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잘하는 체육 선생님보다 운동 좋아하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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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평촌고의 체육 수업은 조종현 교사(오른쪽)의 특별한 맞춤 지도로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즐겁게 참여한다. 18일 1교시 체육 수업을 마친 평촌고 3학년 학생들. 안양=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안양 평촌고의 체육 수업은 조종현 교사(오른쪽)의 특별한 맞춤 지도로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즐겁게 참여한다. 18일 1교시 체육 수업을 마친 평촌고 3학년 학생들. 안양=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선생님! 오늘은 케이팝(K-pop) 중에 이 노래를 틀고 운동할게요.”

“선생님! 저희 팀은 배구 작전을 짜서 왔어요.”

18일 오전 경기도 안양시 평촌고 체육관. 1, 2교시 체육 수업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학생들이 굉장히 적극적이다. 공부 스트레스를 받아 만사가 귀찮을 고교 3년생들인데 본인들이 1주일 100분(50분씩 2번 수업)의 체육 수업을 꾸미고 채우려고 한다. 체육 선생님의 알찬 수업 준비에 대한 적극적인 호응이다. 몸 컨디션이 안 좋거나 다친 아이들은 실내용 자전거나 체육관 걷기로 유산소 운동을 하고 기분을 풀면서 수업에 집중한다.

매트를 깔고 눕거나 엎드려 스트레칭, 필라테스를 하는 수업의 시작. 학교 체육 정상화를 위해 전면에 많이 나선데다 자신이 개발한 수업 방법을 적극적으로 타학교 선생님과 공유해서 ‘전국 체육 선생님들의 체육 선생님’으로 불리는 조종현 체육교사(교육연구부장)가 함께 스트레칭을 하며 이런저런, 도란도란 말을 나누면서 학생들의 긴장을 풀어준다.

“수업 시작 10분이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어요. 학생들과 몸을 풀면서 그들의 관심사에 대해 소통을 해요. 몸의 ‘웜업(가벼운 운동)’과 대화를 통해 마음의 ‘웜업’도 되는 거죠. 이런 단계없이 그냥 ‘뛰어. 줄서’라고 하면 학생들은 한숨을 내쉬어요. 여기서 ‘너 한숨 쉰거야’라고 감정섞인 말을 하면 그때부터 학생들과 체육 교사의 관계는 최악이 돼요. 그러면 제 SNS도 완전히 털립니다. 하하.”

학생들의 몰입을 잘 유도한 평촌고 체육 수업에서는 화장실 다녀온다고 나가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는 학생, 체육관 벽에 기대서 핸드폰만 보려는 학생을 볼 수 없다. 50분이 지나 울리는 수업 종료 벨소리. 순간 “아, 선생님 벌써 종쳤어요”라고 아쉬워하는 학생들의 탄식이 들려온다.

체육 수업에서 ‘4德’을 익힌다
조 교사의 체육 수업은 복장에서부터 특별한 가르침이 있다. 학생들은 체육복 상의 위에 조끼를 입는다. 조끼는 4색 4종이다. 색깔별로 다른 말이 써 있다. ‘어진 마음’, ‘멋진 행동’, ‘밝은 표정’, ‘고운 말씨’이다. 학생들은 그날 기분에 따라 손이 가는 조끼를 입는다. 기분은 매일 편차가 클 수 있다. 기분에 따라 욕을 하고 싶거나, 표정 관리가 안 될 때가 있고, 짜증이 날 수도 있다. 그런데 친구들이 입은 조끼를 보며 긍정적으로 마음을 바꾼다. 참을 인(忍)에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실천하고 덕(德)을 찾는 것. 조 교사가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바다.

“저도 선생이기 이전에 사람인지라 힘들고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저도 수업 전에 조끼를 입어요. 그러면서 격한 마음을 누르죠. 학생들이 ‘조인성(조종현 교사의 성을 따서) 조끼’라며 흔쾌히 옷을 입어요. 저는 쓰여진 그대로 실천하자고 화이팅을 해줍니다. 효과가 있어요. 수업 중에 무심코 욕을 한 학생이 나오면 옆 친구들이 ‘고운 말씨’ 옷을 가져가서 입힐 정도라고 해요.”

스포츠 룰을 지키고 그에 따른 패배를 인정하며 승패에 관계없이 상대를 배려하는 미덕까지 학생들이 느끼고 배워간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손흥민도 맨날 이기고 매 경기 골을 기록하는 건 아니다. 질 때 오히려 멋있게 패배, 실수를 인정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해줘요. 나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친구에게 탁구도 지고, 배드민턴도 지면 누구라도 열 받을 거예요. 그런데 오히려 먼저 악수를 내밀면서 ‘한 판 더해보자’고 하는 것, 그런 게 인성이라고 말해줍니다.”

체육관 벽에는 수업을 받는 학생들이 자존감을 높이고 용기를 북돋을 수 있는 현수막이 사방으로 붙어 있다. ‘처음 하는 플레이를 바로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어떤 일이든 시도에서 시작되는 거야’, ‘좋은 일, 좋은 사람, 좋은 삶을 만나려면 간단한 준비물이 있다. 좋은 나!’ , ‘재능은 꽃피우는 것, 센스는 갈고 닦는 것’ 등등. 요즘 학생들에게 취향 저격인 라임 트렌드에 맞춰 조 교사가 직접 말을 짓고 꾸몄다. 보고 있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말들을 학생들은 수업 시간 내내 눈에 넣고 머리에 채운다.

체육은 ‘어울림’… 스포츠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스포츠로 가르친다
고3 스트레스를 체육 수업에서 완전히 날려버리고 있다는 안현준 군(왼쪽)과 조유찬 군. 둘은 1주일 2번의 기본 체육 수업이 부족하다고 아쉬워 한다. 안양=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고3 스트레스를 체육 수업에서 완전히 날려버리고 있다는 안현준 군(왼쪽)과 조유찬 군. 둘은 1주일 2번의 기본 체육 수업이 부족하다고 아쉬워 한다. 안양=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조 교사는 학생 모두가 지겨움을 느끼지 않고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너지 효과를 계속 내려 한다. 남녀 성별, 실력 차이 구분없이 모든 학생들이 팀으로 묶여 같은 조건으로 경쟁이 가능하도록 스포츠 종목의 룰을 바꿔 내놓았다. 조 교사만의 ‘어울림 프로젝트’다.

한동안 학교 체육 수업에서 많이 채택했던 티볼은 학생 취향을 반영해 ‘베이스볼 6’로 바꿔 수업을 하고 있다.

“요즘 학생들이 티에 올려진, 정지된 공을 치기 싫어해요. 그래서 실전 야구로 타자와 투수를 같은 편으로 묶어 새 야구를 만들었죠. 투수가 공을 6개 던져 그 안에 못치면 아웃이에요. 여학생이 타자면 언더핸드스로로 치기 쉽게 던져주고, 테니스 라켓으로도 칠 수 있게 했죠. 여학생들이 1루타를 치면 2루타로, 2루타를 치면 3루타로 평가해줘요. 투수는 타자와 같은 편이니 아웃 당하지 않게 잘 던져줄거고, 여학생도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으니 재밌잖아요. 모두가 즐기는 설계죠.”

평촌고 학생들이 농구와 강강술래를 섞은 만든 바스켓볼 강강술래를 하고 있다. 학생들이 공을 던지면서 동시에 원 대형을 유지하고 움직이는 스포츠다. 완벽하게 하면 조 교사가 아이스크림을 선물한다. 안양=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평촌고 학생들이 농구와 강강술래를 섞은 만든 바스켓볼 강강술래를 하고 있다. 학생들이 공을 던지면서 동시에 원 대형을 유지하고 움직이는 스포츠다. 완벽하게 하면 조 교사가 아이스크림을 선물한다. 안양=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인 양궁도 수업을 해봤다. 양궁은 올림픽 때마다 금메달을 휩쓰는 효자 종목. 그런데 교육 여건상 평생 활을 쏴보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조 교사는 “경기도양궁협회에 전화해 도움을 청했더니 좋아하면서 협조해줬다. 활을 지원받고 화살은 구입했다. 빈 교실을 정리하고 과녁을 만들어 수업을 했다. 학생들이 세계 최고 양궁 선수가 된 것 같다며 프라이드를 느끼더라. 점수가 바로 나오기 때문에 수행 평가에도 최적이었다”고 했다.

걷기와 캠핑에도 특색을 반영해 개발한 이색 수업이 많다. 이날 1, 2교시에 학생들은 배구, 농구, 바스켓볼 강강술래, 발목줄넘기를 하다 ‘특별한’ 야구를 했다. 한 사람이 투수로 공을 던지면 다른 학생이 포수가 돼서 받아주고, 또 다른 학생은 스피드건으로 속도를 잰다. 속도를 측정하던 학생은 투수 학생의 뒤에서 공의 방향과 움직임까지 살펴 다음 공을 더 잘 던지도록 얘기해준다. 단순 캐치볼의 지루함을 없앤 아이디어다.

체육 시간 확대 요구보다 수업의 질 관리가 먼저
투구 내용과 속도 측정 동시 실습 장면. 던지는 학생이나 스피드를 측정하는 학생 모두 프로야구 관계자가 된 듯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안양=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투구 내용과 속도 측정 동시 실습 장면. 던지는 학생이나 스피드를 측정하는 학생 모두 프로야구 관계자가 된 듯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안양=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2025년부터 고교 3년(6학기) 동안 총 192학점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는 고교학점제가 시행된다. 필수 이수 10학점을 제외하고 선택 과목으로 분류된 체육 수업 시간이 더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전국 체육 교사들은 체육 수업 시간의 실질적인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조 교사는 체육 수업의 질 향상이 먼저라는 생각이다. 조 교사는 “수업 시간 확대에 앞서 체육 수업의 질 관리를 잘해야 한다. 준비가 안 돼 있고, 재미도 없고, 관리도 못하면 학생들이 외면한다. 학생들을 만족시켜야 체육 수업 시간을 늘려달라고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고 말했다.

실제 수준 이하의 체육 수업 사례를 현장에서 많이 접하고 듣는다고 했다.

“누워서 침뱉는다고 내부(체육 교사)에 적들이 많아요. 얼마 전 제보가 들어왔는데 젊은 체육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한 달 동안 제식훈련인 좌향좌, 우향우만 시키고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아직도 선생님이 출석만 부르고 평가를 위한 평가만 하는 체육 수업도 있어요. 학생들은 ‘투명 인간 수업’으로 불러요. 그런 선생님들을 ‘아나공(여기 공 있다고 주기만 하는 달인)’, ‘아나영(영상만 올려놓는 원격수업의 달인)’ , ‘아나키(체육관 열쇠만 주는 달인)’라고도 하죠. 교사들 스스로 자초한 일입니다. 질 낮은 체육 수업은 학생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해요.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에게 선택과 책임의 두 가지 카드를 준 겁니다. 학생들이 선택부터 안하면 체육 교사들은 고사되는 거죠.”

운동 좋아하지 않는 학생위한 ‘밥상’ 차려야
결국 수업의 질은 체육 교사의 역량에 비례한다. 조 교사는 역량의 기준을 체육 교사 개인의 운동 실력에 맞춰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배드민턴 수업이라고 가정하면, 운동을 잘하는 교사는 코트 한 면을 잡고 잘 하는 학생과 배드민턴을 치려고 할 겁니다. 그런데 운동을 좋아하는 교사는 모든 학생들이 배드민턴을 배울 때 무엇을 해야할지부터 고민한다는 거예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는 있으나 현장에서 교사들이 말하는 학생들의 체육 성취도를 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조 교사는 “한 반에 25∼30명의 학생이 있는데 이 중 20%가 운동을 잘하고 나머지 80%는 운동에 관심이 없거나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실제 야구 수업을 하면 학생 대부분이 글러브를 한 번도 끼어보지 않았다”며 “체육 교육은 체육을 못해 상처가 있고,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다수를 위한 ‘시그니처 수업 밥상’을 잘 차리고 학생들이 잘 먹도록 지켜보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야구의 투구를 가르칠 때 무조건 기술을 따라하라고 하면 어려워하죠. 그런데 야구 시구 영상을 보여주고 ‘너희들이 연예인이 돼서 나중에 시구를 할 수도 있어. 미리 준비해보자. 수업 때 하는 투구를 시구라고 생각해보자’라고 하면 학생들이 관심을 갖습니다. ‘이 반찬을 안 먹으면 왜 안 먹을까, 다른 반찬을 뭘로 해줄까’라고 연구하는 것, 의미있는 밥상을 차리는 마인드가 체육 교사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봐요.”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에듀플러스#체육 선생님#체육 교육#4德#어울림#수업의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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