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으로 ‘쌀깡’ 보육원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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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값에 되팔아 1억 빼돌리고 아이들에겐 몇년 묵은 쌀 먹여

“쌀이 저질이라 흰밥을 도저히 지을 수 없어 주로 볶음밥을 해줬어요.”

A 씨(31·여)가 2005년 7월부터 영양사로 일했던 서울 강남구 소재 보육원의 실태에 대해 경찰에 진술한 내용이다. 이 보육원은 매년 서울시로부터 국고보조금 6억∼10억 원을 받고 기업과 개인후원금도 1억여 원씩 받아왔지만 아이들 밥을 질 낮은 쌀로 지어 먹였다. 황모 원장(56·여)이 친척 황모 총무(61)와 짜고 쌀을 사야 할 국고보조금 일부를 몇 년 동안 빼돌려왔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황 원장과 황 총무를 횡령과 배임 혐의 등으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 보육원에는 매년 아이들의 주·부식비와 옷값 명목으로 생계보조금 3000만∼7000만 원이 나왔다. 황 원장 등은 2005년부터 생계보조금으로 서울 서초구 양재동 대형마트에서 쌀 20kg짜리 한 포대를 4만2000원에 산 뒤 도매상에게 3만 원에 되파는 수법으로 9년 동안 59차례에 걸쳐 1억3000만 원을 챙겼다. 보육 아동들에겐 질 낮은 쌀로 지은 밥이나 후원물품으로 들어온 라면 빵 등을 먹였다. 빼돌린 돈은 개인 생활비로 썼다.

경찰에 따르면 이 보육원은 대기업과 유명 인사에게 쌀을 후원받았는데 대부분 오래 묵어 품질이 떨어지는 쌀이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후원금 1억4000만 원과 더불어 쌀 164포가 들어왔고 2012년에도 후원금 8300만 원과 쌀 260포가 기증됐다.

보육원에 들어오는 국고보조금의 70∼80%는 황 원장을 포함한 직원 20여 명의 인건비로 쓰였다. 황 원장은 매달 350여만 원을 받으면서 판공비나 차량 주유비 등을 국고보조금으로 쓴 것으로 조사됐다. 2001년 보육원 운영을 그만둔 어머니를 직원으로 허위 등재해 건강보험료 1300여만 원을 국고보조금으로 냈고 2009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부모와 간병인을 보육원에 거주시키며 보조금 2800여만 원을 이들의 숙식비로 쓰기도 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보조금#보육원#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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