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잠 자던 간이침대, 마지막 메모…故 윤한덕 센터장 유품 첫 공개[박성민의 더블케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일 15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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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의대 박물관에 보관 중인 윤한덕 센터장의 유품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남대 의대 박물관에 보관 중인 윤한덕 센터장의 유품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원(轉院) 조정 방안→사례조사위원회’ ‘NEMC(중앙응급의료센터)→조직의 한계’ ‘감염위원회’.

2019년 2월 4일 설 연휴에 병원을 지키다가 과로로 숨진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당시 51세)이 사무실 화이트보드에 남긴 메모의 일부다. 여러 회의 내용이 뒤섞이고 일부는 지워져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윤 센터장의 고민은 하나로 모아졌다. 응급의료 체계를 개선해 피할 수 있는 죽음, 억울한 죽음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 기록은 광주 전남대 의대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집무실에 있던 유품 20여 점을 윤 센터장의 친구인 전남대 의대 응급의학과 허탁 교수(58)가 가져왔다. 지난해 1주기에 맞춰 추모 행사를 열고 유품도 전시할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됐다. 윤 센터장 추모실무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유품을 본보에 처음 공개했다.

집무실 화이트보드에는 윤한덕 센터장과 동료들의 회의 내용이 담겨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집무실 화이트보드에는 윤한덕 센터장과 동료들의 회의 내용이 담겨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 메르스 겪으며 감염병 위기 대책 마련도
사례조사위원회는 응급환자 이송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당시 외상센터 부실 논란으로 윤 센터장은 휴가도 취소한 채 대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윤순영 전 중앙응급의료센터 재난응급의료상황실장은 “응급실 이송 전 환자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부터 전원과 협진 활성화까지 사례조사를 통해 개선책을 찾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윤 센터장은 감염병이 확산됐을 때 응급의료 체계를 보호하는 방법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때 국립중앙의료원 메르스대책반장을 맡아 이틀 만에 음압병상을 만들기도 했다. 메르스 전부터 구상했던 음압구급차도 현실화시켰다.

붉은 매직으로 쓴 ‘감염위원회’는 그때부터 이어진 고민의 흔적이다. 응급실에 음압 격리실을 만들고 병상 사이 간격을 넓혀 이를 응급의료기관 평가에 반영한 것도 윤 센터장이었다. 장한석 서울응급의료지원센터 선임연구원은 “당시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응급실 환자를 통해 감염병 감시 체계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동료들은 윤 센터장의 빈자리를 더욱 크게 느낀다. 의료기관 이용 제약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는 이른바 ‘초과 사망’ 때문이다. 코로나19 의료 공백으로 병원을 전전하다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숨진 대구의 18세 고등학생 사례가 대표적이다. 허탁 교수는 “한덕이가 있었다면 비(非)코로나 응급환자의 이송 체계, 지정병원 운영을 더 적극적으로 논의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 조직의 한계…세 번의 사직서
윤 센터장은 숨지기 전까지 센터의 조직개편 방안을 고민했다. 한정된 인력과 예산은 늘 그와 동료들의 발목을 잡았다. 화이트보드에서 강조한 ‘조직의 한계’라는 단어엔 윤 센터장의 깊은 고민과 좌절이 담겼다. 지난해 출간된 평전 ‘의사 윤한덕’에 따르면 윤 센터장은 국립중앙의료원에 근무하는 17년 동안 공식적으로 3번 사의를 표했다. 마지막이 순직 넉 달 전인 2018년 8월이었다.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동료 인터뷰, e메일, 메모 등을 모아 지난해 발간된 평전. 김연욱 마이스터연구소장 제공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동료 인터뷰, e메일, 메모 등을 모아 지난해 발간된 평전. 김연욱 마이스터연구소장 제공

좌절도 많았지만 응급의료 체계 개선을 위해서라면 과감한 혁신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3년 실시간으로 응급환자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개발에 착수했지만 저항이 컸다. 일선 병원에서 환자 정보를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등 가욋일이 늘어난다는 불만이었다. 해마다 응급의료기관 평가 기준을 강화하는 것도 병원에선 큰 부담이었다. 모교인 전남대병원에서도 평가 결과를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얘기를 들은 윤 센터장의 대답을 허탁 교수는 이렇게 기억했다.

“평가를 받는 병원이 수백 곳인데, 모교라는 이유로 더 배려를 해준다면 평가의 신뢰가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전 모교가 다른 병원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모범이 됐으면 좋겠어요.”

순직 당시 공개된 윤한덕 센터장의 집무실.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순직 당시 공개된 윤한덕 센터장의 집무실.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 부인이 덧댄 간이침대
유품엔 윤 센터장의 고된 하루가 담겨 있었다. 집에도 가지 않고 쪽잠을 자던 간이침대는 윤 센터장을 기억하는 상징이 됐다. 딱딱한 마사지 침대에 윤 센터장의 부인이 라텍스를 덧대 만든 것이다.

윤 센터장의 온기가 마지막으로 남은 낡은 의자도 보관돼 있다. 그는 오후 7시에 집무실에 돌아와 새벽까지 밀린 서류 작업을 하거나 책을 봤다고 한다. 평전에서 공개된 그의 산업재해 사실조회서에 따르면 순직 전 석 달 동안 일주일 평균 122시간을 근무했다. 6.5일 근무, 0.5일 휴무가 그의 일상이었다.

윤한덕 센터장이 위기대응 훈련 때 입고 나갔던 조끼(왼쪽)와 취미 생활로 즐겼던 모형비행기와 부품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윤한덕 센터장이 위기대응 훈련 때 입고 나갔던 조끼(왼쪽)와 취미 생활로 즐겼던 모형비행기와 부품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닥터헬기 도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윤 센터장의 유일한 취미는 모형비행기 조립이었다. 그마저도 2012년 센터장 부임 후에는 즐길 시간이 부족했다고 한다. 유품엔 동력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분해한 낡은 휴대전화도 포함돼 있다. 공구함에는 모터, 기어, 케이블 등 부품 종류별로 라벨을 붙여 놨다.

사망 당시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책 3권도 유품으로 남았다. 2권은 평소 관심이 많던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책이다. 나머지 한 권은 그가 감수한 초등학생용 응급처치 교재다. 몇몇 페이지에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허탁 교수는 “워낙 꼼꼼한 성격이라 더 알기 쉽게 설명하거나 수정할 내용은 없는지 계속 살펴본 것 같다”고 말했다.

윤한덕 센터장의 전남대 의대 응급의학과 전공의 1기 동기인 허탁 교수가 유품을 소개하고 있다. 장례 기간 동료들이 남긴 메시지도 그대로 보관 중이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윤한덕 센터장의 전남대 의대 응급의학과 전공의 1기 동기인 허탁 교수가 유품을 소개하고 있다. 장례 기간 동료들이 남긴 메시지도 그대로 보관 중이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 “한 사람의 헌신과 희생으로 그쳐선 안 돼”
동료들은 평생을 응급의료에 바친 윤 센터장의 헌신이 잠깐의 관심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윤 전 실장은 “코로나19 영향도 있지만 응급의료 체계 개편 논의에 큰 진전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장 선임연구원은 “중앙응급의료센터는 보이지 않는 죽음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는 조직”이라며 “코로나 사태로 공공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처럼 누군가는 응급의료 시스템의 발전을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남대 의대 동창회는 공공의료 발전에 기여한 이에게 수여하는 ‘윤한덕상’ 첫 수상자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을 선정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1000만 원이 지급된다.

광주=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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