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합격자 발표때 수험번호·성명공개는 인권침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7일 16시 34분


'보험계리사 및 손해사정사 제1차 시험 합격자 공고.'

정모 씨(54)는 지난해 금융감독원 웹사이트 공지사항란에 올라온 이런 제목의 게시물을 클릭한 뒤 인상을 찌푸렸다. 첨부된 엑셀파일에는 합격자들의 응시번호와 성명이 공개돼 있었다. 정 씨는 2012년과 지난해 손해사정사 시험에 응시했지만 1차 시험부터 연이어 낙방했다. 이 때문에 웹사이트에 올라온 1,2차 시험 합격자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지인들은 정 씨가 손해사정사 시험을 준비해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낙방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 씨는 타인이 시험당락을 알 수 있도록 한 건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 거라는 생각에 지난해 5월 13일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금융감독원 측은 인권위 조사에서 "보험계리사와 손해사정사 시험은 응시자와 동명이인이 있을 수 있어 수험번호와 성명을 함께 공개한 것"이라며 "실제 불합격 여부는 본인 외에는 인식하기 어렵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합격자를 알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국가전문자격시험 중 금융위원회가 주관하는 공인회계사 시험도 올해 3월 합격자를 발표할 때 수험번호와 성명을 함께 공개했다. 하지만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검정시험의 경우 수험번호만 공개했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주관하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시험은 웹사이트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 합격 여부를 조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수험생과 가족 이외의 제3자는 확인이 어려운 셈이다.

인권위는 금융감독원의 합격자 명단 발표 방식은 인권침해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장에게 합격 여부가 본인 외에 제3자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보험계리사와 손해사정사 시험 합격자 명단의 공개 방식을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이샘물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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