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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은어, 속어죠.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나의 정신적 아버지.’ ‘큰 어르신’, ‘멘토’…. 어디가서 누구를 내 생각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아버지에 빗대 소개하거나 온갖 수식어를 써가면서 자랑하기 쉽지 않다. 정신적 아버지라고? 정말 생물학적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계신데, 이런 얘기하면 불효자 소리 듣기 십상일테다. 정말 존경한다는 어르신이라도 이런 표현 쓰기 어렵다. 탤런트 이광기(56).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드라마 〈태조 왕건〉, 〈야인시대〉, 〈정도전〉, 〈태종 이방원〉에서의 인상적인 연기로 이름을 알려 큰 사랑을 받는 배우인 건 누구나 다 안다. 연기하는 것 말고도 예술인으로 재주도 많고, 연예인 티 안 내면서 참 열심히 살고, 가진 것 잘 베풀고 봉사 자주 해서 주변에 사람도 많고, 친구도 많은 것도 누구나 안다. 그런데 이광기가 아버지급으로 모시고 지낸다는 분은 들어보지 못했다. ‘정신적 아버지’ 뿐만 아니라, 어느 때는 형, 어느 때는 내 마음을 제일 알아주는 친구 같다고 한다. 세상 사는 방향을 알려준 ‘인간 나침반’이기도 하다. 당신, 본인이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과 인맥을 아들 뻘에게 소개시켜 주고, 나 없이도 더 친하게 지내라고 하는 것이 인간 마음상 쉽지 않은데 기꺼이 그렇게 해줬다. 한 때 정서적으로 말라가고 힘들었던 ‘이광기’라는 꽃에 매일 물 뿌려줬고, 지금도 그러는 분이다. 이름만 나와도 감동이고 눈물난다. 〈태조 왕건〉에서 이광기는 견훤의 장남, 신검 태자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아버지 견훤은 장남이 늘 못 미더웠다. 전투에 나가면 대패하고, 하는 것마다 마음이 안 들어 다음 보위 물려줄 생각은 안 하고 꾸짖기만 했다. 그래서 이광기는 극 중에서 “으이그~~~”라는 대사를 가장 많이 했고, 가슴만 쳐댔다. 촬영장 밖으로 나오면 든든한 ‘아버지가’ 있었다. 1987년 선친이 작고한 이광기에게 또 한 명의 아버지는 김종규(85)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다. 팔순이 넘은 ‘출판계의 대부’다. 1964년 친형(김봉규)이 삼성출판사를 설립하자 부산지사장으로 일을 도왔다. 1992년에는 대표이사 회장이 됐다. 삼성출판사에서 펴낸 세계문학, 한국문학전집 등은 기성 세대라면 안 본 사람 없을 거다. 책으로 성공했고, 그 감사함을 독자들에게 돌려주려는 마음으로 설립한 삼성출판박물관 관장도 지냈다. 출판계의 리더로 고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부터 그와 인연이 안 닿는 문화예술인이 없다. 그 중에서도 이광기는 특별한 존재다. 김 이사장은 여전히 왕성하게 하루 스케줄 몇 개씩을 소화하는데, 이광기가 부르면, 이광기의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 놓고 달려간다. 몇 년간 갤러리 대표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이들이 조명을 받고 홀로서기 할 수 있도록 돕는 예술 셀럽, 아트 티렉터로 더 많이 활동하고 있는 이광기를 지난달 17일 만났는데, 여지없이 김 이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둘이 ‘인간탑’으로 맺어진 걸까. ● 첫 만남에 끼를 알아준 출판사 사장님1995년. 스물 일곱의 배우 이광기는 속이 상했다. 1985년 KBS 드라마 〈해돋는 언덕〉에 아역으로 출연했지만 이후 이상하리만큼 캐스팅되지 않았다. 들어와도 주목을 끌만한 배역은 아니었다. 온전한 내 캐릭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연기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그의 말로는 수만 번 고민을 했다. 10년 무명이 숙명으로 굳어지나 싶었다. 주머니는 비었고,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웠던 시절이었다. 같은 동네서 오빠, 동생으로 만난 지금의 아내를 사귀고 있을 때다. 결혼은 하고 싶은데 아내와 그 부모에게 자신있게 뭔가 내밀 처지가 아니었다. 아내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다. 조건 좋은 남자들이 분명 있었을 테고, 이광기 본인은 평가 절하되는 기분을 느꼈을 것 같다. 하여튼, 귀여운 외모에 활발하고 훈훈한 성격으로 아내를 붙잡고 있었지만(본인 주장이다) 속으로는 불안감이 더 컸다. 아내 부모의 마음을 얻기 위해 대출을 받아 아내의 대학원 등록금까지 주기도 했다. 당시 우연히 아내의 스승 공연을 보러갔다가 김 이사장을 처음 만났다. 숙명의 시작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안에 소극장이 있거든. 그날 이애주(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 ּ 전 서울대 명예교수, 2021년 작고) 선생이 발표 공연을 했는데 나를 초청한 거야. 당시만 해도 공연하는 사람들이 돈이 어디 있겠어. 지금이야 출판사가 별 볼 일 없지만 그 때는 출판사가 후원을 많이 했거든. 소위 말해 공연 끝나고 뒷풀이 해주려고 간 거야. 공연 전에 미스 박(이광기의 아내)이 이애주 선생 제자라고 인사를 하더라고. 그 옆에 이광기가 있는 거야.”“결혼해야 되니까 아내한테 잘 보이려고, 가방 들어주고 다닐 때였거든요. 매니저처럼. 그런데 그 때는 군대 제대하고 뭔가 내 마음대로 안 될 때였어요. 연기자로의 격동기였죠.”김 이사장은 첫 만남 당시 밝고 예의 바르던 이광기의 첫 인상이 남달랐다고 기억한다. “뒷풀이 하는데까지 쫓아 왔더라고. 자신의 ‘공주’를 잘 만났다는 거겠지. ‘첫 인상이 마지막 인상이다’는 말이 있는데, 이광기의 좋은 인상이 평생 갈 것 같더라고. 짧은 시간에 나한테 주는 신뢰감이 엄청 컸어. 그날 듣기로는 연기 생활이 잘 안 풀린다고 하던데, 그래도 계속 웃고 있더라고. 끼가 보였어. 여자친구 수발까지 다 들어주면서 말이지. 거기서 내 인생 마지막까지 이광기의 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어.”“이날 이후로 이사장님이 저를 정말 예뻐해주셨죠.”1987년 대학 재수를 할 때 부친이 별세한 이광기에게 마음 한 구석 허전함을 채워주는 든든한 우군이 생긴 것이다. ● 내 인생 길잡이가 된 분이 또 세상 길잡이들을 연결해주다“당시 출판사 대표라는 이사장님의 위치에서는 저의 존재감은 크지 않아 보일 수도 있죠. 제가 유명인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저의 긍정적인 에너지 하나만 보셨어요. 정말, 언제 어디서든 ‘어려운 거 있으면 얘기해라. 얘기해라’라고 해주셨어요.” 2000년 〈태조 왕건〉으로 빛을 보기 전까지, 이광기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건 세상과의 연결이다. 김 이사장이 손을 잡아 여기저기 묶어줬다. “이사장님을 존경하는 건 정말 좋은 사람들하고 저를 잘 엮어 주세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만큼 저의 스타일과 소개해주는 분을 잘 알고 분석하고 계시다는 말이에요. 늘 이 친구하고 잘 맞을까, 저 사람하고 잘 맞을까, 그 설계를 하시더라고요. 연기자로 미래도 불투명하고 힘든 시절에 잠깐 ‘외도’를 했었어요. 매니지먼트 사업을 시작했는데, 키우려고 하는 배우가 있어서 기자를 소개받았으면 하고 이사장님께 부탁을 드렸죠. 그랬더니 아예 모 스포츠신문 대표님을 소개시켜주시는 거예요. 오라고 해서 갔더니 사장실이어서 당황했었죠(웃음). 그 때 소개를 받고 만난 기자들하고 아직도 잘 지내요.”세상 멘토들을 많이 만났다. 김 이사장은 “이광기가 나보다 더 살 날이 많고, 개척할 것도 많으니 좋은 인연을 더 많이 만나야 한다”며 이 분야, 저 분야 귀한 인연을 만들어줬다. ‘거장’ 고 이어령 전 장관을 이광기의 멘토로 소개시켜준 것도 김 이사장이다. 이광기는 매년 1월 이 전 장관과 새해 덕담 모임을 하면서 세상 사는 지혜를 배웠다. 이 전 장관은 영면하기 전에 이광기가 작품 전시 활동과 문화 창작자들과 교류하기 위해 파주출판도시 내에 마련한 ‘스튜디오 끼(현재는 갤러리 끼)’에 기념 식수를 하고 ‘문화예술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와 기쁨을 주는 사랑받는 스튜디오 끼가 되길 희망한다’는 글을 남겨줬다. 친아들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을 줬다. 정말 감동적인 건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김 이사장의 인생 철학을 흡수하고 있었다는 거다. “이사장님을 보면 어떤 자리에서 기분 안 좋을만한 상황이라도 싫은 표정 안하고 지혜롭게 잘 넘기시더라고요. 나중에는 제가 무의식적으로 이사장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있더라고요. 그게 30년 동안 이어졌어요. 인생의 롤모델, 이광기라는 인간의 자양분이라 할 수 있죠.”김 이사장 입장에서도 누구나 박수칠만한 인생 경로를 스스로 개척해온 아들같은 이광기를 자랑하고 싶었다. 이광기가 누구의 본보기가 되었으면 했다. “신혼 때였어요. 이사장님이 저희 집 근처 중국집 식당으로 부르시더라고요. 이사장님의 회사를 다녔던 직원이 그 식당에서 배달을 하고 있었어요. 이사장님은 그 직원분을 격려하려고 기꺼이 오신 거예요. 그리고는 저를 불러서 ‘광기, 너도 배우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열심히 살고 있잖아. 이런 얘기를 해주고 응원해줬으면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힘든 주변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치 않는 이사장님을 보고 정말 놀라고 감탄을 했죠.” ● ‘감당할 수 있는 절망’을 알다‘몰랐다. 그렇게 내가 이사장님을 크게 의지하고 있었는지를….’2009년 11월, 이광기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일을 겪었다. 곱디 곱게 키운 6살 나이 큰 아들 석규를 갑작스럽게 하늘로 떠나보냈다. 신종플루에 걸렸던 석규는 마지막으로 “밖에 천둥이 쳐요”라는 말을 하고 아빠와 엄마 곁을 떠났다. 당장 나라도 아들 뒤를 따라가고 싶은, 억장이 무너지고 앞뒤 살필 경황이 없는 와중에 이광기는 가장 먼저 김 이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장인, 장모도 있고, 어머니도 있었는데도 그랬다. “석규는 꼬마 때 우리 집에도 왔거든. 내 손녀하고 놀기도 하고. 그런데 그날 아침 7시인가 광기한테 전화가 와서 울면서 석규가 하늘로 갔다고 해. 그 전에도 광기가 장난전화도 많이 했거든. 연기자고. 진짜 장난 전화하는 줄 알았어. 펑펑 울면서‘ 갔어요. 갔어’라고 하는데, 그 소리를 듣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라고. ‘내 손자, 내 손자’ 이랬다고.”이광기는 당시 충격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출연하던 프로그램을 자진 하차했고, 방송 활동도 중단했다. 건물 옥상에 올라가 생을 마감하려고도 했다.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러갔다가 아들 이름 ‘이석규’가 적힌 마지막 주민등록등본 서류를 15통 뭉치로 떼고 사람들 보는 앞에서 주저 앉아 오열을 했다.“정말 ‘멘붕’이었죠. 아무 것도 못했어요. 여기저기서 위로를 주시려고 불러내고도 그랬는데 그 때마다 거절을 했죠. 길거리에서 우리 아들 또래만 지나가도 눈물이 그냥 흘러내렸던 때였어요.”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과 괴로움에서 한동안 빠져 나오지 못했던 그는 2010년 지진이 발생한 아이티에서의 봉사를 계기로 다시 ‘이광기’로 돌아왔다. “제가 아이티에서 만난 한 아이에게서 하늘에 가 있는 석규의 체온을 느꼈어요. 그게 선물이었죠. 저에게. ‘그래 선물을 받고 내가 치유를 하고 있으니, 그만큼 이 나라에게 선물을 주자’고 했죠.”이광기는 아이티에 석규 보험금 전액을 긴급구호 비용으로 기부했다. 한국으로 들어와서는 아이티 돕기 자선 미술 경매를 했고, 더불어 아이티 아이들을 찍은 사진 전시 등 모금 활동을 더해 아이티에 학교 3곳을 지었다. 그러면서 작가들을 만나고, 교류하면서 본인의 세상을 새로 열었다. “이사장님 위로를 듣고 하다보니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하늘이 나에게 견딜 수 있는 절망을 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사장님이 견딜 수 있는 절망은 축복으로 바뀔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 말, 위로가 너무 좋았어요. 말하자면 ‘절망은 변장된 축복’인 거죠. 더 큰 축복을 맞이하기 위해 잠시 고통스러웠던 겁니다.”생각을 바꾸고 정말 축복이 찾아왔다. 석규를 잃고 2년이 지나 새 생명이 태어났다. 석규가 다시 환생한 것처럼 아들 준서를 얻었다. “준서 낳았다고 광기가 소식 전해줄 때, 석규가 ‘아빠 나 여기 있어’하고 나온 것 같았어. 참 대단해. 고통과 아픔을 더 큰 사랑으로 승화시켰잖아. 대승적 삶이고, 이것이 정말 이광기의 참다운 끼가 아닌가 싶어.”“제가 언젠가는 하늘로 갈 때, 석규를 만나든, 아버지를 만나든, 저보다 먼저 가신 분들을 만났을 때 ‘저 열심히 살다 왔다. 손가락질 안 당하고 살다 왔습니다’고 하면 환영해주실 것 같아요. 한참 힘들었을 때 이사장님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를 확장시켜주시고, 생각의 크기를 커지게 해주신 덕입니다.”“석규가 얼마나 위에서 감사해 하겠어. 서로 고마운 존재야. 석규는 아빠가 나로 인해 얼마 고통스러울까 걱정하고 있는데 아빠가 기가 막히게 극복을 했잖아. 더 성숙해졌잖아. 석규 입장에서는 아빠가 고맙고 ‘아빠한테 효도좀 했네’라고 생각할거야. 엄청 효자 맞아. 먼저 가서 불효자 같지만 준서를 선물했잖아.”“맞아요. 이사장님 말씀하신 것처럼 석규가 제 눈에는 안 보이지만, 세상을 또 다르게 보게 만들어줬어요.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줬어요. 살면서 어디를 보는지 방향이 중요하다고 느껴요. 세상을 좋게 보면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고마워하게 돼요. 이사장님이 ‘개안수술’ 시켜주신 은인입니다.”● 광기가 광기 같은 ‘발랄 오뚝이’를 계속 찾아 냈으면 ‘발랄 오뚝이’. 김 이사장이 붙여준 이광기의 별명이다. 짧은 표현 안에 이광기의 인생과 사람의 그릇을 담았다. 너무 잘 알기에 잠시 고민도 안 했다. 김 이사장은 이광기가 2021년, 석규를 보내고 12년 만에 쓰는 편지로 펴낸 책 〈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의 서평을 썼다. 아들을 마음에 묻고 진짜 어른이 된 이광기가 대단하고 기특했다. ‘살면서 결코 겪어서는 안 될 그 큰 아픔을 숭고한 사랑과 봉사 실천으로 승화해 나아가는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광기는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천연한 끼와 미소, 뜨거운 열정, 긍정의 에너지를 품은 그……’ 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이런 이광기를 알게 돼 본인도 에너지를 받고 산다며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김 이사장은 평생 ‘시인신물념(施人愼勿念), 수시신물망(受施愼勿忘)’을 신조로 삼았다. ‘남에게 은혜를 베푼 것은 잊어버려라. 그러나 남에게 은혜를 받은 것은 잊지 말아라’는 뜻이다.이광기에게 준 것은 기억을 안 한다. 이광기가 스스로 개척했다고 여긴다. 김 이사장은 “광기의 끼, 광기의 삶이 나에게 매일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다”며 광기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한다. 이광기를 처음부터 제대로 잘 본 것이 인생 최고로 잘 한 일 같다. 이광기가 앞으로도 더 잘 베풀고, 그 과정에서 사는 기쁨을 느꼈으면 한다. “광기가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종합 아티스트잖아요. 자신과 똑같은 ‘발랄 오뚝이’들을 잘 발굴할 겁니다.”“이사장님하고 만나면서 문화예술계 사람들을 만나고, 전문가들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시선이 달라졌죠. 시선을 선물로 주신 겁니다. 이 시선으로….”그 시선으로 아트 작가들과 작품을 발굴하고, 대중들에게 알리고 있다. 그 시선으로 연기 분석을 더 입체적으로 해서 보는 사람들이 더 몰입하게 되는 배우가 되려고 한다. 그 시선으로 K드라마, K팝에 이어 K아트를 세계 반열에 올려놓고 싶다. “세계가 주목할 수 있는 한국의 아트는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어요. 오래 전부터 한중일 미술의 공통점을 찾다보니 결국 ‘먹’이더라고요. 먹과 붓으로 글씨를 쓰는데, 먹은 ‘획’으로 이어지고 글씨가 나오잖아요. 앞으로 획을 활용하면서 한국의 정서를 표현하는 작가들이 해외에서도 조명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내년에 획으로 시작하는 작가들의 전시를 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이광기의 얘기를 듣던 김 이사장은 또 무엇을 도와줄까 고민하는 것 같다. 국내 최초로 ‘마당놀이’를 공연 장르로 대중화시킨 손진책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전 극단 미추 대표)은 김 이사장을 “타고난 봉사의 풍류객이다. 또 누굴 도와주더라도 생색 같은 건 낼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전설과 신화를 믿지 않는 사람인데, 이어령 전 장관 추모 1주기 행사에서 ‘장관이 돌아가신 후에 전설과 신화를 믿기로 했다’는 말을 했거든. 광기야, 나는 지금까지 네가 해온 것, 현재 하는 것, 앞으로 하게 될 것, 전부를 믿는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서울사이버대가 사이버대학교 최초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샌버나디노(총장Tomas D. Morales, California State University San Bernardino-이하 CSUSB)와 10일 서울사이버대학교에서 온라인 복수학위 협약을 체결했다. 토마스 모랄레스(Tomas D. Morales) CSUSB 총장 부부는 협약 체결 후에 서울사이버대 캠퍼스 투어도 했다.협약의 주요 내용은 서울사이버대와 CSUSB의 복수학위 취득이다. 서울사이버대 경영대학에서 2년, CSUSB에서 2년을 공부하면서 양교의 학위를 취득하는 프로그램이다. CSUSB와 사이버대학이 함께 시행하는 최초의 프로그램이다. 특히 CSUSB의 학업 과정이 온라인으로 진행돼 직장인 및 성인 학습자들이 국내 학위와 해외 학위를 동시에 취득할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온라인 복수학위’ 취득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 서울사이버대는 지난 2017년 사이버대학 최초로 재학생을 선발해 교류협력대학인 CSUSB 해외연수를 통해 글로벌 리더십을 배양하고선진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서울사이버대와 이번 2+2 복수학위 협약을 체결한 CSUSB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CSU) 소속 23개의 구성대학교 중 하나로 캘리포니아주 샌버나디노시에 위치한 연구중심 종합대학이다. 6개 단과대학에서 70여 개의 학사와 석사학위, 교육학 분야에서 2개의 박사학위 과정을 운영하며 학생 수는 약 2만명이다. 2023년 미국 US뉴스&월드리포트 미국대학 순위에서 공립대학 100위를 기록했다. CSUSB 토마스 모랄레스 총장은 “CSUSB는 서울사이버대와의 오랜 관계를 매우 소중히 여기고 있다”라며 “이번 협약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이 서울사이버대를 세계적 수준의 대학으로 변모시키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서울사이버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기대한다” 고 밝혔다. 이은주 총장은 “이번 협약을 통해 양교 모두가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서울사이버대는 양교의 교류와 협력에 적극 협조할 것이다”고 말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원광디지털대(총장 김윤철)는 웰빙건강, 전통문화, 실용복지 분야에 특화된 정규 4년제 사이버대학이다. 2002년 개교 후 사이버 교육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해왔다. 현재 7500여 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며 재등록율은 최근 5년간 평균 9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학생들의 연령대는 1944년생부터 2004년생까지 다양하다. 이 가운데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사람도 74%에 달한다. 타 사이버대에 비해 100세 시대에 특성화된 전공이 많아 인생 2막을 시작하려는 ‘다시 재학생’의 비중도 높다.● 이색 학과와 실습 인프라 형성 원광디지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건강약선, 요가명상, 웰니스, 전통공연, 차(茶)문화, 언어치료 등 다른 사이버대학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창적인 학과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런 학과들은 단순한 이론 중심 교육을 넘어 실제 현장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실용 학문을 제공한다. 교육은 온·오프라인을 융합한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익산에 위치한 지역캠퍼스에서는 다양한 오프라인 특강과 실습이 제공되고 있다. 약선실습실, 요가명상실습실, 한방미용실습실 등 학과별 특성에 맞춘 실습 공간도 마련돼 있어 실질적이고 심화된 학습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성인 학습자 맞춤형 장학 제도 원광디지털대는 성인 학습자의 다양한 배경을 고려한 장학제도도 운영 중이다. 재학생 60% 이상이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있다. SOLO 가장 장학금, 1인 가구 장학금, 직장인 장학금 등 다양한 맞춤형 장학 혜택이 제공되고 있다. 국가장학금 지원 구간에 해당되는 학생은 교내장학금을 중복 수혜할 수도 있다.● 인생 2막, 3막을 여는 특성화 교육 원광디지털대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장년층에게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재학생 중 74%가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입학생의 절반은 기존 재학생이나 졸업생의 추천으로 입학한다. 특히 웰빙건강, 전통문화, 실용복지 분야에서 블루오션을 지속적으로 발굴하며 성인 학습자들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약선식이지도사, 요가명상지도사, 생활풍수사 등 116개의 자격증 연계 교육을 통해 졸업 후 취·창업에 필요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온라인 박사과정 개설 원광디지털대는 지난 9월 교육부로부터 온라인 박사과정 개설 승인을 받았다. 이에 따라 기존 특수대학원을 일반대학원으로 전환하고, 온라인 박사과정을 신설한다. 웰빙문화대학원 내 자연건강학과에서 약선푸드케어, 요가명상테라피, 산림치유, 뷰티헬스케어 등의 세분화된 전공도 제공힌다. 석·박사과정 신입생 모집은 11월 1일부터 시작되며 모집 관련 정보는 웰빙문화대학원 입학지원센터에서 확인 가능하다.● 2025학년도 신·편입생 모집 시작 원광디지털대는 12월 1일부터 2025학년도 1학기 신·편입생 모집을 시작한다. 1차는 12월 1일∼25년 1월 10일까지며, 2차는 1월 22일∼2월14일까지다. 모집학과는 총 3개 학부 17개 학과로 △웰빙건강학부(한방건강약선학과, 한방미용예술학과, 요가명상학과, 웰니스문화관광학과) △한국문화학부(전통공연예술학과, 한국복식과학학과, 차(茶)문화경영학과, 한국어문화학과, 동양학과, 원불교학과, 태권도스포츠재활학과) △실용복지학부(사회복지학과, 상담심리학과, 언어치료학과, 경찰학과, 부동산학과, 얼굴경영학과) 등이다. 고등학교 졸업 학력 이상이면 수능 성적이 없어도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다. 전문대 졸업 이상 학력이면 2,3학년 편입학 지원도 할 수 있다. 원광디지털대와 위탁교육 협약을 체결한 산업체(기관)에 재직 중이거나 신규로 협약을 체결하는 경우라면 일반전형 대비 경쟁률이 낮은 산업체 전형을 이용하면 좋다. 원서는 입학지원센터 홈페이지에 접속해 PC 또는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접수하거나 방문 접수할 수 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국민대가 개교 78주년을 기념하는 ‘KMU PRIDE WEEK ’ 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이달 11일 오후 본부관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취임 1주년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정승렬 총장을 비롯해 부총장, 처장단 및 직원 300여명이 참석하며 열띤 호응을 얻었다. 정 총장은 취임 아래 1년간 이루어낸 변화와 혁신의 성과를 직원들과 함께 돌아보며, 대학의 발전을 위해 힘써온 모든 직원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번 자리를 마련했다. 정 총장은 키노트 스피치를 통해 “학령 인구 감소 등으로 여러 어려움에 처해있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대학 본부 처장단과 직원들의 합심과 노력으로 지난 1년간 대학혁신지원사업 2년 연속 S등급, 사상 첫 취업률 70.5% 진입, 대학 브랜드평가 TOP 10 진입, 수도권 대학 중 전공자율선택제 입학인원 최다 인원 모집(30.4%) 등 대외적으로 많은 우수성과를 낼 수 있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정 총장은 “대내적으로도 의미있고 내실있는 정책과 제도들이 많이 정비됐다. 교수여건 부문에서는 공간관리를 더욱 체계적으로 구축해 나가고 연구경쟁력을 강화하는데 힘썼고, 인사관리 부문에서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인사제도를 설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지난 1년을 평가했다. 또, 앞으로 집중해야 할 세 가지 핵심 가치로 △패러다임 전환 △국제화 △인프라를 강조했다. 정 총장은 “수요자 중심의 교육체계로 개편하여 궁극적으로 대학의 브랜딩 가치를 높이는 방향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국제화에 선봉에 서있는 대학이라는 인식을 강화하기 위한 학사과정을 지속적으로 개설하고, 다변화하는 소프트웨어 환경에 맞는 하드웨어를 구축한다는 것을 목표로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등 여러 어려움이 있더라도 직원들과 함께 협업하며 헤쳐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키노트 스피치 이후에는 총장 및 처장단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서로간 교류할 수 있는 알쓸총이(알아두면 쓸모있는 총장님 이야기) 및 Q&A 세션이 진행됐다. 또한, 행사 장소 로비 DID에는 직원간 감사 메시지들을 공개해 상호간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 국민대 관계자는 “직원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만들어 긍정적이고 활기찬 조직문화를 이끌어 나가고자 이번 이벤트를 기획했다”며 “앞으로도 발전 방향과 비전을 직원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대학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밝혔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한라대 미래형자동차 기술융합 혁신인재 양성사업단(단장 고국원 미래모빌리티공학과 교수)은 28일 자율주행차의 핵심부품 가운데 하나인 라이다 전문업체 에스오에스랩과 ‘라이다 스쿨’ 운영 협약을 체결했다고 29일 밝혔다. 라이다는 레이더와 함께 ‘자율주행차의 눈’으로 불린다. 다만 라이다는 빛을 사용해 물체를 파악하고, 레이더는 전자파를 활용한다는 게 다르다. 한라대는 미래모빌리티 소프트웨어(SW) 특성화 대학으로, 인공지능(AI) 모빌리티 가속화 플랫폼(aMAP)을 구축해 매년 600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자율주행 및 미래 모빌리티 기술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에스오에스랩은 창립된 지 8년된 자율주행 라이다 전문 기업이다. 국내 최초 라이다 상장 기업이자 ‘CES 혁신상’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다양한 기술상을 받으며 기술력과 혁신성을 인정받았다.이번 협약은 교육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지원하는 인재 양성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이다. 자율주행 모빌리티 분야에서 라이다 활용도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라이다 스쿨은 자율주행 모빌리티 분야에서 라이다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라이다의 기초부터 응용 분야까지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육을 병행하며, 12월 1일부터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강의가 시작된다. 오프라인 실습 과정은 12월 초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위치한 에스오에스랩 서울사무소에서 진행된다. 6시간 동안 라이다 제조 공정, 3차원 인식 및 지도 생성, 자율주행 경로 설계와 제어 등에 대한 실무 교육이 이루어진다. 수료생에게는 에스오에스랩의 수료증이 발급된다.고국원 단장은 “자율주행에서 인지, 판단, 제어의 세 가지 핵심 요소 중 인지 기술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라이다 스쿨은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자율주행 분야의 전문 인재 양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협약을 계기로 자율주행 모빌리티 특성화 교육 역량을 한층 강화하며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선도적 역할을 다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에스오에스랩 정지성 대표도 “라이다는 자율주행뿐만 아니라 로봇, 드론, UAM, 스마트시티 등 다양한 산업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며 “라이다 스쿨을 통해 자사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고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은어, 속어죠.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 친구 ‘전희철’에게 꼭 확인하고 싶었던 것 “초등학교 졸업하고 왜 삼선중학교로 갔었어?” “용산중학교로 가면 못 뛸까봐. 내가 결정했겠냐?”나이로 ‘5학년 1반’이 된 두 초등학교 동창은 만나자마자 38년 전을 회상하며 티격태격했다. 둘은 서울 대방초등학교에서 농구를 같이 했다. 잘했다. 농구인들이 ‘될 성 부른 나무다. 떡잎부터 다르다’며 주목했다. 졸업을 하고 둘은 서로 다른 농구 명문 중학교로 진학을 했다. 단짝 친구가 갈라졌다. 1990년대 농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여학생들의 우상이었던 ‘오빠부대’ 스타 김병철(51 ּ 전 오리온 코치)과 전희철(51 ּ SK 감독)은 농구 인생을 같이 펼친 초등학교 동창, 둘도 없는 친구다. 전희철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대방초로 전학을 와서 인연이 됐다. 개구리도 같이 잡으러 다니던 사이. 찰떡 짝궁으로 지내다 김병철은 용산중으로 갔고, 전희철은 삼선중으로 갔다. 중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을 만나면 대부분 초등학교 친구들을 잊는데, 어린 김병철은 그렇지 않았다. ‘쿵짝’이 맞는 전희철과 평생 같은 학교, 같은 팀에서 농구할 줄 알았다. 그래서 궁금했다. ‘왜 희철이는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다른 중학교를 갔는지.’ 하지만 묻지 못했다. 때를 놓친 탓도 있지만 행여 희철이가 ‘다른 친구랑 같이 농구하려고’라고 말할까 두려웠다. 그 궁금증을 중년이 돼서 풀었다. “삼선중 선생님이 아버지를 찾아 오셨어. 늦어도 2학년 때는 경기를 뛸 수 있다고 하셨지.”(전희철)“그랬구나. 나는 용산중으로 왜 갔는지 기억이 안나. 하하. (박)재헌이하고 나만 용산중 갔던 것 같애.”(김병철)“아니야. 휘문중 갔던 (석)주일이하고 나만 빼고 동기들 거의 용산중으로 갔잖아.”(전희철)“용산고 동기들이 거의 그만뒀었어.”(김병철)아버지가 진학을 결정했다고 하니 김병철의 마음이 풀린다. 당시만 해도 주로 고학년 선수들 위주로 경기 내보낼 때다. 친구 아버님의 마음과 상황이 이해가 간다. 전희철은 김병철이 이렇게까지 자신과 중학교를 함께 가고 싶어했는지 몰랐다. ● 1992년이 없었다면1991년 7월 19일 한 유력 일간지 스포츠면에 실린 기사가 화제가 됐다. ‘메가톤급 유망주 가드로 각광받는 김병철이 주위의 예상을 깨고 고려대 진학을 결심한 건 약 한 달 전 고교 제1의 센터 전희철이 고려대 입학동의서에 도장을 찍은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991년은 둘이 고교 3학년 때다. 김병철은 용산중을 거쳐 용산고에서 날아 다녔다. 1학년 때부터 주전이었다. 돌파는 거침없이 빨랐고, 거침없이 솟아올라 던지는 슛 성공률이 무척 높았다. 가드로 소화할 줄 아는 공격 옵션이 한 둘이 아니었다. 치고 빠지면서 농구를 하는 게 거칠지 않고 막힘없이 부드러웠다. 몇몇 언론에서는 ‘제 2의 허재’라고 수식어를 붙이기도 했다. 전희철도 경복고에 들어가자마자 에이스였다. ‘한 차원 다른, 걸출한 센터가 나왔다’며 농구계가 떠들썩했다. 키가 2m 가까이 되는 데 움직임이 날렵했다. 점프는 탄력을 주체하지 못해 림 한참 위로 손이 올라갔다. 곹밑 장악은 두말할 것 없고, 외곽에서 골밑을 향해 드리블과 스텝으로 파고 들어가는 움직임이나 3점 슛 라인 안팎에 던지는 슛 감, 터치는 이전 선배 센터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다. 시원하게 스텝으로 돌아 수비를 따돌리고 던지는 턴 어라운드 중거리슛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전매특허. 한국 농구 역사에서 한 차원 진화된 센터 시대를 연 장본인이라 해도 과언 아니다. 당시는 대학 농구가 농구대잔치를 통해 화려한 조명을 받던 시절이다. 고교 졸업반인 둘을 성인 대표팀에 선발해 세대 교체를 해야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던 때다. 당연히 둘을 잡기 위해 대학들이 전쟁을 벌였다. “사실 연세대를 가고 싶었거든. 겉으로만 보고. 경복고하고 고려대하고 연습경기를 자주 했는데 그 때는 고려대를 이기기도 했어. 그러면 고려대 선배들이 벌로 안암동 운동부 숙소까지 뛰어가는 거야. 그걸 보고 겁이 나더라고.”(전희철)“나는 솔직히 어느 대학으로 가는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 훈련이 너무 힘들고 고되서 어린 마음에 용산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했어. 그런데 지금 용산에 살고 있네. 하하.”(김병철)“그 시절에는 중앙대가 스카웃 전쟁에서는 늘 빨랐어.”(전희철)“맞아. 가장 먼저 중앙대에서 제의가 왔었어. 원래 가드 포지션에서 잘 하는 선수들은 중앙대에서 가장 빨리 접촉을 했을 때니까.”(김병철)고려대 92학번, 다시 동기로 만난 전희철이 김병철은 신기했다. 6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친구는 달라져 있었다. 우선 훌쩍 커 있었다. 코트에서 상대로 만나 뛸 때는 몰랐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신이 봐도 멋있고 본받을만한 선수, 친구가 돼 있었다. 전희철을 따라 같은 대학에 오길 잘했다. 자연스럽게 동기로 또 만나서 성인으로 진입하는 인생 단계에서 의지가 됐다. 그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키가 168cm 정도 됐었고, 병철이 너하고 크게 차이는 안 났어. 그런데 졸업식 하기 전에 겨울방학 때 삼선중에서 운동을 하고 석달 만인가, 10cm 넘게 큰 거야. 180cm 가까이 됐지.”“나는 초등학교 때 키가 153cm였거든. 고등학교 가니까 희철이 너가 너무 커보이는 거야. 대학 들어갈 때는 더 커 보이더라고. 197cm였잖아.”“하하. 인마, 고3 때 신문 보면 내 키가 198cm라고 나와 있을 거야. 왜 그런 줄 알아? 그 전까지 웬만한 선배 센터들이 대부분 197cm였어. 정말 웃기다. 198cm가 없는 거야. 1cm 올린 거지.” 1992년은 서로에게 여러 모로 값진 해로 기억된다. 특히 김병철은 그해 전희철에게 술도 배웠다. 나이 50 인생에서 아주 큰 사건이다. 소위 맥주와 양주를 섞는 ‘폭탄주’도 전희철 때문에 알고 마셨다. 전희철 손에 이끌려 강남 압구정동도 가봤다. 선배들 눈치도 보고, 훈련도 고교 때보다는 배로 힘든 대학 신입생 시절, 마음 뒤숭숭할 때마다 전희철에 의지해 마음을 잡았다.“기억 나? 입학식 하기 전에 동계 훈련을 괌으로 갔던 거? 둘이 빨래 담당이었잖아. 훈련 일주일 지났는데 밤늦게 리조트 앞 빨래방 가서 한 보따리 빨래 넣어놓고 둘이 보도블럭에 앉아서 별보고 그랬지. 다들 자는 시간에. 너무 힘든 전지훈련이었어. 하루하루 시간이 너무 안 가는 거야. 집에 가고 싶었는데 너 때문에 견뎠어.”(김병철)“진짜 별 보고 둘이 막 엉엉 울고 그랬다. 하하. 야, 괌 도착하자마자 여권 다 걷으라고 했잖아. 난 잊어버릴 줄 알고 여권을 걷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 도착하자마자 새벽에 트랙 훈련하고….”(전희철) “용산에서 어렵게 벗어났는데 고려대로 들어왔어. 하하.”(김병철)“밥도 직접 해서 먹어야 했잖아. 40일 가까이 그렇게 있으니까 눈물이 매일 나더라고. 엄마가 정말 보고 싶었어.” ● 우리만의 투맨 게임그래도 둘이 위로하고 토닥이며, 또 추억을 쌓으며 새내기 시절을 잘 버틴 덕에 정말 선수로 대학 4년을 찬란하게 보냈다. 이전에도 고려대 농구팀은 잘 나갔지만 둘이 선봉장을 섰던 1992~1995년은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이벌 연세대와 벌인 명승부는 그냥 엮어도 드라마다. 후배 양희승, 신기성, 현주엽이 차례로 합류하면서 문경은-이상민-우지원-서장훈-김훈의 연세대와 성사된 매치업은 지금까지도 농구팬들에게는 판타지이고 만화다. 이런 구도에서 농구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선수로서는 천운이다. 게다가 당시 ‘농구 대통령’ 허재가 이끌던 기아, 전통의 강호인 삼성 현대 등이 버티고 있었다. 이들과 수없이 맞붙으면서 둘은 한국 농구의 전설로 남는 발판을 다졌다. “희철이, 전 감독이 내 농구 인생 중요한 순간에 옆에 있지 않았다면 아마 선수 생활하기 벅차지 않았을까 싶어요. 매일 붙어다니면서 많이 싸우고, 보면 으르렁거리기도 했지만 늘 전 감독이 화해 제스처를 먼저 해주고, 아무 일 없는 듯 챙겨주고 했죠. 제가 많이 의지해서 그랬을 거예요. 농구할 때도 도움을 많이 받았고요. ‘김병철’에게 안정감을 주는 변하지 않는 기둥이라고 할까요.”“병철아, 정말 대학 때는 맨날 미친 듯이 싸웠다. 하하.”“뭘로 싸웠는지 기억도 안 나요. 서로 살살 긁으면 옆에 있는 것 집어 던지고 싸우다 다음날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또 친하게 밥 먹으러 가고 그랬죠.”- 싸우는 게 우정의 루틴 같다. “금요일 싸우고 토요일 쉬는 날, 하루 얘기 안할 때 쯤 희철이가 ‘어디 나가자’, ‘맥주 한 잔 시원하게 하자’ , 이러고 살짝 말을 걸어요. 그러면 생맥주 1000cc 시원하게 마시고 안암동 목욕탕에서 샤워하고 들어와요. 숙소 밖에서 팬들이 진을 치고 있을 때 유일한 낙이었죠.”“맥주도 자주 마셨지만 싸우고 나서 용산 밖에 모르는 김병철의 서울 나들이를 제가 다 시켜줬다니까요. 이 동네는 어떻고, 저 동네는 이렇고… 개인 서울 가이드였어요. 하하. 그러니까 나중에는 싸우고 난 다음에 지가 ‘오늘은 어디 살갈 데 없냐’라고 물어봐요.”코트에서도 서로가 밀고 끌어주면서 둘은 대학 3~4학년 때 자기 포지션에서 물오른 기량을 과시했다. 출중해진 1대1 개인 능력으로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다분히 서로의 장기를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살려주는 둘만의 ‘투맨 게임’ 패턴이 있었다. ‘투맨 게임’은 상대 수비 둘을 놓고 하는 2대2 플레이다. 공을 가질 때 김병철은 전희철이 내외곽에서 움직임으로 수비와 순간 간격을 벌릴 때를 맞춰 템포 빠르게 패스를 보낸다. 전희철은 바로 본인의 득점으로 해결하기도 하고, 슛 모션과 컷 움직으로 김병철 전담 수비까지 자신에게 끌어 놓고 김병철에게 오픈 슛 기회를 만들어 준다. 둘만의 시그니처 패턴이다. 전희철이 수비를 등지고 공을 잡고 있을 때 반대편에서 김병철이 기습적으로 골밑 ‘백 도어 컷’을 하고 전희철이 바로 패스를 넣어 득점을 올리는 패턴도 많았다. 여기서 몇 가지를 더 쓰고 했는데 피가 되고 살이 돼 지도자를 하면서도 요긴하게 활용했다. “더 잘 할 수 있었죠. 대학 때 (신)기성이가 현주엽하고만 투맨 게임을 하려고 했어. 전 감독은 내가 공을 줘야 나하고 뭔가 이것 저것 나오는데 기성이가 주엽이한테로만 가니까….”“동감입니다. 이것들이.” ● 김병철을 위한 전희철의 기발한 열쇠 제작설마했다. 둘은 대학을 졸업하면 또 갈라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대학 최고의 슈팅가드와 포워드 겸 센터를 실업 라이벌 삼성과 현대가 가만둘리 없었다. 이전 스카우트 관행상 같은 대학의 스타급 선수들을 한 팀으로 몰아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김병철은 삼성, 전희철은 현대로 간다 등등 소문이 돌았다. 그런데 1995년 말부터 프로농구 출범 얘기가 나오더니, 이듬해 본격적으로 추진이 되면서 신생팀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당시 동양(현 소노)에게 고려대 졸업생 우선 지명권이 주어지면서 1996년 2월 졸업예정자였던 김병철과 전희철은 또 한 팀에서 뛰게 됐다. 동양에서 프로 선수로 평생 못 잊을 영화 같은 추억을 쌓고 2001~2002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 우승컵을 함께 들어올리는 감격까지 누렸다. 동양의 초창기 시절, 빡빡한 스케줄 중에 훈련이 끝나고 밤에 선수단 숙소를 감독과 코치 몰래 빠져 나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배꼽을 잡는다.“숙소가 5층 짜리 빌라인인데 방에서 몰래 나와 옥상 발코니로 가서 계단 타고 내려와 나갔잖아. 기억나지?”(김병철)“나. 옥상에서 한 번 미끄러졌잖아. 갈 뻔 했어. 하하.”(전희철)“맞아, 끝 부분에 빗물 받이가 있었지.”(김병철)“미끄러졌는데 거기에 딱 중심이 걸렸어. 그런데 나중에는 감독님이 어떻게 나가는 줄 알고 옥상 문을 자물쇠로 잠궈버렸더라고.”(전희철)“그러게.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나갈 수가 없어졌잖아. 그런데 우리 또 어떻게 나갔지?”(김병철)“인마, 내가 열쇠 수리공 불러서 자물쇠 걸어둔 걸 따버렸잖아(전부 폭소). 자물쇠를 부시면 감독님이 알아차릴 것 같고, 난리가 났겠지. 주말에 수리공 아저씨를 불렀는데 돈을 더 주고 따달라고 했어. 그러더니 열은 거야. 그래서 열쇠를 맞출 수 있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해서 열쇠까지 맞췄지. 하하. 평상복을 입고 올라가다 걸리면 안 되니까 가방에다 옷을 넣어두고 1층 밖에 길가에 던져 놓고 나가기도 했다. 하하.”(전희철)“정말 대단했어. 희철이가 보면 참 기발해요. 나중에는 외국인 선수 애들도 몇 번 그렇게 외출한 걸 감독님이 알고, 국내 선수 한 명을 외국인 선수들 두 명 자는 사이에서 자게 했잖아. 지키라고. 하하.”(김병철)● 병철이하고는 여기까지라고 생각했죠 “듣자마자 ‘무슨 소리야’고 했죠. 일산에 있다길래 바로 갔어요.”우승 직후 난데없는 비보가 김병철에게 날아왔다. 전희철의 전화였다. 팀을 떠난다고 했다. 프로농구는 팀별로 샐러리캡이 있다. 선수 연봉 총합이 규정으로 정한 일정 액수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 당시 둘은 고액 연봉자들이었다. 팀 사정상 김병철은 잡고, 전희철은 놓을 수 밖에 없던 것이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장난하지 말라고, 뻥치지 말라고 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초등학교, 대학, 그리고 프로에서 한솥밥을 먹은 친구가 하루 아침에 다른 팀으로 간다는데 기분 묘하더라고요. ”- 말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겠다.“일산에서 둘이 술만 마셨죠. 희철이가 취할 듯 해서 용인의 우리 집으로 데려가서 한 잔 더 했어요.”(김병철)“PC방에서 놀다가 또 병철이 집에가서 시간을 보냈지. 그 때는 ‘병철이하고 여기까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전희철)“새벽까지 우리 집에 있다가 아침에 해장국 같이 먹고 너 집에까지 데려다줬잖아. 너 보내고 나니까 정말 허전하더라고. 나중에 맨날 동양의 빨간 유니폼 입던 희철이가 청색 KCC 유니폼 입고 나오는데 그것도 어색했어.”(김병철) 전희철은 KCC로 이적해 SK를 거쳐 2008년 은퇴를 했다. 그리고는 바로 SK 전력분석원, 운영팀장, 2군 코치, 수석코치를 13년여 간 했다. 기다림 끝에 낙이 온다고 2021년 SK 지휘봉을 잡고 바로 2021~2022 시즌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다음 시즌에도 준우승을 했다. 은퇴하고 지도자로 살아남아야 했기에 ‘김병철’이라는 친구가 늘 머리 속에 있었지만 연락하고, 볼 겨를이 없었다. 김병철은 2011년까지 동양에서 뛰고 2022년까지 코치, 수석코치, 감독대행을 했다. 원클럽맨으로 역시 바쁘게 살았다. 감독대행을 마지막으로 지금은 코트 밖에서 감독으로 바쁜 전희철을 지켜보고 있다. 절친이기에 편하게 연락할 수도 있지만 마음으로 대화를 하고 응원했다.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드니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한 명이 잘 되고, 한 명이 너무 안돼 완전히 연락 끊어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동안 우리 오래 못 보긴 했다. 나이가 드니 싸우고 또 싸웠던 그 때가 그립더라. 정말 제대로 친구지.”(전희철)“희철이하고는 정말 인연인 것 같아. 오랫만에 만나도 어색한 것도 없고, 내가 희철이만 만나면 어린 시절도 돌아가거든.” (김병철) ● 이제 농구로 싸워볼까추억으로 먹고 살아도 될만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만나면 밥 먹고, 차 마시고, 옛날 얘기 하고, 그러다 니 탓, 내 탓하고 웃고 싸우고 그 자체만으로 좋았다. 대신 농구와 일 얘기는 안 한다.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잘 하고 있으니 평가를 하거나 조언하는 일도 없다. 김병철은 “감독으로 워낙 잘하고 있어서 연락하고 싶어도 참는다. 전희철은 TV로, 영상으로 봐도 똑같은 전희철이다. 나는 늘 희철이와 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희철은 명예욕 없고, 인맥 줄 타는 것 싫어하는 김병철이 농구 욕심은 냈으면 한다. 친구와 농구로 논쟁도 해보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제가 술도 가르쳐주고 서울 구경도 가르쳐줬으니 농구는 병철이가 한 수 보여줄 것 같아요.”(전희철)김병철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뻔한 속공 농구로 펀(FUN)한 농구를 할 것”이라고 밝힌 전희철 감독의 철학과 농구 스타일이 좋아 보인다. 오래 전 둘이 한 팀으로 뛰던 현역 시절의 농구였기 때문이다. 잡으면 뛰고, 쉽게 골을 넣고, 팬들이 보기에 시원한 농구다. 돈으로 바꿀 수 없는 둘만의 추억은 많으니, 둘이 농구로 한 번 붙어도 될 듯 하다. 때마침 프로농구 2024~2025시즌도 19일 개막했다. 전희철의 SK는 개막 2연승을 했다. - 김병철이 보는 SK는 어떻나.“원래 친구라도 감독의 플랜과 전략을 논하거나 건드리지는 않는데요. 희철이나 저나 코치 생활도 10년 넘게 했잖아요. 다 아니까. 다만 자밀 워니가 하이 포스트에서 공을 잡고 있을 때 다른 선수들이 공간을 충분히 넓혀주는 농구를 더 해줬으면 해요.”두 사람이 진짜 농구로 싸워보면서 새롭게 알아가는 우정이 프로농구를 보는 또 하나의 묘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터뷰를 끝내고 먼저 떠난 김병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전희철. 항상 시즌 직전이면 저녁 식사 자리도 쿨하게 빨리 마치는 스타일인데 발길이 안 떨어지나보다. “오늘따라 아쉽네요. 밥만 먹었네. 대학 때처럼 생맥주 두 잔 더 사주고 보낼 걸 그랬어요.”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경기 지역 시각 예술 작가 발굴과 미술품 유통 활성화를 위해 ‘아트 경기 런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2024년 경기 미술품 활성화 사업(아트 경기)의 일환이다. 행사는 18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파주출판도시 안에 있는 ‘갤러리 끼’에서 열린다. ‘갤러리 끼’는 굵직한 족적을 남긴 대하 드라마 ‘태조 왕건’, ‘태종 이방원’ 등에서 강렬한 연기로 이름을 알린 베테랑 배우 이광기 씨가 주인 겸 대표다. 이 대표는 연기 활동과 갤러리 운영을 병행하면서 ‘아트 디렉터’로 지역 신진 작가 발굴, 작품 교류 활성화 등에 큰 힘을 쏟았다. ‘아트 경기 런 페스티벌’은 2019년부터 2024년까지의 아트 경기 선정 작가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행사다. 경기도 미술의 역량, 그리고 지난 5년 간 구축해온 아트 경기의 정체성을 알리는 데 의미가 있다. 행사에는 42명의 아트 경기 선정 작가들이 1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18일에는 오프닝과 함께 이은마루 쿼텟의 재즈 공연과 조상인 미술전문 기자의 강연(‘살아남은 그림들, 살아남은 이유’), 라이브 경매 등도 진행됐다. ‘아트+날레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이지현 널위한문화예술 공동대표) , ‘눈만 뜨면 AI-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기’(공훈의 고도화 사회 이니셔티브 대표) 등의 강연과 플리마켓(이상 20일), 전시 해설사들과 함께 하는 도슨트 투어(19, 26일) 등도 예정돼 있다. 20일에는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와 파주출판단지 주변 5km를 가볍게 걷는 ‘파주아트거북이마라톤’ 행사도 열린다. 음악, 예술과 스포츠의 결합이다. 관람은 무료다. 이 대표는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미술, 작품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보는 분들이 예술의 벽이 낮아짐을 느끼면서 행복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돌봄 공백 해소와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 도입된 늘봄학교가 하반기부터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교육 현장에서도 양질의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교육진흥원)은 저명 예술가가 학교를 찾아가 놀이형 예술 수업을 진행하는 ‘늘봄학교 찾아가는 마스터클래스’를 준비했다. 학습과 놀이의 균형이 중요한 초등 저학년 어린이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이다. 교육진흥원은 하반기 전국 6개교에서 ‘찾아가는 마스터클래스’를 운영한다. 지난달 국립창극단 김수인 국악인은 광주 상무초등학교에서 ‘김수인의 판소리 교실: 범 내려온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창극을 초등 저학년도 흥미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놀이와 연계해 구성했다. 지난달 19일에는 극단 ‘즐거운 사람들’이 경기 의정부시 고산초등학교에서 ‘즐거운 연극놀이, 나는 모자’ 수업을 진행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발성, 호흡 등의 소리 놀이로 시작해 친구와 조를 이뤄 무대에서 즉흥 연극을 선보였다. 특히 연극의 주제인 ‘날으는 모자’는 의정부 출신 백영수 화백의 대표작을 모티브로 삼아 어린이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를 배우는 기회를 선사했다. 15일에는 국내외에서 폭넓게 활동 중인 빠키 작가가 세종 의랑초등학교에서 ‘기하학 패턴 놀이’를 진행했다. 아이들은 기하학적 패턴과 색감을 활용한 놀이를 통해 예술적 상상력을 펼치며 설치미술을 경험해 봤다. 교육진흥원은 11월까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분야의 마스터클래스를 이어간다. 28일에는 인기 캐릭터 제작사인 오콘(만화애니, 서산동문초)의 ‘나만의 극장판 뽀로로 그리기’ 수업이 열린다. 국립현대무용단 밝넝쿨·인정주 안무가(현대무용, 대구 들안길초), 이지은 작가(문학 분야, 원주 섬강초)가 전국의 늘봄학교에서 쉽고 재미있게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한다. 교육진흥원 관계자는 “아이들이 놀이처럼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예술가들과 협업해 몰입형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며 “국공립 기관, 전문 예술단체 등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협업 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늘봄학교 현장에서 문화예술교육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무용단, 게임문화재단 등과 협력해 양질의 초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또 교사와 예술교육가의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잃어버린 말과 소리를 찾아준다.”동명대 언어치료청각재활학과가 추구하는 목표이자 신조이다.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 치료하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전공이다. 초고령화사회(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20% 이상)로 접어들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분야다. 언어 치료와 청각 재활은 인공지능(AI)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언어 치료부터 청각 재활까지 다루는 복합 전공언어 치료와 청각 재활은 보건 계열 분야에서 유망한 틈새시장으로 분류된다. 우선 대상이 영유아에서 노년까지 모두 아우를 정도로 폭이 넓다. 최근 학령기 아동들은 과도하게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의사 소통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언어 치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노인은 치매 등 노인성 질환에서 비롯된 언어 능력의 저하 문제를 겪기 일쑤다. 이비인후과 질환 증가로 발음과 음성 관리에도 청각 재활 전문가이 필요하다. 언어 치료와 청각 재활은 치료(중재) 전문가가 대상자의 의사소통 능력을 세밀하게 평가해 맞춤형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아직 AI가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전공을 이수하고 졸업하면 언어재활사, 청능사 같은 국가자격증을 딸 수 있다. 초봉 3000만 원(연봉 기준) 수준의 직장에 취업하거나 창업도 가능하다. 동명대 언어치료청각재활학과는 2010년 언어치료학과로 문을 열었다. 2020년 언어치료청각으로 이름을 바꿨고, 올해 초 다시 학과명을 현재처럼 개정해 언어재활사와 청능사를 양성하고 있다. 언어치료청각재활학과 오소정 교수(학과장)는 언어 치료에 청각과 재활을 포함한 이유에 대해 “언어와 청각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듣지 못하면 말할 수 없기에 언어 재활과 청각 재활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초고령화사회 진입에 따른 노인성 난청 인구의 증가와 개인 음향 기기의 과사용에 따른 소음성 난청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부족해진 청각 재활 전문가의 적극적인 양성을 위해 청각 재활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 6년 연속 언어재활사 100% 합격, 청능사 수석 현재 언어재활사와 청능사를 동시에 양성하는 곳은 전국에 5개 대학에 불과하다. 동명대의 경우 6년 연속 언어재활사 시험에 재학생이 100% 합격했고, 청능사 부문에서는 전국 수석도 배출했다. 이론과 실무가 융합된 교육과 국가고시 준비가 가능한 커리큘럼, 풍부한 경험을 가진 교수진, 최첨단 실습 인프라 등이 만들어낸 결과다.실습 교과 강의는 소규모 분반 지도로 이뤄진다.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리빙랩과 서비스랩, 도전·실천·체험을 강조하는 동명대만의 ‘두잉(Do-ing)’ 기업현장체험학습과 해외 연수 등도 실무 역량을 키우는데 기여하고 있다. 강의는 6명의 전임교수와 3명의 겸임교수가 맡고 있다. 전임교수는 말·언어 분야 전공 교수가 5명, 청각 분야 교수가 1명이다. 교수진은 강북삼성병원, 동국대병원, 부산언어치료연구소, 삼성서울병원, 삼성종합기술연구원 등에서 근무하며 실무 경력을 쌓았다. 청각재활센터장을 맡고 있는 박성일 겸임교수는 부산 최대 보청기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학과 1기 졸업생인 이수진 겸임교수는 ‘위스9 아동발달센터’를 운영하며 얻은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효과적인 치료는 정확한 진단이 중요 “대상에게 효과적인 치료(중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중재 대상자가 호소하는 내용과 원인을 정확히 평가하고 해석할 수 있는 진단 능력을 길러야 한다.” 오소정 교수(동명언어임상센터장)가 말하는 중재의 핵심 능력이다. 진단 능력을 키우기 위해 인내와 협력적 자세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언어재활사가 되기 위한 실무 역량은 3학년 1학기부터 4학년 1학기까지 집중적으로 쌓는다. 3학년 1학기에는 대학병원, 재활병원 복지관 등지에서 언어치료사의 진단 및 치료 과정을 관찰한다. 3학년 2학기와 4학년 1학기에는 2012년 개설한 동명언어임상센터에서 언어진단실습과 언어재활실습을 동시에 진행한다. 교수의 지도 아래 동명언어임상센터에서 주 2회 이뤄지는 실습 대상은 지역 사회의 아동과 성인이다. 이곳에서 언어 중재를 받으려면 2년이나 대기를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외부기관에서 받을 때보다 비용이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효과가 좋다.외부 기관이 아닌 학교 안에 있는 동명언어임상센터와 동명청각임상센터에서 2급 언어재활사와 청능사 자격증 응시에 필요한 실습 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것도 이 학과만의 장점이다. ● 취업률 80% 이상, 직업 만족도 높아 서울 을지병원에서 음성 치료사로 근무하고 있는 박지혜씨는 “음성과 관련해 다양한 환자들에게 치료 방법을 제시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문적인 언어 치료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는 것도 직업 만족도를 높이는 요소다. 부산 서강병원 언어재활사 이기쁨 씨는 “뇌의 손상 부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언어 장애 진단과 치료에 언어재활사의 역할이 크다”고 귀띔했다.이 학과 졸업생들은 언어재활사와 청능사 국가자격증을 취득한 후 재활병원, 언어치료센터, 복지관, 장애아동 어린이집, 대학병원 청력 검사실, 청각재활센터 등에 취업한다. 여기서 경력을 쌓은 후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아동발달센터에 들어가거나 보청기 판매 창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학과의 최근 2년간 취업률은 78.1%, 84.4%로 대졸자 평균 취업률과 보건 계열 취업률을 웃돈다. 학과의 모집 정원은 25명이고, 수시를 통해 24명을 선발한다. 언어재활사와 청능사에 대한 수요가 높고 미래 전망이 밝다. 그래서 타 직종에 근무하다 편입생도 늘어나는 추세다. 학과는 언어 치료와 청능 재활이 세분화 전문화하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대학원 과정을 신설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심리학 교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판단하고 선택하는지를 설명하는 혁신적 패러다임인 ‘전망 이론’을 통해 행동경제학의 길을 열었다. 그 공로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 대의 제프리 힌턴 교수 역시 심리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 연구에 혁신적인 기여를 인정받아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연세대는 이처럼 심리학이 다양한 학문과의 융합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해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각 분야의 전문성과 심리학적 지식을 융합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심리과학이노베이션대학원을 신설한다. 심리과학이노베이션대학원은 특수대학원으로 교육 커리큘럼은 심리과학 단일전공 내 △인지혁신심리 △사회혁신심리 △디지털혁신심리의 세 가지 세부 트랙으로 구성돼 있다. 2024 QS세계대학순위와 2024 THE세계대학순위에서 심리학 부문 국내 1위를 차지한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진을 중심으로 현장 전문가와 관련 전공 교수들이 강의를 맡아 심리학적 지식과 첨단 기술의 융합을 통해 혁신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운다. 이를 통해 대학원은 미래 사회의 혁신을 선도할 창의적인 융복합 인재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지혁신심리 트랙에서는 인간의 인지 과정과 뇌 기능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삼아 기술 혁신과 결합된 심리적 연구를 진행한다. 뇌과학 신경심리학 행동과학 등 다양한 학문적 접근을 통해 미래 기술 환경에서 인간의 인지적 요구를 분석해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한다. 사회혁신심리 트랙에서는 사회적 맥락에서 인간 행동과 조직 내 인간 관계에 대한 심리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문제 해결 및 조직 혁신을 위한 역량을 기른다. 조직 심리학, 리더십 심리학, 사회적 행동 등을 통해 사회와 조직 내에서의 효율적 의사결정과 갈등 관리 능력을 키워낸다. 디지털혁신심리 트랙에서는 디지털 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한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의 사용자 경험과 감정 반응을 분석한다. 빅데이터 분석, AI,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등을 다룬다. 디지털 기술과 심리학적 지식의 융합에 필요한 이론적 기초를 다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심리과학이노베이션대학원은 급변하는 기술 사회에서 인간과 기술 간 상호작용, 사회적 관계, 조직 내 인간 행동 등은 심리학적 지식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가정 하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리학적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강화하며, 융합적 사고를 바탕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도전적이면서도 지지적인 배움의 터를 제공할 것이다. 대학원은 2025년 전기 1기 신입생 모집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 학위 과정은 평일 야간 수업으로 진행돼 일과 학업을 병행하려는 직장인들에게도 교육 기회를 제공한 점이 특징이다. 특히 실무와 학문을 동시에 충족시키고자 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높은 관심을 끌 것으로 기대된다. 입학설명회는 10월 16일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대학원의 교육 과정, 입학 절차, 그리고 구체적인 학사 운영 계획 등을 소개할 예정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장애인 중에서 시각장애인의 자살률이 1위라고 합니다. 살아갈 희망이 없다는 거죠. 저도 시각장애인(6급)인데, 그들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려 합니다.” 대한민국 대표 ‘상남자’이자 ‘의리의 아이콘’인 배우 김보성(58)이 또 한번 자기 몸을 던져 누군가를 구하고자 한다. 8년 전 그는 소아암 어린이들을 살리기 위해 격투기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상대로 종합격투기 전적만 60회가 넘는 베테랑 파이터 일본의 곤도 데쓰오가 섭외됐다. 망신당할 수도 있었다. 예고편이 더 긴, 짧은 웃음거리 이벤트가 될 뻔도 했다. 걱정이 큰 만큼 그는 더 철저히 준비했고, 정면 대결로 맞섰다. 결과는 패. 상대의 펀치에 제대로 맞아 오른쪽 안와 골절상을 입었다. 그렇지만 사는 의미를 느껴 눈을 못 뜨고도 웃었다. 감동받은 소아암 어린이들은 그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다. 대전료와 입장 수익, 또 조그만 후원금을 받아 어린이들의 치료비와 수술비로 기부할 수 있었다. 그의 오른쪽 눈 주변은 여전히 조금 함몰돼 있다. 당시 수술을 했다가는 시력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어 그냥 뒀다. 김보성은 오래전 위험에 처한 친구를 구하려다 왼쪽 눈을 다쳤다. 그때 시각장애 6급 판정을 받았었다. 그러고는 또 남을 도우려다 ‘핸디캡’ 하나를 더 붙인 것이다. 그런 그가 8년 만에 다시 격투기 무대에 오른다. 이번에는 중증 시각장애인들을 돕기로 했다. 개안 수술을 해야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또 의리가 발동했다. 이번에도 상대는 곤도다. 12일 서울 강남구 섬유센터에서 리벤지 매치를 한다. 김보성보다 두 살 어린 곤도는 올해도 실전 대회에 계속 나섰다. 1차전보다 더 힘든 경기다. 김보성은 “곤도의 올해 경기를 보니 마음 같아서는 경기를 취소하고 싶다. 길게 끌면 국민들에게 망신당할 수 있다”면서도 “곤도에게 패배한 직후엔 액션 영화 섭외가 안 들어왔다. 복싱 준비를 잘해서 1라운드 1분 안에 왼손 훅으로 이기겠다”고 결의를 보였다. 극구 반대하는 아내에게 오른쪽 눈을 안 다치겠다고 약속한 뒤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상대의 오른쪽 주먹에 걸리지 않기 위해 동작을 ‘사우스포(왼손잡이)’로 바꿨다. 하루 4시간 훈련을 하고 있는데 얼마 전 3t 화물트럭이 자신의 차 뒤를 받는 사고가 나서 무릎을 다쳤다. 그래도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움을 널리 알리고, 그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 포기는 절대 없다. 김보성은 “곤도는 나를 기절시키거나 죽이거나 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에도 들어오는 돈부터 내 주머니까지 다 털어 남김없이 시각장애인들의 수술비로 쓸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수술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6개 업체가 스폰서로 동참한다. 김보성을 후원하는 안과에서 개안 수술을 하겠다고 했다. 곤도 역시 대전료를 마다했다. 못 말리는 의리인 건 알겠는데 본인이 다치면서까지 남을 돕는 이유가 뭘까. “같은 처지인 김보성도 저렇게 열심히 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저는 지금 인생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윤회’를 믿습니다. 김보성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거예요. 그러다 언젠가 김보성의 의리가 경지에 이르겠죠. 하하. 의∼리!∼입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기업가 스스로가 혁신을 위해서는 인생 평행선을 꺾어 들어 올리는 지점이 필요하다’ INI 하버드 최고 경영자 프로그램( INI Lecture Series and Executive Education by Harvard Business School and MIT Sloan Professors) 제 2기가 출범했다. 하버드 경영대 교수와 파트너십 계약을 맺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인사이트넥서스연구원(INI, Insight Nexus Institute)은 5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제2기 원우 오프닝 세레머니 행사를 열고 프로그램 시작을 알렸다. INI에서 넥서스는 연결, 융합이라는 뜻이다. 기업가들이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통찰력을 갖고 서로 연결, 연합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버드 최고 경영자 프로그램을 도입한 INI 윤태근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각자의 분야에 안주하지 않고, 오래 달려왔던 인생 평행선이 꺾어지는 지점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며 “이를 통해 각자의 영역에서 새로운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2기생들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기와 마찬가지로 2기 과정의 프로그램의 연구 주제도 거대 변혁 시대(Mega Transformation Age)다. 1기 프로그램에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관련 전현직 공무원, 전문가 등이 참여했다. 2기 원우들도 인공지능(AI),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성공 사례,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 등과 같은 수업에 참여한다. 하버드 경영대의 로리 맥도날드, 조지 세라핌, 카림 라카니 교수를 비롯해 MIT 공대 경영대학원의 조지 웨스트먼, 르네 고슬린 교수가 강의에 나선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INI 고문단 위원장 자격으로 2기 원우들을 일일이 격려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고문단 위원이다. 황 전 총리도 행사에 참석해 “프로그램을 인생 교재로, 자산으로 삼았으면 한다”며 “관계를 계속 이어가면서 인생을 재충전하라”고 당부했다. 정 전 총리도 “이제 AI가 만드는 세상은 완전히 다른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며 “원우들이 대전환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소중한 단초가 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을 전화위복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1기 과정을 차석으로 수료한 SA POWER(에스에이 파워) 손보영 대표는 “수업과 과제가 진행될수록 이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것은 모범답안이 아닌 사고의 깊이와 글로벌 리더로서의 책임감이었다”며 “글로벌 공통 아젠다와 우리의 경영 현장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게 됐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2기 과정 강의는 12일부터 시작해 11월 28일까지 매주 목요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 FKI타워 컨퍼런스센터 3층 에메랄드룸에서 열린다. 참가자에게는 국제 리더스 네트워크 참여, 미국 보스턴 하버드 경영대 캠퍼스 최종 강의 참석, 수료식 및 저녁파티(12월 9∼15일, 하버드 강의 교수진 참석), 하버드 경영대 수료증, INI 주최 하버드 경영대 국제회의, 포럼 등에 참여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진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글로벌 숙명으로 도약하겠다.” 숙명여자대학교가 문시연 제21대 총장 취임에 맞춰 21세기 글로벌 여성대학으로 나아갈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2026년에 숙명 창학 120주년을 맞는 것을 계기로 제3 창학을 선포하고, 글로벌 숙명으로 나아가겠다는 게 핵심이다. 문 총장은 ”20세기가 여성 차별에 맞선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여성의 가치가 중심이 되고 주도하는 시대”라며 ”1906년 구국애족의 정신에서 시작한 숙명이 이제는 세계 여성 문제와 성장을 돕고 협력하는 여성교육 롤모델로서 글로벌 무대에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총장은 숙명의 새로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세 가지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는 한류 중심 글로벌 대학 구축이다. ’숙명이 세계로, 세계가 숙명으로’라는 구호 아래 한류 문화와 산업기술 교육·연구의 메카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숙명 한류 썸머스쿨’ 개최해 유학생·교환학생을 적극 유치하고, 재학생들의 글로벌 탐방 확대 등을 통해 세계 유수 대학과의 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두 번째는 인공지능(AI)을 교육 과정에 창의적으로 접목하는 ’(가칭)숙명 AI 교육센터’ 설립이다. 인간의 고유한 능력인 창의성, 비판적 사고력, 소통 능력, 협업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개념 중심, 문제해결 중심의 교육을 실현한다는 취지다. 문 총장은 ”생각하고, 질문하고, 배려하는 인재 양성을 위해 통섭과 수요자 중심의 교과과정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아웃씽킹(Out-thinking)의 힘을 키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산학협력 강화다. 다양한 산학협력 교육과 플랫폼을 개척해 숙명여대가 한국 사회와 대학교육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맡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산학협력단 산하 산학공유·협업센터에 대기업뿐만 아니라 성장 가능성이 유망한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계획이다. 문 총장은 ”창학 120주년은 숙명의 잠재력과 찬란한 가능성을 활짝 꽃피우는 새로운 모멘텀이자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라며 ”120년간 지켜온 ’민족 최초의 여성사학’ 숙명의 정체성과 가치를 기반으로 글로벌 여성대학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숙명여대는 2025학년도부터 ’무전공 제도’(전공자율선택제)를 도입해 학생 중심의 유연한 학사제도를 구축한다. 급변하는 사회 수요에 대응하고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다. 정시 모집에서 전체 모집인원(예체능, 사범, 보건의료 계열 제외)의 22.3%인 381명을 무전공 제도로 선발한다. 이중 303명을 모집하는 자유전공학부는 2학년 때에 인문, 사회, 자연, 공학 계열 중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78명 규모의 첨단공학부는 숙명여대가 자랑하는 첨단학과 5곳(인공지능공학부, 지능형전자시스템전공, 신소재물리전공, 컴퓨터과학전공, 데이터사이언스전공) 중에서 전공을 선택한다. 각 학과 정원의 150% 내에서 자유롭게 전공을 고를 수 있어 빅데이터, AI 등 첨단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인천 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국제 캠퍼스로 올해 문을 연 지 10년이 된다. 그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내며 글로벌 교육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트시티에 있는 홈 캠퍼스의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과 송도의 국제적 입지를 결합함으로써, 국내외 학생들에게 세계적 수준의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아시아캠퍼스는 2014년 9월 유타대의 첫 해외 확장형 캠퍼스로 개교했다. 당시 개설 학과는 4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거침없는 성장세를 보였다. 현재는 게임학, 도시계획학, 심리학, 영화영상학, 전기공학, 정보시스템학, 커뮤니케이션학, 컴퓨터공학, 회계학 등 9개 학부 전공과 커뮤니케이션학 석사 과정을 운영 중에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의 요구와 학생들의 수요에 맞춰 빠르게 몸집을 키운 결과이다. 10년간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 변정수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입학처장은 “개교 첫 학기에 입학생이 13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매 학기 2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입학하고, 캠퍼스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졌다”며 “이는 국내외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한 다양한 전공과 우수한 연구 인프라, 활발한 산학협력 프로그램 덕분”이라고 말했다. 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미국 홈 캠퍼스와 동일한 교육 과정을 제공하면서도 현지화된 교육 콘텐츠를 통해 학생들이 글로벌 환경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언어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학업 성취도를 높이고 있다. 최재훈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국내 입학팀장은 “영어 때문에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국내 학생은 없다”며 “특히 일반고 출신 학생들도 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지원을 통해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단순한 물리적 확장을 넘어 교육 혁신에 집중했다. 이러한 노력은 미국 홈 캠퍼스의 교육적 우수성과 혁신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타대는 세계 랭킹 83위에 위치하며 세계 상위 100위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Center for World University Ranking 2018). 또한 미국 내 최고 가치 교육기관 11위 (Wall Street Journal / Times Higher Education 2019), 혁신적인 대학 30위 (Reuters, T University Rankings 2018)로 각각 선정됐다. 이러한 성과는 아시아캠퍼스에서도 동일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실리콘 슬로프’ 유타대의 혁신과 유산 유타대는 노벨상과 미국 국가 과학자상 수상자를 비롯한 유능한 인재들을 배출하는 한편 다양한 연구와 기술 개발을 통해 학계에 중요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유타대 졸업생들은 미국과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정·재계, 학계, 예술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어도비의 공동 창업자 존 워녹(수학 및 철학 학사, 수학 석사, 전기공학 박사),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공동 창업자이자 픽사 및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회장 에드윈 캣멀(컴퓨터과학 및 물리학 학사, 컴퓨터과학 박사), 베스트셀러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경영학 학사)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한국 1호 화학 박사이자 장영실, 허준과 함께 한국을 빛낸 과학 기술인으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 후보에 오른 세계적인 석학 이태규 박사는 1948년부터 1973년까지 유타대 교수로 재직했다. 유타 지역은 샌프란시스코가 ‘실리콘 밸리’로 불린 것처럼 ‘실리콘 슬로프(Silicon Slopes)’로 불린다. 수많은 기술 새싹기업(스타트업)과 정보기술(IT) 기업이 모여 있어 붙여진 별명이다. 유타대는 가장 많은 창업 기업을 배출한 대학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를 이어가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혁신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교육 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해왔다. 대표적으로 미국 대학 의료센터 서비스 품질에서 1위를 차지한 유타대 의료혁신센터(CMI· Center for Medical Innovation)가 2020년 아시아캠퍼스에 도입됐다. 센터는 인천 송도의 바이오산업과 시너지를 내며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또 유타대에서 도입해 빠르게 안착시킨 게임학 전공을 아시아캠퍼스는 작년 가을학기에 신설했다. 이에 맞춰 캠퍼스 내에 최첨단 게임 스트리밍 룸과 게임 랩, 게임 라운지를 새롭게 마련했다.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배운 이론적 지식을 실무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하고 있다.그레고리 힐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대표는 “우리는 학생들이 이론과 실무를 결합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며 “게임학 전공 학생들은 실제 게임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영화영상학 전공 학생들은 교내 영화관에서 자신의 작품을 상영하는 기회를 얻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러한 경험은 학생들이 글로벌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인천 지역 사회와의 상생아시아캠퍼스는 개교 이래로 인천 지역 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상생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유타대 CMI 아시아는 인천 지역 내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제품의 글로벌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캠퍼스 커리어센터는 재학생들에게 녹색기후기금(GCF, Green Climate Fund),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인천관광공사 등 인천지역에 위치한 국제기구 및 지역 공공기관과의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실무 경험을 제공하고 학생들의 역량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또 포스코이앤씨, 해양경찰청, 인천항만공사, 국제바이오제약전시회 등과 협력하고 봉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역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다양한 예술 공연, 전시회, 워크숍을 무료로 개최해 지역 주민들에게 새로운 문화 경험도 제공하고 있다. 유타대 발레 교수진이 이끄는 세계 유명 발레단의 공연이나 유타대 여자 체조팀 ‘레드락스’의 체조 공연 등이 대표적이다. 교육적인 사회공헌 차원에서 인천 지역 내 중,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수 강의와 외국인 유학생들과의 멘토링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운영 중이다. 인천인재평생교육진흥원과 협력하는 ‘유타대 세계시민캠퍼스’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다양한 학사 및 석사 과정 강의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생 모델은 대학과 지역 사회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세상을 연결하고, 미래를 개척하자’(Connecting Our World, Forging Our Future) 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Connecting Our World, Forging Our Future’라는 구호 아래 앞으로도 혁신적인 교육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연결하고 미래를 개척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더 많은 전공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할 예정이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과 같은 최신 트렌드도 교육 과정에 적극 반영할 예정이다. 이러한 계획은 유타대의 ‘전략(Strategy) 2030’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 ‘Strategy 2030’ 비전은 유타대가 2030년까지 미국 내 상위 10위권 공립대학교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학 커뮤니티를 넘어 유타주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유타대는 졸업생의 90%가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연구 자금을 10억 달러로 확대하는 목표를 세웠다. 아시아캠퍼스는 2030년까지 학생 수를 3000명까지 늘리고, 외국인 재학생의 비중을 40%까지 확대해 보다 강화된 글로벌 학습 환경과 학생 서비스, 지원 프로그램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랜디 맥크릴리스 유타대 국제 업무 수석 책임자는 “아시아캠퍼스 개교 10주년은 유타대가 글로벌 진출을 더욱 확대하고 매진하는 중요한 시기이자 우리 대학 역사상 매우 흥미롭고 중대한 순간”이라며 “아시아캠퍼스는 유타대의 모든 국제 전략의 중심 허브 역할을 할 것이다”고 밝혔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지난 1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단기적으로는 학생수 확대에 중점을 두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선도적인 국제 캠퍼스로 키워나가겠다.” 테일러 랜들 유타대 총장은 올해로 개교한 지 10년을 맞는 유타대 아시아캠퍼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확인하기 위해 진행한 서면인터뷰에서 “그동안 보여준 놀라운 성장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유타대는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위치한 공립 연구 대학으로, 1850년 설립된 유타주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 교육 기관이다. 2024 서부 최고의 공립대학교(Public College in the West)로 선정됐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랜들 총장은 2021년 유타대 출신으로는 50년 만에 총장에 올라 화제가 됐다. 그의 조부와 부친이 유타대 교수로 재직했고, 그 역시도 총장 임명 전 12년간 유타대 경영대학원(데이비드 에클스 경영대학원) 학장으로 근무해 뼛속까지 ‘유타대 패밀리’로 불린다. 그는 총장 취임 후 “학교를 미국 내 상위 10위 공립대학으로 도약시키고, 미국 사회에서 좀 더 영향력을 지난 교육기관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과 혁신적인 비전을 제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유타대의 글로벌 전략에서 아시아캠퍼스가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공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 국내 독자들에게는 낯설 수 있다. 본인 소개를 해줄 수 있나? “저는 유타대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50년 만에 유타대 출신으로 총장에 임명됐습니다. 게다가 제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유타대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에 헌신하셨습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유타대는 저와 제 가족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 역시도 총장으로 임명되기 전에는 12년간 데이비드 에클스 경영대학원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학교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 유타대 총장으로서 목표는?“총장으로서 제 비전은 유타대를 미국 내 상위 10위 공립대학으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학문적 성과와 사회적 기여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유타대가 집중적으로 육성해온 분야가 있는가? “유타대는 학생들의 학업 성공을 지원하고, 연구 역량을 강화하며, 글로벌 인지도를 확대하는 데 주력해왔습니다. 모든 학생이 고품질의 교육과 필수적인 자원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고, 학문 간 협력과 연구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특히 아시아캠퍼스는 유타대의 국제적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 노력들이 성과로 이어졌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첫 번째로, 아시아캠퍼스의 설립과 확장을 통한 유타대의 글로벌 전략실행을 꼽을 수 있습니다. 게임학과 같은 새로운 학문 프로그램의 도입과 다양한 파트너십을 통해 아시아캠퍼스의 역할을 강화해왔습니다. 두 번째로, 학생 성공과 경험을 중시하는 다양한 이니셔티브를 도입했습니다. 특히 2014년에 선보인 라슨드 스튜디오(Lassonde Studios)는 학생들이 ‘거주하고(Live), 창조하고(Create),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Launch)’ 혁신적인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이는 미래형 캠퍼스 생활 학습 공동체의 모델이 됐습니다. 세 번째로, 최근 4년간 기록적인 입학률을 기록했으며 올해 가을에는 5800명 이상의 신입생을 맞이했습니다. 또 2019년에는 유타대가 미국대학협회(AAU)에 초청을 받아 회원 자격을 획득했고, 연구 및 교육 분야에서 높은 수준을 인정받았습니다. 네 번째로, 국제 무대에서도 꾸준히 존재감을 나타냈습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부터 2024년 미국 대통령 후보 토론회 개최지로 선정됐습니다. 또 2034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다시 올림픽 빌리지와 개·폐막식 장소로 선정됐습니다. 이는 유타대의 글로벌 위상을 한층 높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유타대 아시아캠퍼스의 10주년이 갖는 의미는? “유타대 아시아캠퍼스의 10주년은 매우 의미 있는 이정표입니다. 아시아캠퍼스는 유타대의 글로벌 전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세계적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캠퍼스는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활기찬 학문 공동체를 형성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 역할을 더욱 강화할 것입니다.”● 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인재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아시아캠퍼스는 솔트레이크시티 홈 캠퍼스와 동일한 학문적 기준과 프로그램을 운영해 학생들이 두 캠퍼스에서 모두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글로벌 경제에 필요한 기술과 문화적 역량, 그리고 국제적 인식을 키우고 있습니다. 특히 현지 산업과의 파트너십은 학생들이 실질적인 경험을 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0주년 기념 구호로 결정된 ‘Connecting Our World, Forging Our Future(세상을 연결하고, 미래를 개척하자)’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기념 구호는 유타대가 학문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협력과 이해를 증진시키려는 노력을 상징합니다. 학교가 학생들이 글로벌 도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각 분야에서 리더로 성장하도록 돕겠다는 뜻도 포함한 것입니다.”●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이나 계획이 있다면…. “우선 미국 홈 캠퍼스와 인천 송도 아시아캠퍼스 간의 학생 교류를 더욱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다양한 학습 옵션을 제공하고, 두 지역의 산업 및 정부와의 협력도 강화할 생각입니다. 또한 연구 협력과 공동 학문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 중입니다.”● 아시아캠퍼스의 미래가 궁금하다. 단기, 중기, 장기 목표가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학문 프로그램 확대와 학생 등록 인원을 늘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 다음 아시아 지역에서 연구 역량과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학생 및 교수 교류 프로그램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아시아캠퍼스를 유타대의 글로벌 전략에 완벽히 통합된 선도적인 국제 캠퍼스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글로벌화 못지 않게 로컬화도 중요하다. 인천 지역사회와 어떤 식으로 협력하고 기여할 계획인가? “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역 기업, 정부 기관, 그리고 교육 기관들과 협력해 커뮤니티 아웃리치 프로그램과 문화 교류 이니셔티브를 통해 상호 이익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번영하는 것이 저희의 중요한 목표입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은어, 속어죠.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이런 인연은 드물 거다. 24년 전, 지금까지도 최고 역작으로 회자되는 대하 드라마에서 160회가량 함께 등장했다. 극 중 같은 주군을 모신 둘은 늘 화면에 같이 잡혔다. 한 사람이 대사를 하면 다른 한 사람의 대사가 이어졌다. 밥도 같이, 잠도 같이, 촬영도 같이, 늘 붙어 다녔다. 주말 2회 방영하는 드라마였으니 준비 기간을 더해 3년 가까이 같은 인생 궤도를 돌았다.드라마 인기 덕에 지금도 마주치는 사람들은 둘을 극 중 역할로 부른다. 한 명을 얘기하면 “또 한 명은 어디 갔느냐”고 묻는다. 기분 좋다. 더군다나 둘의 배역은 주군을 위해 몸 바치며 의리와 우정의 대명사가 됐다. ‘인생 배역’이어서 그렇게 살려고 했고 살아 왔다. 친형제간도 싸워서 안 보는 경우도 많다는데 의형제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배우 김학철(65)과 김형일(64)의 관계가 이렇다. 2000년 시작돼 200회 방송된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둘은 고려 태조 왕건의 최측근이자 개국 1등 공신인 박술희와 신숭겸 장군 역할을 각각 맡아 드라마 인기에 한몫했다.‘성질이 용감하고 과감했다.’역사책 ‘고려사’는 박술희를 이렇게 표현했다. 김학철도 호탕하고 통이 크며 대담하다. 신숭겸은 건장하고 힘이 좋으면서도 매사 침착하고 진중했다는데 김형일도 몸집 좋고 배포 있으며 중후하고 울림이 큰 중저음에 사람을 보듬는 여유까지 갖췄다.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 캐스팅이다.“형일 씨. 여기에요.”“학철 씨.”11일 둘은 서울 지하철5호선 마포역 1번 출구에서 만났다. 먼저 도착한 김학철이 김형일을 마중 나왔다. 그런데 서로 존대말을 쓴다. 김학철이 한 살 많은 데다 연예계 데뷔도 조금 빨랐으니 반말을 해도 괜찮을 텐데 20년 넘게 만났으면서도 서로 존대한다.“형일 씨는 연예인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에요. 허세라는 게 없어요. 모범생이죠. 이런 형일 씨를 지켜주고 싶어서죠. 동생이라고 ‘야야’ 하면 빈정 상할 수 있어요. 서로 존대해야 오래 갈 수 있다고 봅니다.”(김학철) ● 잊지 못할 캔맥주 두 캔서울예대 연극과 출신 김학철은 1978년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김형일은 1987년 CBS 성우 15기로 연예계에 들어섰고 1989년 KBS 13기 공채 탤런트가 됐다. 1990년 임권택 감독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신마적 역할로 세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서로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마주친 적은 없던 둘은 ‘태조 왕건’에서 처음 만났다. 신숭겸 역할 후보는 몇 명 있었는데 감독이 김형일을 보고 바로 오케이를 했다.“그냥 적역이었죠. ‘삼국지’ 속 인물에 어울리는 연기자 설문조사에서 김형일은 부동의 관우였으니까요. 장비는 저와 몇 명이 경합이었어요. 그러고 보니까 형일 씨는 (방송사) 공채를 두 번이나 합격했네. 부럽다.”(김학철)“괜히 시험봤나 봐요. 그때는 어떻게든 바닥부터 올라가려고 했으니까. 바로 연기할 수 있었는데 왜 시험을 봤을까, 참 나.”(김형일)큰 웃음이 터진다.드라마 초반 왕건이 송악에서 처음으로 박술희, 능산(후에 신숭겸)과 만나 인연을 맺는다. 왕건은 이들의 무예 실력에 놀란다. 둘은 왕건의 반듯함에 끌려 주군으로 모시겠다고 말한다. 극에서는 신숭겸이 박술희보다 나이가 많다. 왕건은 “천하 용장과 호걸을 얻었다. 하늘이 내리신 선물”이라며 의형제를 맺는다. 의리의 시작이다. “그 장면이 나오는 회가 방송될 때 서울 남대문시장에 가봤어요. 난리가 났더라고. 삼겹살을 구워 드시던 시장 상인들이 같이 먹자고 저를 잡아 끄시더라고요. 박술희가 변 사부(왕건의 무예 스승)와 대결하는 장면에서 누가 이겼냐고 여기저기서 물어보시고, 궁금해서 잠이 안 온다고 하실 정도였죠. 대단했습니다.”(김학철)“대본이 나왔는데 그 다음 대본이 궁금할 정도인 거예요. 광고도 많이 찍었고. 얼마나 재미있는지 2박 3일간 촬영을 해도 힘들지 않았어요.”(김형일)두 사람한테도 의미가 큰 촬영이었다.“형일 씨 기억나요? 그 장면 찍고 (경북) 문경 세트에서 형일 씨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를 내가 같이 타고 올라올 때에요. 저는 매니저가 없었으니까. 형일 씨가 ‘목 마르지 않아요?’ 하더니 구멍가게에서 맥주 두 캔을 사 갖고 온 거야. 야, 그 장면 찍고 나서 마셨는데 너무 맛있는 거죠. 한 방울도 안 남기고 다 마셨어요. 인생 맥주라니까.”(김학철)“진짜 맛있었어. 진짜.”(김형일)“캔맥주 원샷. 완전 엊그제 같아요. 형일 씨가 ‘학철씨, 이거 마셔 봐요’라고 해서 정말 고마웠거든요. 캔에서 입을 못 떼겠더라고. 촬영하면서 땀을 너무 많이 흘렸잖아. 그때 그 맥주로 우린 완전히 친해진 것 같아. 정말 의형제가 된 계기죠.”(김학철)● “신숭겸 죽었을 때 흘린 눈물은 연기가 아니었다오”고려 첫 황제가 된 왕건에게 후백제 견훤과 벌인 공산(현 대구) 전투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다. 직접 전투를 지휘했지만 대패했다. 목숨만 살았다. 아끼던 장수 8명을 잃었다.대구 팔공산은 왕건을 살리고 장렬히 전사한 이 8명을 기린다고 한다. 그중 신숭겸이 있다. 신숭겸은 사방으로 포위된 왕건을 탈출시키기 위해 황제의 갑옷을 입고 황제의 백마를 타고 적을 유인하고는 끝내 숨졌다. ‘태조 왕건’ 161회다. 후백제군은 왕건의 수급을 취해 견훤(서인석 역)에게 보낸다. 견훤은 왕건이 아니라 신숭겸임을 확인하고 그의 충성심에 탄복한다. -신숭겸이 황제 복장을 하고 왕건 앞에 나타나 눈물로 ‘형님 폐하’의 대업을 바란 뒤 적지로 향하는 장면이 압권이었습니다. 시청률도 대단했어요. 왕건 역할 최수종은 “아우야, 아니 된다” 하면서 눈물, 콧물, 침까지 흘리는 오열 연기를 펼쳤어요. “왕건과 신숭겸의 마지막 신은 무조건 한 번에 오케이 됐어요. 감정을 완전히 몰입했기 때문에 다시 찍을 수도 없었죠. 어떻게 남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 제가 생각해도 신숭겸이 대단해요. (최)수종이도 저하고 헤어질 때 울었는데 나도 마찬가지였죠. 정이 엄청 든 데다 서운함까지 담겼다고 봐요. 참, 공산 전투 마지막 촬영하고 제가 ‘군에서 제대한 것 같았다’고 했어요. 문경에서 거의 3년을 있었으니 말이죠.”(김형일)“맞아요. 우리는 소위 ‘문경지리부도’를 꿰고 있었던 거야. 순대국집이 어디고, 세탁소가 어디고…. 그 지역에 태조 왕건 상호 딴 집도 많아. ‘왕건식당’부터 해서.”(김학철)“학철 씨도 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 알려 드릴까요?”김형일 눈이 반짝거린다.“제가 죽고 나서 후백제가 신숭겸 수급을 견훤에게 가져갑니다. 견훤이 그 수급을 바라볼 때 화면에 눈 뜨고 죽은 신숭겸 얼굴이 잡혀요. 그런데 그 얼굴이 만든 게 아니에요. 제가 실제로 틀 밑에서 머리를 집어 넣고 진짜 눈 뜨고 있던 거예요. (전부 폭소) 만들 시간이 없었으니까.”(김형일)“와, 그게 가짜가 아니고 진짜였구나. 전혀 몰랐다. 하하하”(김학철) -신숭겸이 전사한 뒤 왕건이 겨우 살아 돌아왔을 때 박술희가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박술희는 공산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다)“그 순간은 연기하는 현실을 벗어났다고 할까. 정말 의형제를 잃은 것처럼 빙의가 된 거지. 어떻게 연기를 해야겠다가 아니라 그냥 의도하지 않은 목소리를 내고 집중한 거예요.계산한 연기가 아니고 기운이죠. 신숭겸의 죽음은 극 전체의 하이라이트라고 봐요. 인간은 죽음에 대해 열등감과 두려움을 느끼거든. 안 죽어 봤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자기 자신이 아닌 주군을 위해서 죽어?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컸을 거예요.”(김학철)-신숭겸 역할이 사라지면서 혼자 촬영하게 됐는데 외롭지 않았습니까.“희한한 게 드라마 내내 진짜 형제가 만나는 것 같았어요. 서로 연기하면서도 좋아하는 농도가 달라요. 시청자들도 그렇게 보셨다고 해요. 당연히 형일 씨가 빠지니 텅 빈 느낌이었죠. 그런데 신숭겸의 평산 신씨 가문 사람들이 촬영 현장이든 다른 곳이든 응원을 해 주더라고요. 친하게 지내자고 다가올 정도였으니.”(김학철) ● 면천 박 씨 박술희가 평산 신 씨 시조급 대우 받다 신숭겸 원래 이름은 능산이다. 왕건이 황제가 되고 황해도 지역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능산의 활쏨씨에 감탄해 그 자리에서 신숭겸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그래서 신숭겸은 황해도 평산 신 씨 시조가 됐다. 신숭겸이 묻힌 곳은 강원 춘천시 서면 방동리. 근처에 유명한 ‘박사 마을’이 있는데 평산 신 씨 후손들이 많이 산다. 드라마 덕에 의성 김 씨 김형일은 평산 신 씨 VIP가 됐다. 드라마에서도 신숭겸이 죽고 이례적으로 신 씨 가문 이력을 내레이션으로 오래 설명했다.“한번은 신 씨 가문 시제를 지내는데 저를 초대했어요. 그쪽 요청으로 신숭겸 갑옷을 입고 참석한 적도 있어요. 제일 상석에 가문 어르신이 앉고 그 다음 자리에 제가 앉았어요. 뿌듯한데 일단 정신이 없죠. 하하하. 아래를 보니까 한참 어르신들이 계시더라고요. 이 집안과 인연이 큽니다. 드라마 ‘징비록’에서는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으로 나왔잖아요. 신 장군도 평산 신 씨입니다. 보통 인연이 아닌 겁니다.”(김형일)“고려 개국공신 박술희는 후에 면천부원군으로 봉해져서 면천 박 씨 시조가 됐거든. 그런데 박술희가 현실에서는 평산 신 씨 ‘준(準)시조’가 됐다니까. 하하. 자기 선조하고 의형제를 맺었다고 이유없이 좋아해주는 거예요.”(김학철) -공산 전투에 나서지 않은 박술희가 만약 위기에 처한 황제를 신숭겸과 같이 모시고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겠죠. 당시 역사는 신숭겸을 선택한 거예요. 드라마로도 내가 있으면 시선이 분산됐을 거예요. 공산 전투 포커스는 신숭겸이었어요. 대신 나는 상주 아자개성(城)에서 성주와 ‘술희! 왔어?’, ‘머루주 한잔 올리겠습니다. 상부 어른’ 하면서 주목과 사랑을 받았잖아요. 의형제끼리 나눠 가져야지. 하하.”(김학철) ● 서로 부러운 게 많아 존경하는 ‘결의형제’둘은 시간을 쪼개서라도 만나려고 한다. 만나서 둘만 아는 얘기를 하는 게 낙이다. 한 얘기 또 해도 좋고, 그러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 ‘땡 잡은’ 거다. 인생 묘미다. 술 안주, 밥 반찬이다. 너 잘 나고, 나 못났니 타령하면서도 기분 상하지 않는다. 내가 못 가진 것 그대가 가져 좋고, 한 번쯤 장난으로 질투 삼아 염장을 질러 본다. 사는 얘기하다 다시 ‘태조 왕건’ 추억으로 튼다. “박술희는 대주도금(아자개의 딸) 낭자라도 있었죠. 신숭겸은 가족도 여자도 없이 주군한테 충성만 다했어. 하하”(김형일) “그렇구나. 그런데 신숭겸은 워낙 존재감이 크니까 곁가지가 필요 없는 거지. 나는 짝사랑이잖아요. 한 번은 (김)갑수 형이 그러더라고. ‘너는 로맨스가 있어서 좋겠다’. 하하. 그 형은 스님 종간 역이었잖아요. 나는 머리를 빡빡 밀었는데 신숭겸은 머리도 길게 따고 아주 멋있었어요. 또 생각나네. 내가 대주도금 낭자에게 푹 빠져서 헤맬 때 신숭겸이 와서 구해줬잖아. 신숭겸이 ‘오늘 왜 그리 덤벙되는가’라면서 근엄하고 멋있게 꾸짖어요. 그래도 박술희는 바보처럼 ‘형님, 저 꾀꼬리 같은 목소리, 선녀가 하강한 것 같지 않소이까?’라고 하지. 그러다 군사 절반을 잃고는 왕건한테 불려 가서 된통 혼이 난 거야. 이어지는 장면이 나도 너무 서운했는데 우리 어머니가 최수종한테 엄청 삐치셨어요. 왕건이 박술희한테 그러는 거야. ‘그 얼굴에도 여자를 생각하는가.’ (모두 포복절도) 와, 그 장면을 우리 어머니가 보시다 난리가 난 거예요. 최수종 가만 안 둔다고. ‘우리 아들이 어째서. 장동건보다 낫지’ 하시는데…. 말리지를 못하겠는 거야. 그렇게 ‘극대노’하는 거 처음 봤어요.”(김학철)“그래도 부럽더라. 하하.”(김형일)-연말 KBS 연기대상 조연상은 김학철만 받았습니다. “상복은 정말 더럽게 없어요.(모두 웃음)”(김형일) “신숭겸이 ‘러브 라인’을 탔으면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김학철)김학철은 연극 ‘청부’로1990년 제27회 동아일보 동아연극상 연기상(남자)을 수상했다. 1996년 제17회 청룡영화제서는 영화 ‘본투킬’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KBS 연기대상까지 상복이 제법 있다. 김형일은 바닥에 깔리는 저음으로 “요즘이었다면 신숭겸과 박술희 공동 수상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애매모호해진 분위기를 정리한다. 김학철은 “형일 씨한테 부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말 잘 타는 게 제일 부러웠다. 형일 씨는 목줄을 한손으로 잡고 질주한다”며 의형제를 다시 치켜세운다. -박술희는 말 타는 게 특별했다면서요. “왕건하고 장군들 하고 말을 타면 내 말만 샛길로 빠져 혼자 가요. 하하. 그 때 신숭겸이 제일 통쾌하게 웃긴 했어요. 촬영하다 말한테 ‘어디 가니, 어디 가’를 한두 번 한 게 아니라니까. 미쳐 돌아버렸죠. 나중에는 말 한 필 내어 달라고 해서 혼자 연습했다니까요.”(김학철)“원래 내 몸을 말 걸음하고 리듬을 맞추면서 타야 하거든요. 그런데 박술희는 엉덩이와 박자가 따로 노는 게 보여. 하하. 뒤에서 보면 통통통통 튀면서 타는 거지. 다행히 대머리라서 철모가 안 보이니까 다행인 거죠.”(김형일)“하하. ‘통아저씨’ 허리 튕기는 것 있잖아요. 그런 거지. 형일 씨가 부드럽게 얘기한 건데 스태프들한테는 엄청 구박을 받았어요. 최수종 씨 잘 타지, 형일 씨는 한 손으로 타지. 왕건과 우리 둘이 삼각편대인데, 제가 못 타면 안 되잖아요. 형일 씨가 많이 도와줬어요. 그래서 죽기 살기로 배웠어요. 극에서 신숭겸이 나를 구하러 왔잖아요. 그때 나는 역사와 현실을 혼동했어요. 진짜 ‘나를 구하러 왔구나’ 생각했어. 형일 씨는 모를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만나는 겁니다.”(김학철)“말이 영리하게 사람을 가리거든요. 올라가서 어리버리하면 말이 고개를 돌려 쳐다봅니다. 하하. 학철 씨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수종이는 말 타고 돌격하라고만 했지, 말등에서 칼질은 우리가 다 했어요. 하하.”(김형일) ● 인생 부(副) 캐릭터도 가진 ‘우리’ 가수라면 히트곡 하나 얻기 쉽지 않은데 둘은 인생 최고 캐릭터 말고도 크게 각인된 부(副) 캐릭터가 있다. 김형일은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으로 열연했다. 몇 회 나오지는 않았지만 강렬했다. 김재규 역할은 세간의 관심을 온통 받는다. 이 역을 맡은 배우들끼리도 비교 된다. 준비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촬영 현장에서도 동선을 완전히 숙지하고 몰입해야 한다.김학철은 시청률 ‘대박’이던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조병옥 박사를 맡아 한 번 더 화제가 됐다. 외모와 말투가 판박이어서 조 박사를 아는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둘 다 연기력만으로 ‘태조 왕건’의 의형제를 잠시 잊게 했다.“당시 전두환 역할을 맡은 (이)덕화 형님이 ‘중요한 배역이 있다. 짧고 굵게 한 번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 역할이 김재규였어요. 딱 드는 생각은 ‘하면서도 욕먹을 수 있지 않을까’였죠.”(김형일)-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조병옥 박사 연기에 감동해 직접 연락을 했다면서요.“이 전 의장님 얘기로는 제가 조 박사하고 똑같다는 거예요. 한참 ‘야인시대’ 할 때 63빌딩 중식당에서 저녁을 하자고 하세요. 의장님이 저를 식당에서 보시더니 대뜸 ‘조 박사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하시는 거야. 가만 있을 수 없어서 조 박사로 빙의했죠. ‘이봐, 만섭이. 의원 되고, 국회의장까지 되어 있구만’이라고 받아쳤죠. 의장 비서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의장님은 한참 웃으시면서 좋아하셨어요. 의장님 말씀이, 조 박사가 말년에 미국에서 수술을 받고 퇴원할 무렵 전화를 주셨대요. ‘만섭이, 수술 잘 끝났어. 돌아가면 ‘용금옥’에서 한잔 하지.’ 그러고 얼마 안 지나서 돌아가셨다고요. 통곡하셨답니다.”(김학철)서로가 공유한 지난날을 돌아보니 계속 만나길 잘했다. 안 만났으면 그날들은 묻혔을 테고, 기억을 잃을 뻔했다. 추억마저 남지 않았을 수도.“진짜 행운이에요. 그런 드라마에서 만났다는 건. 드라마 100~200편 한 것보다 ‘태조 왕건’에서 형일 씨 만난 게 최고야. 우리는 평생 갈 거예요. 돈이 조금 있어도 쓸 친구가 없다면 슬픈 인생인데 저는 형일 씨 덕분에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아요.”(김학철)“현실에서도 나를 1순위로 늘 대접해주는 박술희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화답하는 김형일.아직 6공화국이 끝나지 않아 ‘제6공화국’이라는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들이 어떤 역을 맡을지도 기대된다. 어느 역에 어울릴까, 상상도 재밌다. 둘의 말이다. 앞으로도 둘은 보물처럼 서로를 아낄 것이다.-김형일에게 김학철이란?“경쟁자이자 친구죠. 전혀 다른 연기를 하니까 배울 것도 많고, 가져오고 싶은 것도 많아요. 나름대로 내 것을 한다고 하는데 학철 씨 것이 부러워요. 강조하지만 경쟁이라는 말은 내가 배울 게 많다는 의미에요.”-김학철에게 김형일이란?“저는 달라요. 경쟁자로 안 느껴요. 영원한 내 편이에요. 만나면 든든해요.”맞다. 확실하게. 캐릭터가 다르다. 그런데 잘 맞아 시너지가 난다.“‘태조 왕건’ 할 때 찍은 에어컨 광고가 기억나요. 내가 박술희 대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시원하겠구만’ 했어요.”(김형일)“맞아. 우리가 편하게 (에어콘) 회사가 좋아할 명장면을 만든 거예요. 그 장면이 예비 컷이었다가 메인이 됐지. 이런 거죠. 우리 사이가.”지금의 기억을 남기고 싶어 김학철이 구독자 10만을 자랑하는 자신의 유튜브 ‘김학철 TV’ 라이브를 연결하니 2만 명 넘는 유저들이 들어왔다. 김형일이 비치니 더 몰려들었다.인터뷰를 마무리하려는데 둘은 조건반사적으로 다시 ‘태조 왕건’으로 매일 만날 이유를 찾는다.“‘태조 왕건’을 ‘전원일기’처럼 10년, 20년 했으면 좋겠어요. 전국 돌아다니면서….”(김형일)“아니 시즌제로 해버리자.”(김학철)전국을 돌아다니니 지방과 농촌 살리기도 될 수 있을뿐더러 장군복을 벗은 신숭겸과 박술희가 어느 음식점에 가고 퇴근 후 생활은 어떤지 사는 재미를 다 보여줄 수 있겠다는 별의별 아이디어가 나온다. 신숭겸의 중후한 목소리를 흉내내는 병사도 나올 수 있고, 박술희가 무신에서 문신으로 옮겨 궁궐에서 적응 못하는 에피소드까지…. 기상천외한 김형일의 발상에 김학철은 웃다 지쳐 바닥에 쓰러졌다. 이러니 둘의 우정은 요지부동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천년 하드웨어에 미래지향적인 소프트웨어를 채운다.’천년고찰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특별한 음악회가 열린다. 진관사의 진면목을 전통과 현대가 적절히 어우러진 음악을 통해 다시 느끼고 들여다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행사다. 서울문화재단(이사장 박상원)과 진관사(주지 법해 스님)는 21일 오후 6시 30분 진관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음악회 ‘진관미학’을 개최한다. 올해로 20번째인데, 인기 탤런트 박상원 이사장이 예술감독을 맡아 공연을 총지휘했다. 박 이사장은 “고려 8대 왕 현종이 지은 진관사는 백운대-인수봉-만경대로 이어지는 삼각산(북한산)의 품 안에 있다”며 “서울 시내에 이렇게 사계절 멋있는 사찰이 드물다”고 소개했다. 이어 “진관사의 기와, 단청, 계곡 물소리, 그리고 그 안에 역사…. 놓친 것들을 다시 확인하자는 음악회라 미학적이다”며 “이런 의미를 담아 이번 음악회 테마를 ‘진관미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덧붙였다.출연 가수 구성도 박 이사장이 짰다. 방송인 안현모가 사회를 맡고 재즈 보컬리스트 루카 마이너, 서민아와 클래식 기타리스트 장하은 등이 나선다. 서울대 국악과 출신 정가(가곡, 가사, 시조 등) 보컬리스트 ‘풍류대장’ 최여완, 가야금 아티스트 주보라, 이화여대 국악관 현악단 등도 출연해 평소 경험할 수 없는 음악세계를 보여준다. 박 이사장은 “전도유망한 젊은 실력파 뮤지션들을 엄선했다”며 “이들의 재즈, 클래식 기타, 가야금 소리 등은 사찰을 흔들지 않고 진관사 역사에 관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회에는 30개국의 주한 외교대사들도 참석한다. 누구든지 참석할 수 있으며 입장료는 없다. 박 이사장은 “스토리가 있는 서울의 역사적 공간에서 앞으로도 미래형 공연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천년 하드웨어에 미래지향적인 소프트웨어를 채운다.’ 천년고찰 서울 진관사에서 특별한 음악회가 열린다. 진관사의 진면목을 전통과 현대가 적절히 조화된 음악을 통해 다시 느끼고 들여다보자는 행사다. 서울문화재단(이사장 박상원)과 진관사(주지 법해 스님) 주최로 21일 오후 6시 30분 진관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음악회 ‘진관미학’이 열린다. 올해 20번째다. 인기 탤런트인 박상원 이사장이 공연 연출을 총지휘했다. 박 이사장은 “고려 8대 왕 현종이 지은 진관사는 백운대-인수봉-만경대로 이어지는 삼각산(북한산)의 품 안에 있다. 서울 시내에 이렇게 사계절 멋있는 사찰이 드물다. 진관사의 기와, 단청, 계곡 물소리, 그리고 그 안에 역사…. 놓친 것들을 다시 확인하자는 음악회라 미학적이다. 그래서 ‘진관미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라고 했다. 출연 가수 ‘라인업’도 박 이사장이 짰다. 전체적으로 음악회지만 연극적인 테마를 갖고 간다. 박 이사장은 “전도유망한 젊은 실력파 뮤지션들을 엄선했다. 이들의 재즈, 클래식 기타, 가야금 소리 등은 사찰을 흔들지 않고 진관사 역사에 관통할 것”이라고 했다. 재즈 보컬리스트 루카 마이너, 서민아와 클래식 기타리스트 장하은이 나선다. 서울대 국악과 출신 정가(가곡, 가사, 시조 등) 보컬리스트 ‘풍류대장’ 최여완, 가야금 아티스트 주보라 등도 색다름을 선사한다. 누구든지 참석할 수 있으며 입장료는 없다. 박 이사장은 “스토리가 있는 서울의 역사적 공간에서 계속 미래형 공연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한라대(총장 김응권)는 6일 대학 인공지능(AI) 역량 강화 목표를 비전으로 선포했다.이날 선포식에서 미래형 자동차 기술융합혁신인재양성 사업단(단장 고국원 미래모빌리티공학과 교수)은 AI 교육 혁신과 학생 역량 강화를 위해 산학(産學) 공동인증제도 및 장학금 체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참여 학과는 미래모빌리티공학과, 컴퓨터공학과, AI정보보안학과, IT소프트웨어학과다. AI 리터러시부터 AI 개발자 양성까지 단계별로 교육한다는 것.● 산학공동인증제도-AI 학습 서버 도입사업단은 구글과 엔비디아 AI 인증 제도 등을 기반으로 AI 산학공동인증을 시행해 학생 AI 역량을 체계적으로 강화할 예정이다. 학생들은 기본부터 심화 과정 교육을 통해 실무에서 요구하는 AI 능력을 기른다.AI 기술을 실제 적용하고 활용 능력을 기르도록 AI 학습 서버와 AIOT(AI사물인터넷), 엣지 AI 임베디드 같은 시스템 실습 장비를 도입했다. 또 올해 신입생들은 엔비디아 AI 대사 초빙 교원에서 기초 AI 교육을 받고 젯슨 나노 자격증을 취득할 기회를 받는다. 2, 3학년생은 AI 활용 프로젝트와 자격증 취득을 통해 실무 능력을 높인다. 3, 4학년생들은 구글 기계학습 라이브러리인 텐서플로 개발자 자격증을 취득해 AI 알고리즘 개발자로 성장하게 된다.● 미래 모빌리티 특성화 교육 전국 5위권 진입 목표한라대는 학습 의욕을 높이고 실무 중심 AI 역량 제고에 더 집중하도록 AI 산학공동인증 취득 학생에게 장학금 40만 원을 지급한다. 김선옥 IT소프트웨어학과장은 “최근 AI 활용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AI 리터러시는 필수 역량이 됐다”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장학제도를 통한 학생 AI 역량 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지연 AI정보보안학과장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AI 기술 및 역량을 강화해 정보 보안과 데이터 분석 실무 능력을 높이는 것이 필수”라고 지적했다.한라대는 미래 모빌리티 특성화 교육 부문 전국 5위 내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AI 교육 모델은 산업 환경 변화에 빨리 적응하고 경쟁력을 갖춰 성공 경로를 찾아가는 혁신 교육 발판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라고 한라대는 밝혔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동명대의 ‘오픈캠퍼스 진로진학박람회’가 지난달 31일 부산 남구 동명대 캠퍼스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에는 전국의 학생과 학부모 8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전호환 동명대 총장은 개막식에서 “좋아하는 것, 잘하는 걸 해야 성공할 수 있다”며 동명대에 개설된 특별한 학과를 일일이 소개했다. 또 도전·실천·체험이 핵심 가치인 Do-ing(두잉)교육의 중요성과 경상국립대 동물병원, 펫파크, 캠퍼스 기반 은퇴자 시설 등 앞으로 캠퍼스에 들어설 주요시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반려동물대학, Z세대 관심 높아 이날 오전 10~오후 5시까지 열린 박람회에는 △전공 체험 △1:1 입학 상담 △캠퍼스 투어 등이 진행됐다. 특히 학생들은 이날 오전 10시, 오후 1시30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전공 체험에 큰 관심을 보였다. 김수진 반려동물대학 학장은 “Z세대의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많은 학생이 찾아왔다”고 소개했다. 교사 11명과 동명대 입학사정관 5명이 나선 1:1 대입 상담에도 학생과 학부모들이 몰렸다. 상담에 나선 조국희 부경고 교사는 “수시 원서 접수가 임박해 자신의 점수가 지원하려는 학과에 맞는지에 대한 따른 상담이 주를 이뤘다”고 전했다. ●언어치료청각재활학과, 고소득과 사회봉사 가능 학생들은 간호학과나 작업치료학과, 언어치료청각재활학과, 스포츠 재활학과 등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할 수 있는 보건 계열의 학과에 큰 관심을 보였다. 곽옥금 동명대 입학홍보처장은 “두잉(Do-ing)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전통과 실용이 어우러진 학과들이 동명대에 많이 있다”며 “3회째 이어지는 오픈캠퍼스가 동명대의 진면목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동명대는 이달 9~13일까지 진행되는 2025학년도 수시 모집에서 1392명을 모집한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