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 그늘… 노인 운전자 사고 갈수록 조마조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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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광진구의 한 장례식장에 차려진 이모 씨(30·여)의 빈소. 검은색 상복을 입은 이 씨의 어머니가 딸의 영정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이 씨의 두 살 터울 남동생은 입을 꾹 다문 채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일하던 이 씨는 12일 오후 6시 15분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퇴근하던 중이었다. 사고 차량 운전자는 96세의 남성이었다.

○ ‘고령 운전자’ 사고 해마다 증가

지난해 12월 부산에서는 70대 후반의 운전자가 후진 도중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햄버거 가게 유리문을 부수고 매장 내 카운터 앞까지 돌진하는 사고가 있었다. 앞서 작년 11월 경남 진주에서는 승용차 한 대가 병원 입구 유리문을 들이받고 안내 데스크 앞까지 돌진하는 사고가 났다. 운전자는 역시 70대였다. 이 사고가 나기 하루 전 경남 창원에서도 80대가 운전대를 잡은 승용차가 병원 현관 유리문을 들이받고 로비까지 진입하는 일이 있었다.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호텔 인근에서 조작 실수로 추정되는 급가속 후진으로 퇴근길을 걷던 30세 여성을 치여 숨지게 한 96세 유모 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의해 인근 건물 담벼락이 심하게 부서져있다. 이 사고로 숨진 이모 씨는 외국어고와 유명 사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회계와 재무 일을 하던 회사원으로 최근에는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회사에서 승진하는 등 성실한 모습을 보여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채널A 캡처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호텔 인근에서 조작 실수로 추정되는 급가속 후진으로 퇴근길을 걷던 30세 여성을 치여 숨지게 한 96세 유모 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의해 인근 건물 담벼락이 심하게 부서져있다. 이 사고로 숨진 이모 씨는 외국어고와 유명 사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회계와 재무 일을 하던 회사원으로 최근에는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회사에서 승진하는 등 성실한 모습을 보여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채널A 캡처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해마다 늘고 있다. 2014년 2만275건이던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가 지난해 2만7260건(1∼11월)까지 증가했다. 4년 새 35%가량 늘어난 수치다. 전체 교통사고에서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사고가 차지하는 비율도 2016년 두 자릿수(11%)로 올라선 뒤 2017년 12.3%를 기록했다.

13일 사망사고를 낸 SUV 운전자 유모 씨는 이날 오후 경기 성남의 집에서 사고 장소인 청담동의 한 호텔까지 직접 차를 몰았다. 이동 거리는 약 20km였다. 유 씨는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서려다가 담벼락을 한 차례 들이받고 이후 후진하면서 주차돼 있던 다른 차량과 이 씨를 차례로 치었다. 경찰에 따르면 유 씨는 이 씨를 친 뒤로도 곧바로 속도를 줄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유 씨가) 후진 기어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밟은 것으로 보인다”며 “운전자가 자신의 실수를 시인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유 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호텔 인근에서 급가속 후진으로 이모 씨(30·여)를 숨지게 한 유모 씨(96)의 차량이 인근 건물 담벼락에 박혀 있다. 이 씨의 가족과 친구들은 "다시는 이런 황당한 사고가 벌어져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채널A 캡처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호텔 인근에서 급가속 후진으로 이모 씨(30·여)를 숨지게 한 유모 씨(96)의 차량이 인근 건물 담벼락에 박혀 있다. 이 씨의 가족과 친구들은 "다시는 이런 황당한 사고가 벌어져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채널A 캡처

○ “고령 운전사 택시 타면 불안”

지난해 7월 기준으로 65세 이상 고령 택시 운전사는 모두 7만2800명. 이는 전체 택시 운전사의 27.1%에 해당하는 수다. 80세 이상이 770명이고, 그중 90세 이상의 택시 운전사가 237명이나 된다. 대기업 임원 노모 씨(59)는 “가끔 택시를 타면 운전 중에 졸거나 기기 조작을 헷갈려하는 고령의 운전사를 본 적이 있는데 불안해 중간에 내린 적도 있다”고 했다.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75세부터 고령 운전자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는데 2007년 8.2%였던 전체 사망사고 중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망사고 비율이 2017년엔 12.9%를 기록했다. 영국에서도 최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 필립 공(98)이 운전 중 맞은편 차량을 들이받아 2명을 다치게 하는 사고로 고령 운전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필립 공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운전면허를 반납하겠다”고 선언했다.

부산시와 서울 양천구 등이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고령자에게 교통비 등을 지원하는 제도로 고령 운전자 감소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은 예산 문제 등으로 아직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올 1월부터는 75세 이상 운전자에 대해 운전면허 적성검사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이고 교통안전 교육도 받도록 했다. 일본은 1998년부터 운전면허 반납 고령 운전자에게 교통비를 지원하거나 헬스장을 포함한 지역 시설 이용 할인권을 제공하는 등의 지원책을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서형석 skytree08@donga.com·이소연 기자
#고령화시대#노인 운전자#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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