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에 2억 뜯은 보안요원… 그 뒤엔 홈플러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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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주부 이모 씨(35)는 대형마트에서 계산하지 않은 쥐포 한 봉지를 가방에 넣고 나오다 보안요원에게 적발됐다. 이 씨를 1시간 넘게 보안팀 사무실에 감금한 보안요원 2명은 “이전에 훔친 물건까지 말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고 가족에게 알리겠다. 전과가 생기고 구속될 수 있다”고 협박했다. 포인트카드를 통해 이 씨가 그때까지 약 300번 다녀간 사실을 알아낸 보안요원들은 1만 원짜리 쥐포를 훔친 대가로 300만 원을 요구했다. 약점을 잡힌 이 씨는 300배를 뜯길 수밖에 없었다.

영국계 글로벌 유통회사인 테스코가 100% 지분을 가진 홈플러스 서울 금천구 시흥점에서 일어난 일이다. 홈플러스의 이승한 회장(66)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협약인 ‘유엔글로벌콤팩트(UNGC)’의 한국협회장을 맡고 있다.

이런 사례는 홈플러스에서 한두 번 일어난 게 아니다. 2010년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수도권의 홈플러스 지점 10곳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린 130명이 보안요원에게 합의금 명목으로 2억여 원을 빼앗긴 것으로 15일 경찰 조사 결과 새롭게 드러났다. 전현직 지점장 13명과 본사 부장급 등 총 17명의 홈플러스 관계자가 경비요원들에게 합의나 훈방 등 경비업무를 벗어난 행위를 시킨 혐의(경비업법 위반)로 불구속 입건됐다. 보안요원 48명도 물건을 훔친 사람을 협박한 혐의(공동공갈)로 불구속 입건됐다.

9일 서울중앙지검이 홈플러스 보안요원과 짜고 고객에게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한 뒤 뒷돈을 챙긴 혐의로 인천 남동경찰서 소속 유모 경장(34)과 보안팀장 3명을 구속하면서 일단락될 줄 알았던 사건이 본사 직원 등 입건자만 73명으로 일파만파 커진 것이다.

▶본보 10일자 A12면… 3만원 쇠고기 훔친 60대女 협박, 800만원 뜯어낸 경찰-보안요원

보안요원들은 주로 20∼40대 여성을 상대로 물건 값의 최고 300배에 이르는 합의금을 요구했다. 피해를 본 130명 가운데 100만 원 이상을 합의금 명목으로 뜯긴 사람은 81명에 이른다. 이렇게 뜯어낸 합의금 총 2억 원 가운데 1억5000여만 원은 매장 내에서 파손되거나 사라진 물건에 대한 손실비용으로 처리됐다. 나머지 5000만 원은 보안요원들이 빼돌리거나 구속된 유모 경장에게 뒷돈을 챙겨주는 데 사용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최종혁 폭력계장은 “홈플러스는 보안업체 재계약 평가 기준을 만들어 100만 원 이상의 합의금을 받아내면 가산점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감점을 줬다”고 말했다. 보안업체의 실적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이 생필품을 훔치는 주부를 협박해 돈을 뜯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는 해명자료를 내고 “100만 원 이상의 합의금을 받으면 가점을 주는 평가기준이 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현장에서 적발된 품목에 한해서 정상적인 금액만 받도록 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입건된 보안요원들은 ‘이렇게 합의금을 받아내면 가점을 줘왔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따랐을 뿐’이라고 진술했다”며 “이들은 파손되거나 분실된 상품의 목록을 모르기 때문에 합의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홈플러스 지점 관계자와 상의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협박을 당한 피해자는 자신이 훔치거나 구매한 적이 없는 물건을 산 것처럼 영수증을 꾸미는 데 동의하고 추가로 돈을 건네준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올해 1월 A 씨는 고구마 계란 등 식품 11만4700원어치를 훔쳤다가 적발돼 합의금으로 100만 원을 요구받았다. 홈플러스 측은 훔친 물품의 금액을 뺀 나머지 88만5300원에 대해서는 크리스마스 포장지 21개 등 문구용품을 산 것처럼 허위 영수증을 작성한 뒤 물건은 주지 않고 돈만 받아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홈플러스 측은 전현직 지점장과 본사 부장 등이 입건된 데 대해 “경찰의 일방적 주장일 뿐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이번 사건은) 보안용역업체 팀장 및 경찰관 개인비리 사건”이라고 해명했다. 경찰은 다른 대형마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홈플러스#합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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