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 보내드립니다

  • 뉴스1
  • 입력 2019년 2월 1일 10시 16분


코멘트

마지막 가시는 길 94개 만장 따라 시민행렬 이어져
“1000억 줘도 합의안해…日정부에 전하라” 생전육성

1일 오전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을 지나 옛 일본대사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2019.2.1/뉴스1 © News1
1일 오전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을 지나 옛 일본대사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2019.2.1/뉴스1 © News1

“배상금 1000억원을 줘도 합의 안 합니다. 하루 빨리 해결을 지으라고 일본 정부에 전하세요. 알겠습니까?”

스피커를 통해 퍼져 나온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격정 어린 육성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웠다. 김복동 할머니의 노제가 엄수된 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참석자들은 전쟁범죄 처벌과 평화를 소리 높여 외쳤던 고인의 삶을 기억하며 뜻을 이어 나갈 것을 다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 등은 이날 오전 6시44분쯤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김 할머니의 발인식을 마친 뒤, 김 할머니의 생전 거처였던 서울 마포구 정의기억연대 ‘평화의 우리집’을 거쳐 오전 7시55분쯤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나비평화기행 참가자들과 소녀상 지킴이 등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이날 9시쯤 서울광장을 출발한 참석자들은 광화문, 안국역을 지나 서울 종로구 구(舊) 일본대사관까지 ‘우리의 영웅 김복동’, ‘일본군 노예 책임자 처벌’,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등의 추모 문구가 적힌 만장 94개를 들고 행진하며 김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걸었다.

두 팔을 힘차게 벌리고 색색의 나비로 둘러싸여 환한 웃음을 짓는 김 할머니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영구차를 인도했다. 영정을 든 윤흥조 마리몬드 대표와 윤미향 대표를 비롯해, 빈소부터 할머니의 곁을 지켰던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활동가들은 노란 나비 장식을 든 채 마치 한 무리의 나비와 같은 모습으로 영구차 곁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영구차 뒤편에는 ‘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님 나비 되어 훨훨 날으소서’라는 플래카드가 뒤따랐다.

1일 오전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을 지나 옛 일본대사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2019.2.1/뉴스1 © News1
1일 오전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을 지나 옛 일본대사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2019.2.1/뉴스1 © News1

이날 노제에는 김복동 할머니와 투쟁의 길을 함께해 온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발걸음했다.

직장인 오민영씨(27·여)는 SNS를 통해 김복동 할머니의 노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광장에 찾아왔다. 오씨는 “직접 뵌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기사나 SNS를 통해 수요집회는 보고 있었다”며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도 보고 싶어서 참여하러 왔다”고 말했다.

인도에서 노제 행렬을 따르던 최인호씨(58·여)는 “예전 세월호 참사부터 이런 집회에 참여한 뒤로 이런 자리에 참가하고 있다”며 “저도 나이를 많이 먹었고 할머니께서 원하시는 바를 이뤄 드렸으면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했다.

전순란씨(69·여)는 노제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31일) 밤 지리산 자락에서 서울까지 찾아왔다. 전씨는 “일본 사람들 좀 보라고, 자기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으라고 왔다”며 “나는 시골에서 농사 짓는 아줌마지만 경종을 울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왔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전 10시30분쯤 운구차가 구 일본대사관에 도착하면 영결식이 엄수된다. 구 일본대사관 앞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가 27년째 열리는 곳이다. 생전 김 할머니는 수요집회에 늘 참석해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왔다.

김 할머니의 유해는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 후 천안 망향의동산에 안치된다.

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