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일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195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인근 패서디나 거리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걷는 서른 살 남자가 있었다. 부인과 이혼하며 위자료로 재산의 반을 날리고, 백혈병으로 회복할 길 없는 어린 아들의 병원비로 재산의 나머지 반도 날렸다. 그는 한 칸짜리 방에 살며 낡은 고물차를 모는 빈털터리 신세였다. 훗날 워런 버핏과 함께 버크셔해서웨이를 키워낸 찰리 멍거의 젊은 날 모습이다.
멍거는 1924년 미 네브래스카 오마하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어린 버핏의 집과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이었다. 고등학생 때 버핏 할아버지의 식료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몇 년 뒤 버핏도 같은 곳에서 일했지만 멍거와 버핏은 각각 35세, 29세였던 1959년에야 만났다. 버핏의 투자조합에 돈을 맡겼던 고객이 버핏과 똑같은 사람을 만났다며 저녁 식사를 주선한 게 계기가 됐다. 첫 만남에서 둘은 즉시 상대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쉴 새 없이 떠들었으며, 평생의 파트너가 될 것을 직감했다.
영혼의 단짝이 된 멍거와 버핏은 수시로 전화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버핏은 본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의 가르침을 따라 한두 모금 빨 가치는 남았지만 미래가 불투명한 기업의 주식, 이른바 ‘담배꽁초 주식’에 투자하고 있었다. 멍거는 버핏에게 ‘훌륭한 기업을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것’의 중요성을 설득해 버크셔의 투자 철학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2년 시즈캔디 인수 과정에서 2500만 달러의 인수 금액이 비싸다고 망설이는 버핏을 설득한 것도 멍거였다. 이 인수는 버크셔의 가장 성공적인 투자 중 하나가 됐다.
멍거는 어려서부터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1941년 미시간대에 입학해 수학을 공부하다가 입대해 군의 명령으로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기상학을 공부했다. 전쟁 후 하버드대 법대에 입학해 1948년 우등으로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유명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으나 결혼 8년 만에 이혼하고, 맏아들을 백혈병으로 잃는 비극을 겪었다. 그는 굴하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시간제 임금을 받는 변호사 수입은 재혼으로 생긴 대가족을 부양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고객들이 자본을 굴려 큰돈을 버는 모습을 본 멍거는 경제적 독립을 원했다. 1961년 친구와 부동산 개발 사업을 시작해 몇 년 뒤 100만 달러가 넘는 큰돈을 벌었다. 1962년 투자조합인 ‘휠러, 멍거 앤드 컴퍼니’를 설립했는데, 1975년 문을 닫을 때까지 연평균 수익률이 19.8%에 이르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1978년 멍거는 공식적으로 버크셔에 합류해 버핏과 평생을 함께한 파트너가 됐다.
멍거는 문제를 풀 때 거꾸로 접근하는 ‘역발상(inversion)’을 추천한다. 행복해지려면 불행한 삶으로 이끄는 행동을 피하면 된다. 인생에서 확실한 불행을 안기는 것으로 질투와 자기연민이 있다. 성경 속 ‘7대 죄악’ 중 탐식은 먹는 즐거움이 있고, 나태는 쉬는 즐거움이 있지만, 질투는 오직 고통만 주는 유일한 죄악이다. 나보다 더 빨리 성공하는 사람이 항상 있기 마련임을 받아들이자. 한쪽 눈을 잃고 다른 눈도 잃을 상황에서 절망하는 대신 점자를 익혔던 멍거로부터 자기 연민을 버리고 꿋꿋이 나아가는 태도를 배울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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