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삼윤의 그리스 오디세이]뒤끝 없는 그리스인

  • 입력 2004년 8월 13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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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어떤 나라일까. 또 그리스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본보는 아테네 올림픽 기간에 역사여행가 권삼윤씨의 ‘그리스 오디세이’를 연재합니다.

세계 60여개국을 돌며 고대문명 유적지와 세계문화유산을 탐방해 온 권씨는 ‘꿈꾸는 여유, 그리스’ ‘성서의 땅으로 가다’ ‘문명은 디자인이다’ 등 다수의 저서를 갖고 있습니다. 그가 풀어내는 새콤달콤한 그리스 이야기가 매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라크 땅에 메소포타미아(두 강 사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이집트 등 곳곳에 알렉산드리아란 도시를 세웠으며 인도인들에게는 인물 조각(불상) 기술을 가르쳤던 고대 그리스인들. 그들은 ‘엘라스(Hellas·한자어 ‘희랍’은 이의 발음을 따서 표기한 사음·寫音)’란 제 이름 대신 라틴어로 ‘노예’를 뜻하는 그리크(Greek)로 불렸다. 당시 그리스는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것.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인들은 “그리스” 대신 “엘라스”를 소리 높여 외쳐댄다. “엘라스는 결코 죽지 않았다”며.

고대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고향이자 민주주의의 발상지이다. 아테네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아크로폴리스 기슭의 ‘아고라’란 광장 겸 시장이 바로 그 터전이다. 소크라테스는 매일 오후 이곳에 들러 젊은이들에게 대화술을 가르쳤다.

그리스인들은 말이 많다. 더운 지역이라 몸속의 더운 기운을 입으로 배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문화(광장문화)를 일구어내 일찍부터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현대판 아고라는 아크로폴리스 아래의 플라카(Plaka) 지구다. 여행자들이 저녁 요기를 하고, 아테네인들이 하루의 피로를 풀고 고대 그리스 이래로 삶의 일부가 돼버린 밤의 문화를 즐기는 곳이다. 이곳에서 쉽게 눈에 띄는 것은 타베르나(대중식당)와 그 진열장을 가득 채운 음식재료들. 여기에 술과 음악이 가세한다.

자리를 차지한 채 대화를 즐기는 그들을 보노라면 그들 가슴속엔 앙금이 낄 틈조차 없을 것 같다. 말로써 그 모두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대화에 빠지지 않는 것은 ‘느림의 술’ 와인. 그들은 절대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는다. 목을 축이는 정도로 끝낸다.

취하지 않기에 하고 싶은 말은 하되 남에게 폐가 될 말은 삼갈 수 있다. 또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는 각자의 자유다.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은 혀로 짜릿한 감촉을 맛보고, 코로 향기를 맡고, 눈으로 색을 느끼고, 귀로 글라스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와인을 즐긴다. 말을 아무리 많이 하면서 술을 마셔도 뒤끝이 깨끗하다. 다음날 서로 만나도 얼굴 붉힐 일 또한 없다.

<역사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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