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세종로 막히자 서대문 이동 도로점거… 시민-상인 큰 불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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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등 전국 14곳서 5만명 총파업
경찰 통제 피해 ‘게릴라식 시위’
5인 미만 사업장 차별 철폐 등 요구

20일 오후 3시경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사거리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 약 2만7000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총파업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집회 신고지역이 아닌 서대문역 앞에서 기습 시위를 열면서 교차로 한복판에 연단을 설치하고 동서남북 방향 100∼150m씩 ‘십자(十) 형태’로 8차로를 점거한 채 1시간 50분간 집회를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일 오후 3시경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사거리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 약 2만7000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총파업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집회 신고지역이 아닌 서대문역 앞에서 기습 시위를 열면서 교차로 한복판에 연단을 설치하고 동서남북 방향 100∼150m씩 ‘십자(十) 형태’로 8차로를 점거한 채 1시간 50분간 집회를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일 오후 1시 반경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사거리. 지하철역에서 나온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조합원 수백 명이 인도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횡단보도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자 길을 건너는 듯하더니 갑자기 왕복 8차로 도로를 한순간에 점거했다.

이 시각 을지로 입구와 서울역 등 인근에 흩어져 있던 시위대도 “집회 장소를 서대문역으로 변경한다”는 민노총의 공지를 받고 서대문역으로 속속 이동했다. 경찰청 건물이 위치한 방향에서도 참가자들이 합류해 시위대는 순식간에 불어났다.

경찰은 민노총이 당초 총파업 집회 장소로 신고했던 세종대로 사거리와 여의도 등지에 배치했던 인력을 급히 서대문역으로 이동시켰지만 시위대를 해산시키지 못했다. 오후 2시 40분경까지 모여든 약 2만7000명(주최 측 추산)의 참가자들은 교차로 한복판에 연단을 설치하고 동서남북 방향 100∼150m씩 ‘십자(十) 형태’로 도로를 점거한 채 1시간 50분간 집회를 했다.

○ 기습 집회 후 도로 점거한 채 ‘기념사진’
이날 전국 14곳에서 총파업과 집회를 벌인 민노총은 당초 신고 지역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기습 시위를 하는 방식으로 경찰의 통제를 피했다. 민노총이 서울 집회 장소로 선택한 서대문역은 경찰과 서울시가 시위에 대비해 지정한 지하철 무정차 역 5곳에 포함되지 않았던 곳이다. 세종대로 사거리나 대한문 인근에 비해 경찰 병력도 적게 배치돼 있었다.

시위대의 도로 점거로 차량 운전자와 상인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갑자기 통행이 막힌 한 택배 차량 기사는 “나도 노동자인데 먹고살아야 되는 것 아니냐”며 경적을 수차례 울린 뒤에야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서대문역 인근에서 국숫집을 운영하는 최모 씨(47)는 “시위대가 도로로 우르르 몰려나오면서 우회전하던 차량 운전자와 시비가 붙어 욕설이 오갔다”며 “시위가 시작된 이후 가게에 손님이 한 명도 안 왔다”고 토로했다.

일부 집회 참가자들은 민노총이 배포한 방역지침에 맞춰 참석자 간 1, 2m 거리 두기를 하거나 방역복 또는 페이스실드를 착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위대가 대규모로 몰려들자 방역지침을 어기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서대문역 인근 버스정류장에서는 5∼7명이 가까이 모여 마스크를 벗고 담배를 피웠고 삼삼오오 모여 음식물을 먹었다. 마스크를 내린 채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도 있었다.

경찰은 “국민들이 대규모 불법집회로 인한 감염을 걱정하고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며 수차례 해산 명령을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 4시 반 집회가 끝난 뒤에도 20∼30명이 도로 위에서 서로 밀착한 채 단체사진을 찍기도 했다. 구속 수감된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은 ‘옥중 서신’을 통해 “오늘의 이 감동을 함께할 수 없어 너무나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민노총은 이날 서울 등 전국 14개 시도에서 총파업 집회를 열고 5인 미만 사업장 차별 철폐, 비정규직 철폐, 돌봄·의료·교육·주택·교통 공공성 쟁취 등을 요구했다.

○ 학교 급식, 돌봄교실 일부 중단
고용노동부는 이날 민노총 총파업에 참여한 인원이 전국적으로 4만∼5만 명 정도라고 추산했다. 이 가운데 학교급식, 돌봄 종사자 약 2만 명이 총파업에 동참하면서 일선 학교에서는 급식 차질이 빚어지는 등 혼란이 있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전국 교육공무직 총 16만8597명 중 2만5201명이 파업에 나섰다. 전체 인원의 14.9% 수준이다. 이에 따라 급식 대신 빵, 음료, 도시락 등 대체급식을 시행하거나 단축 수업을 실시한 학교는 전체 1만2403개교 중 2899개교에 그쳤다. 돌봄교실은 1만2402실 중 1696실이 파업으로 운영을 중단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회장 김모 씨(44)는 “19일에야 조리사들이 파업에 참가한다고 공지가 돼 학부모들이 혼란스러워했다”며 “노동자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권리도 중요한데 배려가 아쉽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단체와 대학생 단체는 민노총을 규탄하는 풍자 현판식을 여는 등 불만을 드러냈다. 이종민 자영업연대 대표는 “민노총이 불법 점거한 도로 위에는 우리 사장님들의 가게가 있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자영업자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민노총 집행부를 감염병예방법 등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민노총은 이날 총파업을 시작으로 올 하반기 대정부 강경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달 말에는 민노총 화물연대, 다음 달에는 의료연대와 철도노조 등의 파업이 예고되어 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이채완 인턴기자 연세대 정치외교 4학년
송진호 인턴기자 중앙대 응용통계학과 4학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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