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25명 증원해놓고… 의대 실습실 확충은 ‘0’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8일 01시 40분


[의정 갈등 1년]
의대 중 정원 가장 많이 늘린 충북대
대학측 약속했던 시설개선 지지부진
교수도 못 구해 퇴직자 다시 모셔와

“지난해와 비교할 때 실험실, 해부학 실습실은 하나도 바뀐 게 없다. 교원 충원도 원활하지 않아 퇴직한 교수까지 다시 모셔오는 상황이다.”

4일 충북 청주시 충북대 의대 본관 1층 동아리실 4곳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올해 증원된 신입생 교육을 위해 동아리실을 16개의 소규모 강의실로 개조하고 있었다. 이날까지 공사를 마친 소규모 강의실은 4개에 그쳤다.

동아일보가 전국 의대 중 입학 정원이 가장 많이 늘어난 충북대 의대를 찾아 강의실 등 교육 현장을 살펴봤다. 정원 49명이던 충북대 의대는 증원으로 정원이 200명까지 늘었다가 대학 측이 자율적으로 줄여 올해 125명을 선발한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휴학한 지난해 입학생이 복학한다면 약 170명이 한꺼번에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1학기 개강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 본부가 약속한 시설 개선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교수 채용도 원활하지 않다. 의예과 1학년이 2학기에 수강하는 생물학 과목은 분반을 해야 해 추가로 교수를 채용하거나 기존 교수가 추가로 수업해야 한다. 하지만 의정갈등이 1년간 이어지며 기존 교수들이 일부 사직하고 다른 대학들도 채용에 나서고 있어 교원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충북대 의대 교수들은 “교원 확보와 시설, 실습 기자재 중에서 제대로 준비된 게 거의 없다”고 전했다.

한편 의학교육의 질을 평가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은 정원이 늘어난 전국 34개 의대를 대상으로 주요변화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의평원은 증원 등 의대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을 때 교육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수 있다. 이번 평가는 교원 확충, 시설 개선 등 향후 교육 계획에 대한 것으로 지난달 현장 심사를 했고 이달 중 결과를 발표한다. 하지만 아직 주요변화평가 기준이 확정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달 의평원 원장으로 취임할 예정인 허정식 제주대 의대 교수는 “다음 주 내부 논의를 거쳐 주요변화평가 기준과 인증 유예 여부 등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의대 정원이 늘어난 대학은 매년 주요변화평가를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개강 코앞에… 의대 교수 39명 필요한데 12명 아직 못채워”
〈하〉 준비 안된 의대 교육 현장
추가 강의실 예산 확보는 1개동뿐… 커대버 한구에 17명이 실습할수도
기초의학-임상교수 없이 수업할판… “본과 3학년 임상실습이 더 문제”

1년 전 그대로인 해부학실습실 충북대 의대는 전국 의대 중 입학 정원이 가장 많이 늘어난 대학이지만 강의실 등 교육시설 및 장비는 1년 전과 비교해 큰 변화가 없는 상태다. 개강을 한 달여 앞둔 7일 충북대 의대 해부학실습실에는 단 10대의 철제 실습대가 놓여 있었다. 2027년 이전까지 해부학실습실이 추가로 마련되지 않으면 커대버(해부용 시신) 한 구로 약 17명의 학생이 실습해야 하는 상황이다. 청주=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4일 충북 청주시 충북대 의대 해부학 실습실은 추가 공간 확보 등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게 없었다. 지난해 3월 본보가 충북대 의대를 방문했을 때 해부학 실습실에는 철제 실습대 10대가 놓여 있었다. 올해 신입생이 본과 1학년 과정에 들어가는 2027년 이전까지 해부학 실습실이 추가로 마련되지 않는다면 커대버(해부용 시신) 한 구로 약 17명이 실습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기존에는 6∼8명이 인체 해부를 배우기 위해 커대버 한 구로 실습했다. 해부학은 생리학과 함께 의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과목 중 하나다. 교수가 먼저 시범을 보이면 학생들은 실습실 중앙에 있는 대형 스크린과 개별 모니터를 보고 따라 하는 방식이다.

● 1년간 개선된 게 거의 없는 의대 시설

충북대 본부는 지난해 의대 4, 5, 6호관을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건립하고 2029년까지 해부학 실습동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현재 예산이 확보된 건물은 의대 4호관 하나뿐이다. 최중국 충북대 의대 교수협의회장은 “2026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이 증원 전으로 돌아가거나 오히려 줄어든다면 해부학 실습동 건립은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렇게 되면 한 학년에 약 170명이나 되는 학생들에게 실습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예과 2학년에 해부학 수업이 개설된 대학들의 경우 이르면 올해 말까지 해부학 실습실을 확보해야 한다.

충북대 의대 시설은 동아리실을 소규모 강의실로 개조하는 공사를 제외하면 지난해와 비교할 때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기초의학 수업이 진행되는 실험실은 ‘공사 중’이라는 팻말만 붙은 채 굳게 문이 잠겨 있었다. 지난해처럼 실험실 내부는 불이 꺼져 있었다. 최 회장은 “시설과 기자재, 교수진 가운데 제대로 준비된 게 없다”고 말했다. 120명을 수용하는 대형 강의실은 설 연휴 기간 누수가 발생했고 천장 패널이 떨어져 파이프가 그대로 노출됐다. 충북대 본부는 올해 의대에 교육·연구 기자재 명목으로 1억3400만 원, 의대 교육 여건 개선 명목으로 14억 원을 지원했다. 의대는 이 예산으로 소규모 강의실 확보, 실습 장비 교체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 충북대 의대 교수 채용서 12명 미달

휴학한 지난해 입학생이 올해 1학기 학교로 돌아와 신입생과 함께 강의를 듣는다면 늘어난 학생만큼 교수를 늘려야 한다. 충북대 의대 1학년이 올해 3월 수강하는 일반화학 과목은 대상자가 49명에서 약 170명으로 늘어난다. 현재 이 과목을 담당하는 교수는 1명뿐이라 반을 나눠 수업해야 한다. 하지만 교원 확보가 쉽지 않아 퇴직한 교수까지 다시 불러야 했다.

충북대는 최근 올해 1학기부터 강의할 의대 기초의학 교수 6명과 임상 교수 33명을 모집했지만 지원자 부족 등으로 기초의학 교수 2명과 임상 교수 10명 등 12명을 채우지 못했다. 하반기에 기초의학 교수 3명과 임상교수 14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지만 목표 인원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방 소재 의대의 한 교수는 “강원대가 교수 62명을 모집하는 등 정원이 늘어난 의대 모두 대규모로 채용하는 중이라 교원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채용한 뒤에도 다른 학교로 이직할 수 있어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 “의대 본과 3학년 임상실습이 더 걱정”

올해 신입생이 의대 본과 3학년 과정에 올라가는 2029년부터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의대생들은 본과 3학년 때 대학병원에서 임상실습을 하는데, 갑작스럽게 학생이 늘어 관련 시설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늘어난 학생들이 임상실습을 하려면 병상 수가 더 필요하고 임상 교수도 더 확보해야 한다”며 “임상실습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선 아직 아무런 예산이 편성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의대도 상황은 비슷했다. 원광대는 의대 입학 정원이 57명에서 올해 150명으로 늘었다. 이 대학 관계자는 “원광대병원은 700병상 규모다. 환자가 700명인데 의료진을 빼고 교육을 받는 의대생만 300명이라면 교육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습이 많은 의대 교육 특성상 술기 교육 등은 소규모 인원으로 진행되는데, 수강 인원이 갑자기 늘면 부실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충북대 의대#의정갈등#의대 정원#의대 실습실 확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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