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 숨기고 그림 판매는 사기” vs “유명작가도 조수 도움”

  • 뉴스1
  • 입력 2020년 5월 28일 16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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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대작’과 관련해 사기 혐의로 기소된 가수 조영남씨가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그림대작 사건 공개변론에 참석하기 위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2020.5.28/뉴스1 © News1
‘그림 대작’과 관련해 사기 혐의로 기소된 가수 조영남씨가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그림대작 사건 공개변론에 참석하기 위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2020.5.28/뉴스1 © News1
“구매자들이 조영남씨의 그림을 고액을 주고 구매한 이유는 유명연예인인 그가 직접 그렸으리라는 기대때문이다. 대작화가가 그림을 그린 사실을 숨긴채 다수의 그림을 판매한 것은 사기죄에 해당한다.”(검사)

“작품의 완성에 기여한다고 하더라도 기여행위에 창작성이 없으면 저작자가 될 수 없다. 송씨 등은 지시를 받아 작업했고 작품에 스스로의 개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영남씨는 작품의 단독 저작자이다.”(조영남 측 변호인)

가수 조영남씨가 대작(代作)인 사실을 알리지 않고 다른사람에게 그림을 판매한 것이 사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두고 대법원에서 공방이 벌어졌다.

대법원은 2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사기 혐의로 기소된 조씨의 상고심 사건을 놓고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조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화가 송모씨에게 1점당 10만원을 주고 기존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그려오게 하거나, 자신이 추상적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이를 송씨에게 그려오라고 해 약간 덧칠을 하고 자신의 서명을 넣은 뒤 그림을 판매해 1억8000여만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조씨의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부분의 작업을 다른 작가가 완성하고 마무리에만 일부 관여한 작품을 온전히 자신의 창작물로 볼 수 없으며 구매자들에게 창작표현 작업이 타인에 의해 이뤄진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2심은 1심의 판단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대작화가 송씨는 조씨 고유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보조일뿐이며 조씨가 직접 그렸는지 여부는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고지할 정도로 중요한 정보라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이날 변론에서는 미술작품 제작에 2명 이상의 사람이 관여한 경우 작품 구매자들에게 사전에 알려줘야 하는지, 미술계에서 제3자를 사용한 제작방식이 허용되는지, 조씨의 친작 여부가 구매자들의 작품 구매의 본질적인 동기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논의됐다.

검찰은 이날 “조씨가 아닌 대작화가가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반드시, 당연히 구매자에게 알려야 하는 정보”라며 “작품을 위해 조수를 고용할지, 대작화가에게 맡길지는 예술가 조영남 양심의 문제이지만, 대작화가에게 작품을 완성하게 하고 덧칠만해 직접 그린 것처럼 행사해 고액으로 판매한 것이 사기인지는 판단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조씨는 대작화가가 그린 사실을 숨긴채 다수의 피해자에게 그림을 판매했다. 이는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

이에 대해 조씨 측 변호인은 “화가 송씨 등은 증인신문에서 작업에 관해 구체적 지시를 받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고, 작품에 개성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며 “조씨는 컨셉을 구상하고 컨셉 실현방식을 정해 작업 지시를 하고 추가작업을 해 작품 완성 여부를 결정했다”며 작품이 조씨의 단독 저작물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어 “해외 유명 작가들도 조수들의 도움을 받지만 이는 작품가치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여전히 고가에 거래 중”이라며 “거래 관행상 구매자들은 작가가 조수의 도움을 받는지 묻지않고 갤러리와 작가도 고지하지 않는다. 작품 가치에 영향을 주지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엿다.

대법원은 이날 예술분야 전문가를 참고인으로 불러 의견을 들었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신제남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장은 “화가들이 조수를 사용한다는 관행은 없다. 오로지 혼자 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창작자의 의무이고 상식”이라며 “대형작품의 경우에는 조수를 쓸수는 있지만 이 경우 같은 공간에서 원작자의 감독과 지시하에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앤디 워홀 등 유명작가들은 수십, 수백명의 조수를 쓰지만 모두 공개한다. 그런데 가수가 본업인 사람이 대가인 것처럼 합리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표미선 표갤러리 대표는 “갤러리 작가들 중에도 조수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다. 조수를 쓰는 관행은 있다”며 “작품가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변론에 참석한 조영남씨는 최후변론에서 직접 써온 편지를 읽었다.

조씨는 “지난 5년간 소란을 일으켜 죄송하다”며 “남은 인생을 갈고 다듬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참된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살펴주시기를 우러러 청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부터 어르신들이 화투를 가지고 놀면 패가망신하다고 그랬는데, 제가 너무 오랫동안 화투를 가지고 놀았나봅니다”라면서 “부디 제 결백을 가려달라”고 덧붙였다.

변론을 마치고 법정밖으로 나온 조씨는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며 차를 타고 법원을 떠났다.

대법원은 이날 논의 내용을 토대로 조씨가 대작인 사실을 알리지 않고 다른사람에게 그림을 판매한 것이 사기에 해당하는지 최종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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