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이웃, 오래 가게… 형제대장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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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 류상준 씨, 왼쪽이 상남 씨.
오른쪽이 류상준 씨, 왼쪽이 상남 씨.
《자고 일어나면 변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라지만 우리 곁에는 오랜 시간 골목을 지키고 있는 노포(老鋪)들이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들을 ‘오래가게’라는 이름으로 기리고 있습니다. 어느새 떼지 못할 만큼 정이 들어버린 이웃을 소개합니다.》

땡! 땡! 망치 소리가 요란합니다. 대장장이가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연신 내려칩니다. 그라인더가 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대장간이라니…. 서울시내에, 아직도?” 혼잣말이 절로 나옵니다.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대장장이의 투박한 손에서 호미며 낫이며, 노루발 같은 공구들이 탄생합니다. 수십 번 담금질을 해야 칼 한 자루가 만들어지는 고단한 작업입니다.

그래도 노년의 대장장이는 맨손으로 쇠를 두드리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은평구 수색동의 형제대장간 류상준 씨(66)는 50년 넘게 불을 지피고 쇠를 두드려온 대장장이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있다는 말을 들었던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장간에서 일을 배웠습니다.등·하굣길 오가며 봤던 집 근처 모래내 대장간이 멋져 보였습니다.

“공부도 하기 싫고 해서 대장간 일을 배우겠다고 우겼지요. 아버지가 처음엔 반대하시다가 결국 허락했어요. ‘기술 있으면 밥은 굶지 않겠다’ 하시면서요.”

그렇게 배운 기술로 1976년 강동구 암사동에 첫 대장간을 냈습니다. 동생 상남 씨(63)가 합류한 것도 그 즈음입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꽤 ‘재미’를 봤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문을 닫고 잠시 쉬다가 1996년 지금 자리로 옮겼습니다. 어린 시절 일을 배웠던 자리 근처, 고향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동네 이름을 따 암사대장간이었던 가게 이름도 형제대장간으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기계화된 요즘도 대장간을 찾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상준 씨가 웃으며 장부 하나를 꺼내 보여줍니다. 전국 단골들의 주소가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어서 택배로 보내줘요. 같은 도구라도 공장에서 만든 것보다 손으로 만든 것이 더 섬세하고 품질이 좋다고 해요. 손님이 필요한 공구를 도안해서 가져오면 그대로 만들어주기도 하고요. 또 요즘은 주말 농장이 많아져서 그 수요도 생겼어요.”

대장장이 형제는 여전히 아침마다 불을 피우고 하루가 다 지나도록 쇠를 두드립니다. 동네에 울려 퍼지는 망치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서울 은평구 수색로 249. 수색역에서 걸어서 3분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형제대장간#오래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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