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만 무성 문을 닫은 강원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의 한 음식점 앞에 잡초가 무성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고성에서는 159개 음식점이 문을 닫는 등 최악의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하루 종일 1만5000원짜리 북어채 한 봉지 팔았어요.”
9일 오후 강원 고성군 현내면에서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 씨(54·여)는 “하루하루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2008년 7월 11일 관광객 박왕자 씨의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4년. 금강산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동해안 최북단 고성군의 지역경제는 최악이다. 예전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때 하루 100만 원어치 넘게 팔며 호황을 누리던 현내면의 음식점과 건어물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문을 연 업소들도 하루 손님 한 명 받기가 힘들어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 본격적인 피서철이 시작될 시기지만 해수욕장 주변을 제외하면 피서 특수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이 씨는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이 씨는 “4년이면 대학도 졸업하는데 이제 지긋지긋한 불경기도 졸업했으면 좋겠다”며 “북한이 우리 정부의 요구를 수용해 하루빨리 금강산 관광길이 다시 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내면에서 20년 넘게 건어물 가게를 운영 중인 박모 씨(71)는 “지금은 IMF 구제금융 때보다도 힘들다”며 “주변의 큰 가게들은 이미 다 경매에 넘어갔고 나도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 적자를 메우고 있는데 언제까지 버틸지 걱정스럽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또 “북한이 사과만 하면 될 텐데…”라며 북한에 대한 야속한 속내를 보였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인 2009년 5월 건어물가게를 연 박모 씨(53·여)도 상황이 심각했다. 박 씨는 금강산 관광이 금방 재개될 것으로 기대하고 가게를 인수해 운영에 들어갔지만 벌써 3년이 흘렀다. 금융기관 등에서 3000만 원을 빌렸지만 갚을 길이 막막하다. 박 씨는 “남들은 한때나마 제대로 장사해봤다지만 나는 개업하자마자 빚만 쌓이는 중이다”며 “가게가 팔리지도 않는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성군은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지역의 경제적 손실이 월평균 29억 원으로 지난달까지 1334억 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음식점 가운데 15%에 해당하는 159개 업소가 휴폐업했고 금강산 관광과 관련 업종에 종사하던 350여 명의 지역 주민이 일자리를 잃었다.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들이 외지로 떠나면서 2007년 40가구 93명이던 결손 가정은 올해 71가구 182명으로 크게 늘었다.
최근 들어 정치권 인사들이 나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촉구하는 등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한국 정부가 제시한 진상 규명, 재발 방지, 신변 안전 보장 등의 3대 과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어 주민들의 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달 13일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22일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고성군을 잇따라 방문했다. 이때 주민들은 특단의 대책 마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강력히 요청했다.
이영일 고성군번영회장은 “고성의 지역경제는 최악으로 특별재난구역에 준하는 지원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고성군 모든 주민이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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