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임신중 업무로 인한 태아 건강손상은 산재” 첫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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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4월 29일 10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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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인 여성이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선천성 질병이 있는 아이를 낳았다면 산업재해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태아의 건강손상을 여성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최초의 판례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9일 변모씨 등 4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신청반려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제주의료원 소속 간호사 변씨 등 4명은 2009년에 임신해 2010년에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 아이들이 모두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기간 병원에서 근무하다 임신한 간호사 15명 가운데 6명만이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변씨 등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고, 다른 5명은 유산을 했다.

변씨 등은 알약을 삼키기 힘든 환자를 위해 약을 빻는 과정에서 산모·태아에 치명적인 유해약물에 노출됐다며 2012년 12월 근로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그러나 근로공단이 “업무상 재해란 근로자 본인의 부상과 질병, 장애 또는 사망 등만을 뜻한다”며 거부하자 2014년 2월 법원에 소송을 냈다.

재판과정에서는 여성근로자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이나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을 산재보호법상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이에 대한 하급심의 판결은 엇갈렸다.

1심은 “원칙적으로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로 태아에게는 독립적 인격이 없으므로 태아에게 미치는 어떤 영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 권리·의무는 모체에 귀속된다”면서 여성 근로자가 임신중 업무 때문에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있었다면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며 변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2심은 “산재보험 급여를 받으려면 업무상 사유로 다치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이 본인이어야 한다”며 “태아의 건강손상에서 비롯된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근로자 본인의 업무상 재해가 아니다”라면서 1심을 뒤집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 정도와 관계없이 산재보험법 제5조 제1호에서 정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산재보험제도와 요양급여제도의 취지, 성격 등을 종합하면 여성 근로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면서
“산재보험의 발전 과정, 민사상 불법행위책임 증명의 어려움, 사업주의 무자력(채무초과) 등을 고려하면 산재보험으로 해결하는 것이 근로자 및 사용주 모두에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성 근로자는 출산 이후에도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에 관해 요양급여를 수급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태아의 건강이 손상되는 업무상 재해가 발생했다면, 이후 출산으로 모체와 단일체를 이루던 태아가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이미 성립한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을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포섭할 수 없다고 본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한 사례로서, 태아의 건강손상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한 최초의 판례”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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