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공포에 ‘집콕 고립’… 감기기운에도 ‘너는 확진자’ 환청

송혜미 기자 , 김소영 기자 , 김성규 기자 입력 2021-02-22 03:00수정 2021-02-2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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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우울]<上>남의 일 아닌 ‘코로나 우울’

남 일 아닌 ‘코로나 우울’… 1년간 심리상담 136만건
‘여행 가이드.’ 8년간 정성훈(가명·62) 씨의 명함에 적힌 직업이다. 생계 수단이지만 매일 새로운 사람과 만나면서 의욕과 활기를 얻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지금 그에겐 활력이나 희망이 남아 있지 않다. 국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적으로 유행하면서 지난해 3월 정 씨는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그날 잠자리에서 정 씨는 밤새 천장을 바라보며 ‘이런 밤이 길게 가진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1년이 되도록 정 씨는 복직은커녕 다른 일도 구하지 못했다. 김밥 한 줄로 해결하던 세 끼를 두 끼로 줄였다. 그는 “뭘 하고 싶어도 사회가 나를 받아주지 않는구나, 난 쓸모가 없구나 하는 생각만 든다”고 토로했다.

2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이달 18일까지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에서 이뤄진 심리상담은 136만1403건. 지난해 정부에 등록된 자살 고위험군도 1만9471명으로 2019년보다 13.4% 늘었다. 전년도 증가율의 5배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2년 차인 올해 사회 곳곳에서 ‘코로나 우울(코로나 블루)’ 피해가 커질 것으로 본다. 정부가 제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종식 후에도 후유증이 남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코로나 공포에 ‘집콕 고립’… 감기기운에도 ‘너는 확진자’ 환청
세종에 사는 주부 이은혜(가명·36)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유행이 진행된 1월 한 달 동안 현관문 밖으로 딱 두 번 나갔다. 두 번 모두 쓰레기를 모으고 모으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얼른 내다버리고 온 것이다.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두려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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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자신의 두 아이가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생인 첫째는 점심 급식을 못 먹게 하고 하교시킨다. 둘째는 지난해부터 단 하루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그는 “바이러스 덩어리인 바깥세상이 나를 향해 발톱을 치켜세우고 있는 느낌”이라며 “주말부부인 남편이 집에 올 때조차 바이러스를 묻혀 오는 건 아닌지 경계심이 든다”고 했다. 이 씨는 코로나19 상황이 끝나도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던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 우리 이웃 덮친 ‘코로나 우울’

1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에도 상처를 남겼다. 장기 실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들만 ‘코로나 우울(코로나 블루)’을 겪는 건 아니다. 감염에 대한 불안,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이들을 향한 분노, 비대면 사회에 대한 부적응….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도 이런 부정적 감정이 일상처럼 녹아 있다.

때로 코로나 우울은 공황장애 증상으로까지 이어진다. 박소은(가명·31) 씨는 지난해 감기 기운을 느끼자마자 갑자기 ‘누군가가 심장을 움켜잡는 듯한 느낌에 숨을 쉴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박 씨가 두려웠던 건 코로나19 감염 자체보다 주변의 시선이었다.

“평소 아파트 커뮤니티에 자주 접속하는데 지역 확진자 동선이나 ‘우리 단지에 마스크 안 쓴 사람이 돌아다닌다’는 비난이 자주 올라오더라고요. 몸살 걸린 나를 욕하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어요.”

마음의 병이 몸의 증상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프리랜서 캐스팅 매니저로 일해 온 김정석(가명·40) 씨는 지난해 12월 느닷없이 ‘마취 없이 발목을 절단하는 고통’을 느꼈다. 그는 “병원에 가니 급성 통풍발작이라 했다”며 “코로나19로 일감이 끊겨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탓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발달기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코로나 우울에 더 취약하다. 지난해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정서행동특성검사를 실시했는데 ‘관심군’으로 분류된 1학년 비율이 16.7%로 전년도(5.0%)의 3배 수준이었다. 이 중 절반은 당장 상담이 필요한 ‘우선관리군’이었다. 이 학교 상담교사는 “초등학생은 학교생활과 친구관계에서 얻는 즐거움이 중요한데 등교 중지로 충족이 안 되다 보니 우울해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대전에 사는 고교생 최아름(가명·17) 양도 코로나19 이후 불안장애가 심해졌다. 지난해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했다는 생각에 초조했다. 최 양은 “등교하는 날이면 누구도 말을 걸어주지 않는 교실이 견디기 힘들어 화장실에 종일 앉아 있었다”고 전했다. 민간 의료봉사단체 열린의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청소년 대상 온라인 심리상담창구 ‘상다미쌤’에 접수된 상담신청은 2019년(3500건)의 2배가 넘는 7800건이다. 열린의사회 관계자는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다 보니 가족과의 갈등이나 폭력에 노출되는 청소년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 ‘비대면’에 취약할수록 더 큰 고립감

코로나19 2년 차가 되면서 많은 사람이 새로운 일상에 적응한 듯 보인다. 하지만 많은 이웃, 특히 취약계층에게는 여전히 높은 벽이다.

엘리베이터 버튼마다 코로나19 방지 항균 필름이 붙은 이후 돌연 점자로 된 층수조차 누를 수 없게 된 시각장애인이 대표적이다. 한승진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팀장은 “하루아침에 내가 사회와 소통하던 문자가 사라진 셈”이라며 “이는 단순히 불편한 차원을 넘어 시각장애인의 자존감과 자립심을 깎아먹는 경험”이라고 지적했다.

생활 속 규칙이 무너지면 극도로 불안감을 느끼는 발달장애인들에게도 코로나19로 바뀐 일상은 큰 스트레스다. 발달장애인 최승현(가명·19) 씨는 바깥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주먹으로 벽을 치고 자해를 시도하는 폭력적 행동이 심해졌다. 최 씨의 어머니는 “아이도 아이지만 나도 돌봄에 지쳐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아들이 나가고 싶다고 난동 부리는 소리에 이웃 민원도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온라인 미팅 등 비대면 소통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노인들의 고독감도 문제다. 지난해 남편과 사별한 후 충남에서 혼자 사는 이인자 씨(82)는 코로나19로 마을회관과 복지관이 문을 닫으면서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 그는 “복지관 가서 공부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게 유일한 낙이었는데 지금은 벗도 없고 적적하기만 할 뿐”이라며 “사람이 그리워 집 앞 정자나무를 왔다 갔다 한다”고 전했다.

어른의 도움 없이 줌 수업 등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기 힘든 초등학교 저학년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수도권의 한 초등교사는 “조손가정 아이들은 디지털 기기 접근성이 낮아지다 보니 학교생활 적응도 어렵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때도 사회적 후유증이 몇 년간 지속됐는데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라며 “코로나19 역시 바이러스가 사라지더라도 2, 3년은 국민들의 심리적·정서적 후유증 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극단선택 고위험군’ 급증… 등록인원 작년 2만명 육박
‘코로나 우울(코로나 블루)’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분노(레드)와 절망(블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개인의 문제를 넘어 다양한 피해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 우울을 가벼운 질병으로 봐선 안 되는 이유다.

2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 고위험군 등록관리 인원은 전년보다 13.4% 늘어난 1만9471명으로 2만 명에 육박했다. 전년도 증가율이 2.8%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증가폭이 심각한 수준이다. 인원수나 증가율 모두 전례 없는 규모다.

박지연(가명·32) 씨도 지난해 정부가 관리하는 자살 고위험군에 포함된 사람 중 한 명이다. 박 씨는 그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실직한 뒤 ‘물에 빠진 솜처럼 하루 종일 늘어져 지냈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로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는 사이 몸무게는 8kg씩 늘었다가 빠지기도 했다.

“어느 날 변기를 붙잡고 토하고 있는데 자신이 소, 돼지만도 못하다고 느껴졌어요. 힘을 내서 일을 구해야 하는데 몸만 아프니 살아 숨쉬는 게 낭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코로나 우울로 건강마저 잃은 박 씨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여러 은행을 돌았다. 그렇게 간신히 700만 원가량을 대출받았다. 이는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다행히 박 씨는 취업 상담을 위해 찾은 고용센터에서 심리안정 지원 프로그램을 소개받아 참여했다. 덕분에 극심한 우울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하지만 박 씨처럼 정부기관의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하면 결국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실이 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응급실을 찾은 사람은 2만2565명이다. 전문가들은 기존에 정신건강 문제가 있던 사람일수록 코로나 우울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고 진단한다. 세계보건기구(WHO) 미주본부인 범미보건기구(PAHO) 카리사 에티엔 사무국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정신보건 위기는 모든 나라에서 ‘초대형 악재’가 됐다”며 “정신건강을 돌보는 것이 코로나19 대응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에 대한 현실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우울, 불안 탓에 더욱 절망하는 분들의 마음의 문제도 잘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혜미 1am@donga.com·김소영·김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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