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리부트: ‘사망 제로’를 향해〈2〉단속 비웃는 ‘광란의 질주’
과속 사고 日3.8건꼴, 작년 246명 숨져
단속 1시간 만에 5대 줄줄이 적발
80km 초과 땐 형사처벌인데 ‘무감각’
“1km만 빨라도 사고 확률 4% 급등”
지난달 30일 오후 3시 반경 충남 공주시 서산영덕고속도로 유구 나들목(IC) 인근에서 충남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암행순찰차가 과속하는 1t 트럭을 뒤쫓고 있다. 차량 내부에 설치된 속도 측정기에는 트럭이 시속 149km로 달리고 있다고 표시돼 있다. 이후 시속 150km 이상으로 속도를 높인 트럭은 고속도로를 5분 넘게 질주하다가 경찰에 단속됐다. 공주=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지난달 30일 오후 3시 반경, 충남 공주시 서산영덕고속도로 유구 나들목(IC) 인근. 평범한 승용차로 위장한 암행 순찰차가 도로 흐름에 맞춰 시속 110km로 정속 주행 중이었다. 그때 하얀색 1t 트럭 한 대가 쏜살같이 순찰차 옆을 스쳐 지나갔다. 트럭은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은 채 차로를 종횡무진하며 속도를 높였다. 순찰차에 탄 충남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임지훈 경장이 트럭 후미를 향해 속도 측정기를 겨냥하자 액정에는 150km가 찍혔다. 순찰차는 즉각 경광등을 켜고 추격을 시작했다.
사이렌을 울리며 5분가량 이어진 추격전 끝에 트럭은 갓길에 멈춰 섰다. 운전석에서 내린 50대 남성은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경찰이 순찰차에 기록된 고화질 영상을 보여 주자 그는 그제야 “집들이 약속에 늦어 마음이 급했다”며 속도위반 사실을 시인했다. 취재진이 그렇게 빨리 달리면 안 되는 것을 몰랐냐고 묻자 운전자는 멋쩍게 웃으며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라고 답했다. 이 운전자는 결국 범칙금 6만 원과 벌점 15점을 물게 됐다.
●“졸려서 빨리 가려고” 황당한 변명까지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과속으로 인해 발생한 교통사고는 총 1380건에 달한다. 이 사고들로 246명이 목숨을 잃었고, 2308명이 부상을 입었다. 과속 사고 건수는 2022년 1215건으로 잠시 줄어드는 듯했으나, 이후 다시 고개를 들며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은 실제 수치는 더 심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안전거리 미확보 등 다른 위반 사항을 동반하면 통계상 ‘과속 사고’로 집계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취재진이 지난달 30일 서산영덕고속도로의 암행 단속 현장에 동행해 보니 1시간 만에 차량 5대가 과속으로 줄줄이 적발됐다. 한 흰색 승용차는 시속 135km로 순찰차 옆을 스쳐 지나가더니, 갓길을 오가며 대형 화물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파고드는 칼치기(급차로 변경)를 감행했다.
순찰차가 멈춰 세우자 건설 현장으로 출근하는 중이었다는 50대 운전자는 “너무 졸려서 빨리 다음 휴게소로 가서 잠깐 눈을 붙이려 했다”고 변명했다. 그는 과속 및 갓길 주행으로 범칙금 6만 원과 벌점 30점을 물게 됐다. 임 경장은 “통행량이 적은 도로나 아침 시간대에는 1시간에 10대씩 단속되기도 한다”며 “특히 화물차가 과속하면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성능 올라가자 과속 증가… “초과속은 형사처벌”
현행 도로교통법상 제한속도를 초과해서 달리면 과태료나 범칙금이 부과되며, 위반 속도가 높을수록 처분 수위도 올라간다. 특히 2020년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라 과속은 단순 과태료 처분을 넘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됐다. 제한속도를 시속 80km 이상 초과하는 ‘초과속 운전’의 경우 3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에 처해질 수 있다. 만약 제한속도보다 시속 100km 이상 초과한 상태로 3회 이상 적발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적 제재 강화에도 불구하고 위반 건수는 오히려 늘어나는 등 운전자들은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시내 속도위반 건수는 2020년 104만여 건에서 2022년 184만여 건, 2024년에는 185만여 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중앙선 침범이나 주정차 위반 등 다른 법규 위반 사례가 감소한 것과 정반대의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보급 확대와 내연기관 차량의 전반적인 성능 상향 평준화가 과속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차량의 가속 성능은 좋아진 반면, 운전자의 안전 의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신호 체계와 유기적으로 연동되지 않는 단속 카메라 때문에 ‘정속 주행을 하면 오히려 흐름에 뒤처져 손해’라는 잘못된 인식이 퍼진 것도 문제”라고 분석했다.
●무법 천지가 된 심야 고속도로
심야 시간대의 고속도로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11시 반경 취재팀은 서울 경부고속도로 한남 나들목에서 판교 나들목에 이르는 약 17km 구간을 직접 주행하며 실태를 파악했다. 한남대교를 지나 시속 80km 단속 구간이 끝나기 무섭게 차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1차로로 몰려들었다. 서초구 만남의광장 휴게소를 지날 무렵에는 차가 비교적 적은 하위 차로를 이용해 지그재그로 질주하는 곡예운전 차량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제한속도를 지키며 주행 중인 취재 차량 뒤에 바짝 붙어 상향등을 켜며 위협하는 승합차도 있었다.
규정 속도를 준수하며 주행하는 동안 취재 차량을 추월해 지나간 차량은 총 30대에 달했다. 이 중 택시가 21대로 가장 많았고, 일반 승용차 6대, 전기차 3대 순이었다. 밤 12시 무렵 만남의광장에서 만난 회사원 김병우 씨(36)는 “밤만 되면 칼치기를 하며 과속하는 차량이 많아 무서울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반면 테슬라 운전자 조모 씨(31)는 “흐름이 빠른 밤에는 오히려 속도를 내는 것이 뒤차와의 사고를 막는 길 아니냐”며 과속을 정당화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는 차량이 단독으로 주행할 때 사고가 나지 않는 수준으로 정해졌다는 걸 고려해 ‘절대 과속해선 안 된다’는 인식을 다시 새길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연합에 보고된 한 스웨덴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속도가 시속 1km 늘 때마다 제한속도 시속 120km인 도로에서는 사고가 날 확률이 2% 늘어났고, 제한속도 시속 50km인 도로에서는 사고 확률이 4%까지 늘었다. 김선호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여러 차가 함께 속도를 낼 때는 사고 위험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제한속도를 ‘주행 권장 속도’로 오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권구용 사회부 기자 9dragon@donga.com ▽김윤진(국제부) 임유나(산업2부) 주현우(경제부) 최효정(사회부) 한채연(산업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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