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으로 부화한 식빵속 앵무새 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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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종 190차례 밀수 일당 적발
빵-통조림으로 위장해 숨구멍 뚫어… 공항 엑스레이 안걸리고 무사통과
1만원짜리 부화시켜 23만원에 팔아


‘앵무새 알을 밀수하는 법.’

A 씨가 경찰 앞에 앉더니 책상 위에 놓인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그는 희귀동물 밀수 조직에서 운반책으로 일하다 입건됐다. A 씨는 식빵과 통조림 깡통을 이용한 신종 밀수 방식을 그림까지 곁들여 생생히 설명했다. 다음은 A 씨가 경찰에 밝힌 밀수 방법이다.

우선 알을 솜으로 잘 싼다. 그러고 미리 구입한 비닐봉지에 든 식빵 사이마다 알을 넣는다. 이어 공기가 잘 통하도록 비닐봉지에 구멍을 숭숭 뚫는다. 통조림 깡통 밀수도 비슷하다. 깡통 안에 솜을 깔고 알을 놓는다. 그 위에 차례로 솜과 알을 층층이 쌓는다. 마찬가지로 구멍을 뚫는다.

초등학생의 유치한 장난 같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밀수 조직은 한 번에 앵무새 알 수백 개를 숨긴 식빵과 통조림이 담긴 가방을 들고 190여 차례나 공항으로 입국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2012년 2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앵무새의 알을 밀수해 시중에 불법으로 유통한 혐의로 밀수업자 전모 씨(42)를 구속하고 S 씨(44) 등 1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6일 밝혔다. 이들은 대만과 태국 등지에서 190여 회에 걸쳐 앵무새 알 약 4만 개(6억5008만 원어치)를 구입해 밀수입했다. 현지 공급책부터 판매처까지 희귀동물 밀수 경로 전체가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 관계자는 “밀수 방법이 생각보다 너무 단순해 놀랐다”며 “흉기 등 날카로운 물질은 X선 검사에서 잘 보이지만 알은 잘 보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당은 앵무새 알을 부화시킨 뒤 2, 3개월간 키워 파는 수법으로 10억2000만 원을 챙겼다. 개당 1만 원인 선코뉴어 앵무새 알과 80만 원인 아마존 앵무새 알을 부화시켜 각각 23만 원, 250만 원을 받았다. 이들은 범행을 감추기 위해 정상적인 경로로 들여온 어미새의 알인 것처럼 속이고 허위로 ‘국제적 멸종위기종 인공증식증명서’를 발급했다.

이처럼 희귀동물 수요가 늘면서 최근 불법 밀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김모 씨(39)는 희귀 원숭이 슬로로리스와 가비알 악어 등을 어른 양말 속에 넣고 발목 부분을 묶어 여행 가방에 넣어 왔다. 이번에 구속된 전 씨도 살아 있는 앵무새에게 수면유도제를 먹여 재우고 부리에 테이프를 붙여 밀수했다.

환경부는 생물다양성 보호를 위해 지난달 13일부터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밀수하거나 국내에서 불법으로 거래한 사실을 제보하면 1인당 연간 최대 1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신규진 기자

#앵무새 알#밀수#멸종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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