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훈상]‘서울시향 진실’ 정명훈 부인이 밝힐 차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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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상·사건팀
박훈상·사건팀
1년 3개월을 끌어온 이른바 ‘서울시향 사태’를 수사한 경찰이 3일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54·여)의 추문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발표함에 따라 박 전 대표는 일단 누명을 벗게 됐다. 반대로 박 전 대표의 막말, 성희롱 등으로 인권을 유린당했다며 ‘호소문’을 배포한 서울시향 직원 10명과 이에 적극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부인 구순열 씨(68)는 허위 사실을 퍼뜨린 피의자가 됐다.

경찰 발표 직후 구 씨 측은 경찰의 ‘짜맞추기 수사’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둘 중 하나는 추악한 거짓말쟁이가 되는 진실게임 형국이 됐으니 구 씨 등 피의자들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건 초기부터 현장에서 경찰 수사를 지켜본 기자는 짜맞추기 수사라는 구 씨 측의 비난에 불편한 감정을 숨길 수 없다.

경찰은 서울시향 직원들의 호소문에 맞서 박 전 대표가 제출한 진정서를 처음 접할 때만 해도 그의 주장을 허무맹랑한 변명으로 여겼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경찰은 호소문에 적시된 사례들을 하나하나 조사하면서 석연치 않은 점을 적잖게 발견했다. 주장이 일방적인 내용일 뿐 시기와 장소, 증거도 앞뒤가 맞지 않았고 심지어 직원들의 진술마저 엇갈렸다.

뭔가 수상하다는 경찰의 의심에 확신을 준 것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구 씨와 정 전 감독의 비서 백모 과장이 주고받은 600여 건의 문자메시지였다. 구 씨는 대리인을 통해 자신은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서울시향 직원들의 인권을 위해 조언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문자메시지 내용을 보면 ‘현대사회에선 다른 것보다 인권 이슈가 중요하다’, ‘내쫓는 이유는 인권문제로 포커스해야 한다’, ‘인권침해 이슈만 강조하라’는 등 구 씨의 주장과는 사뭇 다르다. 인권침해 피해자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내용은 없고 오로지 박 전 대표를 쫓아내야 한다는 의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경찰은 구 씨와 서울시향 직원 10명을 검찰에 넘기기로 했다. 검찰이 이들을 기소하면 서울시향 직원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구 씨는 피고인 신분이 된다. ‘인권 열사’라 할 만하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구 씨에게 네 차례나 출석을 요구했지만 그는 모두 불응했다. 구 씨는 미국 국적인 데다 현재 프랑스에 머물고 있어 강제 송환도 불가능했다. 구 씨가 진정 직원들의 인권을 옹호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하루빨리 자발적으로 귀국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혹시 비행기 값이 부족하다면 나라도 기꺼이 보탤 수 있다. 누군가의 인권이 바로 세워질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아깝지 않다.

박훈상·사건팀 tigermask@donga.com
#서울시향#정명훈#박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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