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일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 거품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AI) 관련 투자는 여전히 뜨겁다. AI 모델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이를 운영할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 구축에는 막대한 자본이 소요된다. 빅테크들이 투자를 주도하는 듯 보이지만 사모펀드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존재가 블랙스톤이다. 블랙스톤은 2021년 데이터센터 기업 QTS를 100억 달러(약 14조5800억 원)에 인수한 데 이어 2024년 아시아 최대 데이터센터 운영사인 에어트렁크(AirTrunk)를 160억 달러에 매입했다. 이제 블랙스톤이 보유한 데이터센터 자산은 1000억 달러를 넘어 세계 최대 규모가 됐다.
블랙스톤은 스티븐 슈워츠먼(1947∼)과 피터 피터슨(1926∼2018)이 1985년 공동 설립했다. 2025년 말 기준 1조300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대체자산 운용사다. 대체자산이란 전통적 투자대상인 주식과 채권이 아니라 부동산, 원자재, 기업 자체, 인프라 등을 뜻한다. 현재 AI 인프라에 몰려드는 자본의 상당 부분이 대체자산펀드를 통해 움직이고 있다.
슈워츠먼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다. 열 살 때부터 시급 10센트를 받고 부모의 가게에서 일하고, 동생들과 잔디깎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직접 돈을 벌었다. 고교 시절에는 엘리트 육상선수로 활약했다. 매일 토할 만큼 혹독한 훈련을 견디며 철저하게 준비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정신을 길렀다. 또 학생회장으로서 유명 보컬그룹의 공연을 유치하고, 명문대 입학처장에게 직접 전화해 자신을 뽑아 달라고 설득하는 등 뛰어난 실행력을 보였다.
슈워츠먼은 1969년 예일대를 졸업한 뒤 투자은행 DLJ를 거쳐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를 마치고 리먼브러더스에 입사했다. 초대형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며 31세에 파트너가 될 만큼 빠르게 출세했다. 그러나 새 최고경영자(CEO)의 잘못된 판단으로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리먼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매각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뒤 회사를 떠났다. 1985년 리먼의 전 CEO였던 피터슨과 함께 블랙스톤을 설립했다.
슈워츠먼은 작은 사업이든, 큰 사업이든 들이는 노력은 비슷하다고 여겼다. M&A 자문으로 시작해 사모펀드로 진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첫 펀드 목표액을 피터슨이 제안한 현실적인 5000만 달러가 아닌 무모해 보이는 10억 달러로 설정했고, 결국 8억5000만 달러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 운도 따랐다. 1987년 10월 19일, ‘블랙 먼데이’로 주식시장 붕괴 직전 펀드 모집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확보한 현금으로 침체기의 자산을 싼값에 사들일 수 있었다. 이후 블랙스톤은 부동산, 헤지펀드, 기업대출로 영역을 넓혔다.
2007년 사모펀드 운용사로는 이례적으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이때 조달한 자금은 2008년 금융위기 때 기업대출과 부동산 투자에 동원됐다. 특히 폭락한 미국 주택을 대거 매입해 임대하는 사업은 블랙스톤의 중요한 수익원이 됐다. 그러나 높아진 주택 임대료는 서민의 주거 부담으로 돌아왔다. 1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형 기관투자가의 주택 매입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배경이다. 슈워츠먼의 금융은 성장의 연료이면서 동시에 서민 삶의 비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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