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위치추적 집단소송 참가자들 사연 들어보니

  • 동아일보

“여친이 내 동선 꿰고 있어 싸웠다”
“AS 불친절… 오만한 애플에 경종”

“여자친구가 아이폰에 저장된 내 위치정보를 줄줄 꿰고 있더군요.”

애플이 아이폰으로 위치정보를 수집한 사안과 관련해 국내 한 변호사가 애플을 상대로 위자료 100만 원을 받아내면서 이 집단소송에 참여하는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다. 17일까지 소송에 참여한 이용자는 무려 2만1000여 명. 인터넷에는 10여 개의 관련 카페가 개설된 상태다. 소송 참여 이유도 실제 피해 사례부터 막연한 불안감, 서비스 불만, 한국인 고객을 무시하는 애플사에 대한 반감까지 다양했다.

○ “스토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요”


소송에 참여한 직장인 김모 씨(31)는 얼마 전 아이폰 때문에 생긴 곤혹스러운 경험담을 털어놨다. 김 씨는 “여자친구에게 부산으로 출장을 간다고 하고 몰래 고교 동창들과 동해로 야유회를 갔다 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여자친구가 내 동선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며 “알고 보니 여자친구가 내 아이폰에 저장된 위치정보를 확인하고 추궁을 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기술(IT)업에 종사하는 정모 씨(30)는 아이폰을 통해 수집된 위치정보가 상업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집단소송에 참여했다. 정 씨는 “애플이 고객 위치정보를 수집한 것은 이 자료를 통해 장사를 하려는 것”이라며 “요즘은 위치정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연계돼 특정 음식점 주변에만 가면 그 식당을 광고하는 스팸문자가 쏟아지는데 이런 행위를 막기 위해 참여했다”고 말했다.

인천에 사는 유모 씨(28·여·교사)는 애플이 수집한 위치정보가 무단 유출될 경우 스토킹의 악몽이 재연될까 걱정하고 있다. 그는 2년 전 정체불명의 50대 남성으로부터 석 달간 스토킹을 당했다. 이후 휴대전화번호를 바꾼 유 씨는 “몇 달 전 아이폰을 통해 위치추적이 된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잘못하면 내 동선이 그 남자에게 알려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애플이 어떤 식으로든 위치추적을 하지 못하도록 법적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소송에 참여하게 됐다” 말했다.

국내 소비자를 홀대하는 애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소송에 참여한 고객들도 있다.

은행원 이모 씨(28)는 아이폰을 생산하는 애플사의 불친절한 애프터서비스에 불쾌감을 견디다 못해 소송에 참여했다. 이 씨는 “아이폰에 고장이 잦아 대리점에 수차례 수리를 요구했지만 번번이 묵묵부답이어서 한국 소비자들을 우습게 본다는 인상을 받은뒤 애플에 경각심을 줘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 “승소보다 애플의 각성이 중요”

법무법인 ‘미래로’의 김형석 변호사(36)가 애플로부터 위자료 100만 원을 받아내기는 했지만 이 소송 참가자의 승소를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 김 변호사가 지급명령 신청을 통해 1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애플이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플이 향후 소송에 이의 제기를 한다면 법정에서 잘잘못을 따져야 하는데 애플이 대형 로펌을 끌어들일 경우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김 변호사는 “애플이 사용자 동의 없이 위치정보를 수집한 것 자체가 명백한 위법이어서 승소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상당수 소송 참가자는 승소 자체보다 재판을 통한 예방 효과에 더 기대를 걸고 있다. 대학생 박모 씨(26)는 “패소하더라도 애플이 위치정보 등 개인정보 관리에 좀 더 엄격해진다면 소송 참여비용인 1만6900원은 기꺼이 지불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애플코리아와 구글코리아가 국내 사용자의 스마트폰에서 위치정보를 불법 수집했다는 논란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 본사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조사단은 두 회사의 해명과 조사 내용을 정리해 방통위 전체회의에 보고한다. 조사 결과는 다음 달 초쯤 발표될 예정이다. 방통위의 조사 결과는 이번 집단소송의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진욱 기자 coolj@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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