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2시경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고급 아파트단지에서 남루한 차림의 10대 소녀가 경비원 B 씨에게 발견됐다. 소녀의 옷은 로빈슨 크루소처럼 다 해진 상태였고 오랫동안 씻지 못한 듯 몸에서는 심한 악취가 풍겼다. 2∼3cm나 자란 손톱은 무엇을 긁었는지 몇 개가 깨져 있었고 까맣게 때가 끼여 있었다.
B 씨는 소녀가 당시 단지에서 잇따라 발생한 도난 사건의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1년 전부터 각 층에 있는 창고에 놓인 물건과 집 앞에 놓인 신문이나 우유가 사라지는 일이 종종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소녀는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인 A 양(14)이었다. A 양의 아버지는 현재 금융관련 범죄로 복역 중이며 A 양은 아버지의 부인인 유모 씨(46)와 함께 살고 있었다. 경찰은 일단 A 양이 유 씨를 피해 집을 나와 단지 안에서 떠돌며 생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 양은 태어났을 때부터 2008년 초까지 경기 부천시에서 보모 김모 씨(70) 손에 키워졌다. A 양의 아버지는 매달 생활비만 보냈으며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찾아왔다. 2008년 2월경 감옥에 가는 남편의 부탁을 받고 A 양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유 씨는 김 씨로부터 A 양을 넘겨받아 자신이 사는 이 아파트로 데리고 왔다. 유 씨에게는 이미 1남 1녀가 있었다.
경찰은 “A 양이 유 씨의 자녀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방황하다 결국 지난해부터 낮에는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주민센터 등을 돌아다니고 밤에는 아파트 창고로 돌아와 잠을 자는 ‘창고살이’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 양이 살았던 창고는 일종의 공용공간으로 아파트에서 사용하는 각종 집기들이 보관돼 있었으며 크기는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정도였다. A 양을 발견했던 경비원 B 씨는 “A 양이 배가 고파 각 가구에 배달된 우유 등을 먹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A 양은 강남으로 이사 온 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지난해 중학교에는 진학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A 양은 유 씨가 가끔씩 창고로 가져다 준 음식으로 생활을 했으며, 용변은 창고 안에 있던 밥솥에 본 뒤 옥상에 버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창고 안에서는 밥솥과 생수통이 발견됐다.
경찰은 일단 A 양을 큰아버지에게 맡긴 뒤 유 씨의 학대 혐의에 대해 조사 중이다. 하지만 A 양은 “창고가 편해 스스로 집을 나온 것”이라며 구체적인 학대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도 경찰에서 “매를 든 적은 있지만 학대는 하지 않았다”라며 “집에 못 들어오게 한 적도 없고 오히려 아이가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이를 말리지 않은 것이 죄라면 앞으로는 더 조심해서 잘 키우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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