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이 집행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은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의 격화한 집회로 아수라장을 방불케했다. 체포영장 집행 소식이 전해지자 지지자들은 울부짖은 반면 반대자들은 환호했다. 일부 지지자들은 도로에 드러눕기도 했다.
● 대통령 차량 나오자 尹 지지자들 아수라장
이날 오전 한남동 은성빌딩과 국제루터교회 앞에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 약 6400명(경찰 비공식 추산)이 집회를 열고 ‘불법 체포’ 등 문구의 손팻말을 든 채 체포영장 집행 과정을 격분하며 지켜봤다. 비상계엄 공조수사본부(공조본)의 영장 집행 2분 뒤인 오전 10시 35분 관저 정문으로 윤 대통령이 탄 차량 등이 줄이어 나오자 지지자들은 울부짖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된 이후인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도로에 윤 대통령 지지자가 버리고 간 손팻말이 나뒹구는 모습. 최원영 기자 o0@donga.com전날부터 밤새 집회를 이어온 지지자들은 공조본과 대통령경호처의 대치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공수처 집으로 꺼져라” “경호처 힘내라”며 힘껏 외쳤다. 하지만 오전 8시 반경 공조본의 관저 진입 소식이 전해진 후부터는 함성을 멈추고 욕설과 고성을 내뱉었다. 이어 연단에 선 한 지지자가 “대통령 끌려가면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집회 해산하고 막으러 갑시다”라고 하자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경찰을 온몸으로 밀며 항의하거나 의자, 태극기를 던지는 지지자들도 있었다. 일부 지지자들은 반대자들의 집회 현장을 지나가며 바리케이드를 발로 차고 울먹이기도 했다.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윤석열 대통령 반대자들이 집회를 하는 현장 앞 인도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가 드러누운 모습. 조영우 기자 jero@donga.com일부 지지자들은 격분하다 못해 드러눕기도 했다. 공조본이 관저에 진입한 이후인 이날 오전 8시 40분경 관저 앞에 모여 있던 윤 대통령 지지자 30여 명은 “이게 뭐냐”며 오열하며 한남초 앞 대로에 드러누워 항의하기도 했다. 오전 9시 50분경에도 한 지지자가 볼보빌딩 앞 반대자들의 집회 현장 앞 인도에 드러누웠다. 상황 수습에 나선 경찰은 약 10분 만에 이 지지자를 일으켜 인도에서 이탈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된 이후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경찰이 통제하고 있는 바리케이드 안에서 윤 대통령 반대자들이 복귀하는 비상계엄 공조수사본부(공조본) 관계자들에게 “고생했다”며 응원하는 모습. 조영우 기자 jero@donga.com반면 이날 오전 볼보빌딩 앞 약 200명(경찰 비공식 추산)의 윤 대통령 반대자들은 같은 소식에 일제히 환호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된 직후인 이날 오전 10시 40분경 국민주권당 주최 집회 무대 전광판에 윤 대통령 차량 등 행렬 화면이 뜨자 “축하합니다 윤석열이 감옥 갑니다”라는 노래가 이어졌다. 손을 하늘 위로 높이 뻗거나 응원봉을 흔들고 “끝났다 이놈들아”라고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거나 춤을 추기도 했다. 반대자들은 “윤석열 체포했다. 헌재는 즉각 파면하라”고 외쳤다.
같은 시각 일신홀 앞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노총) 150명(경찰 비공식 추산)이 모인 집회 현장도 축제 분위기였다. 연단에 선 사회자가 “체포된 이후에는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참가자들이 “구속”을 외친 뒤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윤 대통령 반대자들은 영장 집행 후 복귀하는 공조본 관계자들을 향해 연신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울먹이며 외쳤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된 이후인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관계자들이 복귀를 위해 전세버스에 올라타는 모습. 조영우 기자 jero@donga.com윤 대통령의 변호인 중 한 명인 석동현 변호사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한때 윤 대통령의 자진 출석 협의 소식이 전해지자 집회 사회자는 “협의 같은 소리 하지 마. 포승줄로 묶이는 모습 생중계 돼야 한다”고 외쳤다. 이에 반대자들은 “체포해”를 연호했다. 윤 대통령의 이동 방안이 협의 중이라는 소식에도 이들은 “호송차”를 연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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