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딜러 없냐” 글 올리자 10분도 안돼 ‘비밀채팅방 주소’ 댓글 달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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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장터 된 다크웹]마약거래 온상 다크웹 접속해보니

“핼러윈 이벤트! 국산 ‘떨(대마의 은어)’ 최저가!”

핼러윈데이를 하루 앞둔 30일 국내 한 사이트에 올라온 대마 판매 글이다. 이 사이트엔 이와 유사한 마약 판매 글이 하루에 수십 건씩 올라왔다. 현행 마약류관리법에 따르면 의료용으로 따로 허가받지 않은 대마 등 마약류를 인터넷에서 사고팔면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이트에선 마약 관련 정보가 삭제되지도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쉴 새 없이 서버를 옮겨 다니며 접속자 정보를 암호화해 불법 정보를 삭제하기도, 이용자를 추적하기도 어려운 ‘다크웹’ 사이트이기 때문이다.

○ 배달앱처럼 ‘우수 마약상’엔 평판 후기도

본보 취재팀은 이날 다크웹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몰리는 대표적인 마약 사이트 3곳에 접속했다. 수사기관이 감시하기 어렵게 숫자와 문자를 무작위로 섞어서 만든 사이트 주소는 전부 ‘.com’이 아닌 ‘.onion’으로 끝났다. 다크웹의 정보가 양파(onion)처럼 겹겹이 암호화돼 있다는 의미이다. 주소를 입력하자 대마뿐 아니라 필로폰과 엑스터시 등 온갖 마약에 대한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H사이트와 M사이트는 마약 거래 정보를 공유하는 게시판에 ‘대마약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약 구매자는 ‘환우’로, 우수 판매자는 ‘메딕’(위생병)으로 지칭했다. 마치 환자가 약국에서 처방약을 정상적으로 사가는 것처럼 상황극을 벌이는 것이다. 판매자들은 구매자의 아이디와 함께 ‘처방 차트’라고 적은 글을 여러 건 게재해뒀다. ‘김○○(구매자의 아이디), 5월 13일 액상(대마) 6포드(카트리지) 구매!’ 등 누가 무슨 마약을 언제 얼마나 구매했는지 일일이 적어둔 일종의 거래 일지다.

다크웹 내 마약상이 거래 기록을 일일이 공개하는 이유는 ‘이만큼 많은 양의 마약을 수사기관에 들키지 않고 매매했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마약을 수령한 구매자는 해당 글에 “항상 거래할 때 잘 챙겨주시던 ×××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라며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여러 차례 마약을 주문해 검증된 구매자는 회원 등급이 올라가 다음 거래 때 할인을 받을 수도 있다. 마치 배달 애플리케이션의 별점과 후기처럼 마약 사이트에도 이미 자체적인 평판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는 뜻이다.

국내 마약상들의 자유게시판 격인 C사이트에서는 거래가 더 적나라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한 구매자가 “메스(필로폰)를 파는 딜러 없냐”는 글을 올리자 10분도 안 돼 다른 마약상이 자신의 비밀 채팅방 주소를 댓글로 달았다. “형편이 어려우면 가격을 50% 할인해주겠다”는 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해외 마약 사이트에선 “무료 샘플을 전 세계로 배송한다”며 새 고객을 유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탐지견 피하는 법” 등 단속 정보까지 공유

수사기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한 노하우도 공유되고 있었다. 주로 항공 수하물이나 국제우편으로 마약을 들여올 때 마약 탐지견을 피하는 방법 등이었다. “특정한 향이 나는 다른 짐과 섞어두면 된다”거나 “○○공항이 단속이 느슨하다”는 등 상세한 조언도 오고갔다. 마약을 직접 제조하거나 재배하는 방법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한 이용자가 “시골 읍내 약국 가서 특정 약만 구하면 필로폰 성분을 추출할 수 있다”는 글을 올리자 구체적인 방법을 묻는 댓글이 달렸다. 실제로 전남 함평군에서 축산농장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지난해 10월 조립식 창고에서 대마를 재배해 팔다가 적발돼 올 9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다크웹에서 이뤄지는 마약 거래를 추적하기 어려운 이유는 대금 송금과 배송이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사이트에서 거래 의사를 밝히면 암호화된 메신저로 옮겨 구체적인 가격을 흥정하고, 결제도 가상화폐로 한다. 대금이 입금되면 한적한 아파트의 가스계량기 등에 물건을 놓아두고 위치만 알려주는 일명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주고받는다. 2010년대 초 퀵서비스나 택배로 마약을 주고받던 마약상들이 줄줄이 검거되자 새로 생겨난 방식이다.

경찰청은 마약 거래 등 다크웹을 통해 벌어지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12월까지 ‘다크넷 불법정보 수집·추적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수천 개가 넘는 불법 사이트를 망라하는 ‘다크웹 지도’를 그리고 그 안에서 주고받는 범죄 관련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해 기록해두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도입돼도 다크웹 접속자의 인터넷주소(IP주소)를 곧바로 추적하는 건 어렵다. 다만 축적된 데이터를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등과 연동해 분석하면 마약상 등 범죄자를 특정할 만한 패턴을 추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아형 abro@donga.com·조건희 기자

#다크웹#마약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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