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성매매 ‘도가니’서 벗어나게 해준 어느 검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2일 03시 00분


8월 말 광주지검 순천지청의 한 검사실. 이순이(가명·27·여) 씨가 안모 검사(40)에게 조사를 받다가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이 씨는 지난해 11월경 김모 씨(50·여)에게서 4200만 원을 빌린 뒤 갚지 않는다며 사기혐의로 고소당한 상태였다. 그는 돈을 빌릴 당시 광주의 한 사창가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었고 김 씨는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돈놀이를 하고 있었다. 사창가를 힘들게 벗어난 이 씨는 몇 달 뒤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합의를 위해 김 씨에게 500만 원을 건넨 뒤 ‘매달 100만 원씩 3000만 원을 갚겠다’는 내용의 차용증까지 써줬다. 그러나 합의를 해 고소가 취하돼도 처벌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 씨가 2008년 김 씨에게 선불금과 원룸 임차보증금으로 쓰려고 빌린 돈은 1800만 원이었다. 이 씨는 돈을 빌리면서 김 씨가 계주로 있는 계에 매달 200만 원씩 3000만 원을 붓기로 했고 실제 1100여만 원을 넣었다. 그는 김 씨가 빚이 4200만 원이라고 부풀려 허위 고소를 했지만 처벌받는 것이 두려워 가짜 차용증을 써주게 됐다며 검사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안 검사는 이 씨의 말을 듣고 종결하려던 사건을 다시 수사하기로 했지만 그의 주장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 안 검사는 과거 이 씨가 김 씨를 성매매 알선 혐의로 진정해 경찰 수사가 진행된 사실을 듣고 당시 수사기록을 검토하던 중 김 씨가 경찰 조사에서 “이 씨가 곗돈 2400만 원을 낼 의무가 있다”고 진술한 것을 찾아냈다. 안 검사는 진술서에 적힌 내용을 토대로 김 씨를 추궁했다. 김 씨는 답변을 하지 못했고 결국 빚 4200만 원이 부풀려진 금액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순천지청은 빚을 2000만 원 이상 부풀려 허위 고소한 김 씨를 무고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1일 밝혔다. 또 이 씨가 빌린 돈은 선불금 등으로 이미 갚은 것으로 보고 무혐의 처분했다. 다만 곗돈을 전부 납부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기소 유예했다. 곗돈 납부 의무는 민사소송으로 다툴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씨는 민사소송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됐다.

한때 사창가에서 일하던 여성이 법을 몰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허위 차용증을 써줘 다시 사창가 늪에 빠질 뻔했으나 검사의 작은 관심이 이를 막아준 사건이었다.

안 검사는 “성매매 업주나 사채업자들이 사기혐의로 성매매 여성을 고소하면 이들이 일단 처벌을 피하기 위해 가짜 차용증을 써줘 악순환이 생긴다”며 “이 씨의 주장을 입증해줄 내용이 진술서에 적혀 있어 다행히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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