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주년…근로자 70% “현장 변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5일 19시 25분


코멘트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A 씨는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수화기 너머 쏟아지던 사장의 폭언이 생생하게 떠올라서다. 지난해 8월 퇴근 후 어린 자녀를 돌보고 있던 A 씨는 사장의 전화를 받았다. 사장은 “업무 매뉴얼을 작성해 인터넷에 올리라고 했는데 왜 안하고 갔느냐”며 12분 간 차마 입에 담지 못한 욕을 퍼부었다. A 씨는 그런 지시를 받은 기억이 없었지만 ‘갑 중의 갑’인 사장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다음날 조용히 사직서를 냈을 뿐이다.

직장에서의 괴롭힘을 금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16일로 시행 1주년을 맞았지만 현장에서는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개정안은 직장에서 우월적 지위나 관계를 이용해, 업무상 용인 범위를 넘어서서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했다. 10인 이상 사업장은 직장 괴롭힘 예방과 징계 등의 내용을 취업규칙에 담도록 의무화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직장 내 ‘갑질’ 문화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고용노동부의 의뢰를 받아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가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1.8%가 직장 내 괴롭힘 문화에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8.4%는 오히려 괴롭힘이 늘었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줄었다는 응답은 19.8%에 불과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증가한 이유(복수 응답)에 대해선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문화’라는 응답이 53.6%로 가장 많았고 ‘신고 체계나 징계 규정 미비’라는 응답이 51.2%로 뒤를 이었다.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등의 절차를 운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절반(53.5%)만 ‘그렇다’고 답했다.

이처럼 법 개정 취지가 무색해진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은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피해자나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에만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괴롭힘에 대한 제재는 사업장의 자율적인 규율에 맡긴다. 법 시행부터 올 5월까지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진정 4066건 중 개선지도(692건), 검찰 송치(40건) 등 행정조치가 내려진 것은 18%에 불과하다.

권혁 부산대 로스쿨 교수는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 개념을 보다 구체화하고, 사전 예방을 위한 법정 의무교육을 도입해야 한다고”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또한 “괴롭힘 발생시에는 제재 부과, 노동위원회를 통한 구제 도입 등 다양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