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2년 9월 15일 17시 17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9초78’.
결승선을 맨 먼저 통과한 그는 자신이 세계 신기록을 세운지도 모르고 있었다. 코치가 뛰어 나와 그를 얼싸안아 주고서야 ‘일’이 벌어진 줄 알았다. 그만큼 예상치 못한 세계 신기록이었다. 팀 몽고메리(27·미국)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마하인간’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은 이처럼 극적이었다.
15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 100m. 몽고메리는 거의 출발 총성과 함께 스타팅 블록을 차고 나갔다. 반응시간이 0.104초로 평균 0.2초임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좋은 기록. 출발부터 아무런 경쟁자 없이 독주를 했다.
바람도 도와줬다. 뒷바람이 초속 2m 속도로 불었다. 출발이 좋은데다 바람까지 불어주니 거칠 게 없었다. 운도 좋았다. 출발도 좋았지만 만일 뒷바람이 초속 2m를 넘었다면 비공인 세계기록으로 남을 뻔했다. 몽고메리의 개인 최고기록은 9초84였고 올시즌엔 9초91이 최고기록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세계 신기록은 어느 누구도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경기가 끝난뒤 몽고메리는 “세계 기록은 가장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나온다. 오늘은 날씨가 비교적 추웠다. 지난해 내 개인 최고기록인 9초84를 세울때도 그랬다. 그러나 바람도 완벽했고 내 스타트도 완벽했다. 그리고 세계신기록이 나왔다. 이보다 완벽한 날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 코치가 뛰어나와 나를 안아 하늘 높이 치켜 들었을때야 내가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는 것을 알았다”고 기뻐했다.
![]() |
피로 누적으로 대회에 불참한 채 관중석에서 이날 레이스를 지켜본 전 세계기록 보유자 모리스 그린은 “선수에게는 마법과 같은 날이 있다. 오늘이 몽고메리에게 그같은 날이다”라며 축하했지만 “그러나 나는 이 때문에 주눅들지는 않는다. 나는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며 오히려 분발의 계기로 삼았다.
이날 여자 100m에서 우승(10초88)한 ‘스프린트의 여왕’ 매리언 존스(미국)는 “인간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린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나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라며 몽고메리와 뜨겁게 포옹하며 축하해 줬다.
한편 몽고메리는 이날 기록으로 세계 신기록 상금(10만달러) 등 총 25만달러의 상금을 챙겼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몽고메리는 누구인가
‘존스는 연인이자 경쟁자?’
15일 육상 남자 1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팀 몽고메리의 손목엔 ‘매리언’이란 문신이 새겨져 있다. 다름 아닌 ‘단거리의 여왕’ 매리언 존스(27·미국)의 이름이다. 이날 신기록을 수립한 뒤에도 몽고메리와 존스는 뜨겁게 포옹한 뒤 키스까지 해 주위의 시선을 모았다.
![]() 매리언 존스(왼쪽)가 세계신기록을 세운 팀 몽고메리를 끌어안고 뜨거운 키스세례를 퍼붓고 있다. <파리AP연합>
|
과연 어떤 사이일까. 몽고메리는 99년부터 존스의 코치인 트페버 그램의 지도를 받아오며 급성장했는데 존스가 전 남편 CJ 헌터와 헤어진 뒤 최근 사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둘은 ‘연인이자 경쟁자’. 몽고메리는 “존스가 우승을 차지한 것을 보고 ‘나는 더 큰 것을 이루겠다’고 다짐했었다”고 밝혀 여자육상 최강자인 존스에 자극을 받았음을 털어놨다.
몽고메리는 미식축구선수를 꿈꾸다 육상으로 돌아서 성공한 케이스. 팔을 다쳐 더 이상 미식축구를 계속 할 수 없었을 때 어머니의 충고로 육상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94년 육상을트랙에 발을 디딘 몽고메리는 그해 비록 풍속계측기 오류로 공식기록으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주니어 세계 기록(9초96)을 기록하며 곧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늘 한 살 위인 모리스 그린(28)이 버티고 있었다. 97년과 99년 미국선수권대회에서 그린에 이어 2위에 머물렀고 지난해 열린 에드먼턴세계선수권에서도 그린의 벽에 막혀 은메달에 머물렀다. 몽고메리는 올시즌 허벅지 부상 등으로 제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그린을 올시즌 두차례나 제압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그린이 스탠드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세계기록을 작성하며 ‘2인자’을 탈피했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