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양승태 전 대법관(63)을 제15대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대법원장은 대법관 임명제청권, 헌법재판소 재판관 지명권 등을 지닌 사법행정의 최고책임자. 헌법은 대법원장의 막중한 임무를 고려해 탄핵을 받거나 금고 이상의 형을 받지 않는 한 6년 임기 동안 파면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도덕성 검증은 국무위원보다 더 엄격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이 되는 대법원장은 법원 판례의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도 맡는다. 동아일보는 양 후보자의 도덕성과 대법관 재직 시절 판결 성향을 분석해 인사검증 리포트를 만들었다. 》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가 살고 있는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동산마을 자택. 양 후보자가 1997년 이 땅을 살 때 실제 거래가격보다 낮게 계약서를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성남=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는 군법무관(대위)으로 병역을 마쳤다. 1989년 경기 안성시 일죽면 송천리 밭 982m²(약 297평)를 사들여 등기를 하면서 주소를 허위로 기재해 2005년 대법관 임명 때 논란이 일었던 것을 제외하면 위장전입도 하지 않았다. 당시 양 대법관은 외지인 취득이 금지된 이 땅의 취득과정에 대해 “나는 관여한 바 없고 사별한 아내가 한 일로 정정했다”고 해명했다.
양 후보자는 다른 고위직 후보자에 비하면 도덕성에서 흠결이 적은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시세보다 낮게 주택용지를 사들이거나 부인의 의료비 이중 공제 등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주택용지 시세보다 낮게 구입?
양 후보자의 1998년 재산공개목록에 따르면 그는 현재 살고 있는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동산마을 주택용지 499m²(약 151평)를 1997년 10월 4억500만 원(3.3m²당 약 270만 원)에 매입했다. 양 후보자는 1999년 12월 이 땅에 총면적 310m²(약 94평) 규모의 2층 주택을 짓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1997년 이 땅의 공시지가는 3억6427만 원(3.3m²당 약 240만 원). 주변 부동산중개소 등의 말을 종합하면 당시 이곳의 땅값은 3.3m²당 500만∼600만 원에서 형성됐다. 이 때문에 세금 회피 등을 위해 실제보다 낮게 계약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판교나 분당보다 서울과 가까운 동산마을은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이후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땅값이 뛰었다. 동산마을 인근 부동산중개소 사장 A 씨는 “당시 공시지가가 3억6427만 원이었다면 실제 가격은 5억∼6억 원은 됐을 것”이라며 “4억500만원이라면 정말 싸게 산 것”이라고 말했다. 또 1997년 당시 이 지역 인근에서 땅을 사 집을 지은 B 씨는 “당시는 거래가격을 낮춰 계약서를 쓰도록 알선하는 부동산중개소들이 인기를 얻을 정도로 실제보다 낮게 계약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말했다.
양 후보자 측은 “당시는 외환위기가 터져 부동산 값이 폭락할 때였다”며 “땅주인이 장기간 땅이 안 팔리자 싼값에 팔았다. 실제 거래보다 낮게 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은 결코 없다”고 밝혔다. 이듬해인 1998년 이 땅의 공시지가는 3.3m²당 250만 원으로 1997년보다 오히려 10만 원 올랐다. 동아일보는 이 땅을 양 후보자에게 판 사람을 수소문했으나 등기부등본에 기재되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
○ 부인 의료비 이중 공제
양 후보자가 지난해 연말정산 때 의료비를 이중으로 공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임명동의안에 따르면 양 후보자는 지난해 대법관으로 재직하며 소득 9400여만 원 가운데 32만여 원을 의료비로 공제받았다. 의료비는 한 해 총급여액의 3% 초과분부터 공제받을 수 있다. 지난해 양 후보자가 신고한 본인의 의료비는 156만여 원으로 총급여의 1.7%밖에 되지 않아 공제를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양 후보자는 부인 김모 씨(55)의 의료비 158만여 원을 합산해서 총 314만 원을 신고해 3%(282만여 원)를 넘겼고 초과 금액인 32만여 원을 공제받았다.
배우자의 의료비를 합산해 소득을 공제받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배우자를 위해 근로자 본인이 지출한 의료비는 배우자 소득 여부에 상관없이 공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인 김 씨도 자신의 의료비를 공제받았다는 점. 경원대 의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2월 말에 퇴직한 김 씨는 2010년 연말정산에서 158만여 원을 의료비로 신고하고 110만여 원을 공제받았다. 같은 의료비가 두 번 공제된 것. 이중 공제는 세금 탈루에 해당해 추징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부인이 공제받은 의료비를 남편이 이중으로 공제받을 수는 없다”며 “같은 의료비가 이중 공제됐다면 한쪽이 부당하게 공제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양 후보자 측 관계자는 “부인이 퇴직하면서 양 후보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인 것 같다”며 “국세청이 제공하는 자료를 그대로 출력해 연말정산을 했지만 확인을 거쳐 이중 공제에 해당하면 세금을 내겠다”고 말했다.
○ 부인 건물 임대소득세는 정상 납부
동아일보는 부인 김 씨가 1979년 부모에게서 상속받아 형제 3명과 공동 소유했던 서울 성동구 행당동 건물(288m²)의 임대소득세를 정상 납부했는지도 취재했다. 임명동의안에 포함된 김 씨의 납세증명서에는 임대소득 납세 여부가 없었기 때문. 양 후보자 측은 2006∼2009년 종합소득세 신고명세를 공개했고 김 씨는 69만∼124만 원의 임대소득을 신고한 뒤 정상적으로 세금을 납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는 2009년 10월 건물 소유지분을 올케 남모 씨(49)에게 증여하고 현재는 토지 지분만 소유하고 있다.
국회는 6, 7일 이틀간 양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개최하고 9일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 그동안 어떤 판결 내렸나 ▼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와 함께 일해 본 법조인들은 대부분 양 후보자에 대해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따뜻한 보수 성향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양 후보자는 올 2월까지 대법관으로 있으면서 대부분 다수 의견에 선 보수적 판결을 내려왔다. 하지만 여성 인권 문제나 소수자 보호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판결을 내렸다.
○ 집회 및 시위 질서에는 확고한 강골
2009년 12월 그는 집회 도중 경찰버스를 파손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상대로 국가가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집회 주최자의 책임 비율을 60%로 제한한 원심을 깨고 책임 제한을 부정했다. 그는 “질서유지의무를 제대로 다하지 않아 손해배상 의무가 있는 이상 과실은 인과관계가 있는 전부에 미친다”고 밝혔다. 시위도중 지나친 확성기 사용이 공무집행방해죄의 요건인 폭행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또 그는 지난해 3월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원의 증권선물거래소 로비 점거 농성 사건에서도 업무에 다소 지장을 주더라도 정당성의 한계를 벗어난 것은 아니라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했다. 그는 “정당행위라고 해서 주거 침입의 위법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용산 화재’ 사건 상고심 주심으로 그는 “진압 조치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해 현저하게 불합리하지 않는 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적법성을 인정했다.
○ 기업활동의 자유는 폭넓게 인정
2007년 11월 냉연강판 시장에 진입하려는 현대하이스코가 포스코에 열연코일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사건 선고에서 그는 “신규 사업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래 거절을 한 것이기는 하나 경쟁사업자 수를 줄이거나 사업능력을 축소시켜 경쟁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은 경우와 다르다”며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남용행위가 아니라고 봤다.
양 후보자는 2009년 5월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과 관련해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도 무죄 취지의 별개 의견을 냈다. 그는 “긴급한 자금 조달의 필요성이 없는 상태에서 전환사채를 저가 발행한 뒤 아들(이재용 현 삼성전자 사장) 등에게 전환사채를 배정한 이 사건에서 기존 주주가 불이익을 보는 것일 뿐이지 회사에 대한 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 법질서 중시
2008년 9월 근로복지공단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아 소송을 내 승소한 사람이 휴업 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를 판단한 데서도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그의 풍모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당시 모든 대법관이 신의성실의 원칙 등을 근거로 원고 손을 들어줬으나 그는 “실정법 개별 조항에 의해 명백히 인정되는 권리 의무의 내용을 신의성실원칙 등으로 인해 쉽게 변경하는 것은 심각한 법체계의 혼란을 초래한다”며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냈다.
2007년 3월 울산 북구청장이 전국공무원노조에 가입해서 파업을 한 공무원을 승진 임용하자 울산시장이 이를 취소한 것이 적법하다는 판결에서도 그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소속 정당 정책에 따라 시정을 펴는 것은 법률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허용돼야 한다”고 했다.
○ 보수적인 대북관
그는 지난해 7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판단하면서 “단체의 실제 활동이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위협할 실질적 해악을 가지고 있다면 이적단체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북한의 실체에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는 대법원 판례는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2008년 4월 양 후보자는 북한을 방문한 혐의로 기소된 재독(在獨) 교수 송두율 씨 사건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기 전에 4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한 부분에 대해 유죄라고 판결했다.
○ 양성평등 소수자 문제는 따뜻한 관용
양 후보자는 양성평등과 관련해서는 전향적이다. 그는 서울북부지방법원장 재직 시절인 2001년 호주제에 대해 “남녀의 성(性)에 따른 차별로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2005년 호주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05년에는 “종중 구성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로 한정한 종래의 관습법은 효력이 없다”며 여성에게도 종중 구성원 자격을 인정하기도 했다.
2006년 6월에는 “법 절차 미비를 이유로 성전환자임이 명백한 사람에 대해 호적 정정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며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을 인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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