일 일본과의 순위 결정전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16일 멕시코전은 달랐다. 일본, 쿠바보다는 한결 쉬운 상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했다. “여기서 (멕시코 타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에 투수 교체를 바로 결정했지. 다음 투수들이 강타선을 잘 막아줬어.”

한국의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정현욱(삼성)은 2와 3분의 2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막았다.

김 감독은 정대현-김광현(이상 SK)-윤석민(KIA)-오승환(삼성)을 잇달아 등판시켰다. 김광현 윤석민은 선발 요원이었다. 예상치 못한 ‘벌떼 마운드’에 멕시코 타선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추가 실점은 없었다.

○ 펄펄 난 교체 멤버 ‘주전이 따로 있나’

멕시코전을 앞두고 김 감독은 메이저리거 추신수(클리블랜드)를 선발 명단에서 뺐다.

대신 3루 수비가 불안한 이대호(롯데)를 추신수의 포지션인 지명타자로 기용하고 3루는 이범호(한화)에게 맡겼다. 우익수는 이진영(LG) 대신 이용규(KIA)를 내보냈다.

이범호는 0-2로 뒤진 2회말 솔로 홈런을 터뜨려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등 4타수 3안타의 맹타를 휘둘렀다. 이용규는 2회말 안타로 출루한 뒤 2사 후 도루에 성공했고 상대 실책으로 홈을 밟아 동점을 만들었다.

경기 중 선수 교체도 잘 짜인 각본 같았다.

5회초 실점 위기에서 정근우(SK)를 대신해 2루수로 교체된 고영민(두산)은 5회말 4-2로 달아나는 쐐기 솔로 홈런을 때렸다. 고영민은 수비가 좋지만 이번 대회에서 타격감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도쿄돔은 인조 잔디라 수비하기가 수월했지만 샌디에이고는 천연 잔디라 수비 보강 차원에서 바꾼 건데 바로 홈런을 때려주니 나야 기쁘지.”

상대의 허를 찌르는 세밀함도 돋보였다.

4-2로 앞선 6회 무사 1루에서 타석에 선 이범호는 초구부터 번트 자세를 취했다. 2구째 시도한 번트가 파울이 되자 이범호는 3구째에 번트 자세를 취하다 바로 타격 자세로 전환해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때렸다. 득점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상대의 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희생번트 지시를 했는데 상대 3루수가 바짝 앞으로 오는 거야. 강공으로 작전을 바꿨지.”

한국은 7회 4점을 추가해 완승을 거뒀다. 무사 1루에서 볼넷을 얻어 나간 김현수(두산)의 대주자로 나선 이진영은 기습 번트로 출루한 2루 주자 고영민과 함께 더블 스틸에 성공한 뒤 잇달아 홈을 밟았다. 김 감독은 “그건 내가 지시한 게 아니야. 주루 코치와 선수들이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지(선수)들이 잘한 거지. 내가 뭐 했어?”

모든 감독이 용병술을 쓴다. 생각대로 되는 팀은 많지 않다. 이날 경기 뒤 용병술에 대한 질문을 받은 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결정은 내가 했지만 의외로 모든 작전이 잘 성공했어.”

샌디에이고=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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