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전 겨우 건진 세간 또 진흙 속에…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철원=김태성 기자 , 춘천=박종민 기자 입력 2020-08-07 03:00수정 2020-08-07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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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개펄처럼 변한 철원 4개 마을
한탄천 범람 대피했다 돌아오니 집안이고 농작물이고 흙투성이
“기초연금으로 겨우 사는데…” 어르신들 복구 엄두 못내고 눈시울
지뢰 유입 가능성에 탐지 작업
강원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에서 6일 오전 한 할머니가 물에 젖은 가재도구를 정리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생창리를 포함한 철원의 4개 마을은 지난달 31일부터 이어진 집중호우로 5일 한탄천이 범람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철원=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4년 전에 물난리 겪고 겨우 다시 일으켜 세운 살림살이인데….”

안영순 씨(72·여)는 6일 오후 강원 철원군 갈말읍 동막리에 있는 집 앞에 멍하니 서서 말을 잇지 못했다. 폭우를 피해 대피소로 피신했다가 마을에 물이 빠지자마자 집으로 돌아온 안 씨는 쑥대밭이 된 눈앞의 풍경에 말을 잃었다. 집 안 가구는 방 안쪽까지 파고든 흙에 범벅이 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마당에는 장독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안 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사흘 전 잠긴 집 복구해 놨더니 또…”

강원 지역에 내린 폭우로 5일 오후 한탄천이 범람하며 침수됐던 철원군의 4개 마을에는 6일 오전 물이 빠지긴 했지만 수마(水魔)가 할퀴고 간 흔적이 역력했다. 진흙으로 뒤덮여 버린 마을은 거대한 개펄을 방불케 했다. 도로 곳곳이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졌다. 무너진 비닐하우스 내부에는 묘목판이 완전히 뒤엉켜 어떤 작물을 키우던 곳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옥수수와 벼는 허리가 꺾인 채 논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인근 대피소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주민들은 막막함을 토로했다. 팔을 걷어붙이고 복구 작업에 나섰지만 비가 계속 내려 속도가 붙지 않았다. 마당마다 물에 젖은 살림살이들과 쓰레기들이 수북이 쌓였다. 혼자 사는 고령의 주민들은 치울 엄두도 못 낸 채 마당에 주저앉아 한숨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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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전에도 폭우로 마을 일부가 물에 잠겼던 김화읍 생창리 주민들은 또다시 펼쳐진 처참한 광경에 체념한 듯 보였다. 주민 유순덕 씨(77·여)는 사흘 전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 물에 젖은 물건들을 겨우 말려 놓았는데 다시 침수되면서 겨울에 보일러를 때려고 사 뒀던 나무와 마당에 뒀던 전동휠체어가 물에 젖어 못쓰게 됐다. 유 씨는 “한 달에 20만 원 나오는 기초연금이 유일한 수입인데 자식들에게 무한정 기댈 수도 없어 생계가 막막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 이학규 씨(81)는 “집으로 가는 길이 완전히 진흙탕이 돼 가 보지도 못하고 있다. 사흘 전에 잠겼던 물이 좀 빠지나 했는데 또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철원군과 인근 군부대에서는 굴착기와 산악용 소방차 등까지 동원해 복구 작업에 나섰다. 불어난 물에 지뢰가 휩쓸려 내려왔을 가능성이 있어 지뢰 탐지 작업도 병행했다. 하지만 오전 내내 비가 계속돼 좀처럼 작업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철원군 관계자는 “수십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복구 작업을 돕고 있지만 인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비교적 피해를 덜 입은 주민들은 피해가 심한 이웃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갈말읍 동막리 주민 안승준 씨(74)는 침수된 자신의 토마토 밭을 뒤로하고 혼자 사는 고령의 이웃집을 찾아 집안 정리를 도왔다. 안 씨는 “밭은 나중이고 사람이 먼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비교적 젊은 40, 50대들이 홀로 사는 노인의 집 정리를 돕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 파주에선 장독과 벽돌이 물에 둥둥 떠다녀

5일 오후부터 내린 폭우로 마을 일부가 침수된 경기 파주시 파평면도 주민 20여 명이 긴급 대피하는 등 아수라장이었다. 5일 오후 6시부터 6일 오전 7시 사이에 평균 100mm의 비가 내린 파주시 파평면 율곡1리는 저지대인 마을 한가운데가 완전히 물에 잠겨 있었다. 마을 입구도 허벅지까지 물이 차올랐다. 물 위로는 장독과 나무판자가 둥둥 떠다녔고, 빈 버스 운전석에도 물이 넘실댔다.

파주시는 5일 임진강 비룡대교 수위가 상승하자 오후 3시경 이 마을 저지대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덕분에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밤사이 내린 비로 일부 농경지가 고스란히 물에 잠겼다. 집에 남은 물건을 챙기기 위해 마을에 있었던 김현수 씨(47)는 “혹시 물이 더 높이 들이찰까 봐 걱정돼 한숨도 못 잤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물이 빠지기만을 기다렸다. 호수로 변한 논밭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 주민은 “벼는 이삭이 막 생길 시기고, 고추는 이제 막 빨개져서 딸 때가 됐는데…”라며 한숨을 쉬었다. 파주시 관계자는 “마을에 찬 물이 빠지는 대로 복구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원=김태성 kts5710@donga.com / 춘천=박종민 기자
#강원도#철원#폭우#한탄천 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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