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1년]살아남은 자들에겐 끝없는 ‘고통의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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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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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 없인 못자고… 잠들면 산화한 전우 모습이…

“잊지 않겠습니다” 천안함 폭침 1년을 앞두고 대학생 추모위원회가 서울 청계광장 앞에 마련한 46용사 및 고 한주호 준위 분향소에서 어린이들이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헌화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잊지 않겠습니다” 천안함 폭침 1년을 앞두고 대학생 추모위원회가 서울 청계광장 앞에 마련한 46용사 및 고 한주호 준위 분향소에서 어린이들이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헌화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금 모두들 힘들겠지만 우리는 분명 순간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이 고난의 터널을 벗어난다면 우리에게도 행복한 일들이 생길 거야. 그리고 하늘나라에 있는 천안함 전우들아. ‘보고 싶다’라는 말밖에 나오지가 않아. 현충원 비석에 적힌 너희들 이름을 바라보다 생각했어. 지금이라도 이름만 부르면 모두들 금세 자리를 박차고 나올 것만 같은데’라고….”

‘천안함 폭침’ 1년을 앞둔 21일 생존 장병 가운데 가장 큰 부상을 입었던 신은총 씨(25)가 동아일보를 통해 천안함 동료들에게 보낸 메시지다. 폭침과 함께 부러졌던 신 씨의 무릎은 매일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 부상의 후유증으로 수면제에 의지하고 있지만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의 많은 사람이 그의 쾌유를 기도하지만 그날의 충격은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다. 신 씨는 “(사건 이후) 친한 사람조차 기억을 잘 못할 때가 많다”며 “심지어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 다른 사람에 대한 기억과 뒤섞여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천안함 폭침 1년을 맞아 동아일보는 당시 천안함에 승선했다 살아남은 장병들을 만났다. 이들은 그때 겪었던 처참한 고통의 기억을 뒤로하고 일상을 되찾으려 애쓰고 있지만 천안함 폭침이 안겨준 고통은 이들에겐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현재진행형이다.

○ 최원일 함장 “하루빨리 다시 바다로 나가고파”

지난해 3월 26일 폭침 당시 천안함 함장이었던 최원일 중령은 충남 계룡시 해군본부에 있는 해군역사기록관리단에서 9개월째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최종적으로 징계유예 처분을 받기까지 조사와 통원치료를 받느라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지난해 11월 29일 국방부는 최 중령에게 전투준비 태만 및 지휘 감독 책임을 물어 징계유예 처분을 내렸다.

최 중령과는 21일 통화가 이뤄졌으나 “아직은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만 말했다. 그때의 아픔이 채 아물지 않은 탓에 지금으로선 어떤 얘기도 하기 어려운 듯했다.

지난해 12월 안부차 통화했을 때 그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대도) 나가서 그보다 더 잘할 순 없을 테지만…하루빨리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과 아내, 부모님이 모두 많이 힘들었다. 전우들을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죠”라는 각오도 밝혔다.

현재 기록물 연구위원으로 해군과 관련된 모든 사료와 기록물을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된 최 중령은 자신의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천안함 폭침사건을 기록하는 일도 하게 돼 있다.

부함장이었던 김덕원 소령은 중견간부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필수 코스인 해군대학 학생장교 과정을 밟고 있다. 사건 직후 인사이동 때 해군본부 국제해양력심포지엄 태스크포스로 옮긴 김 소령은 각종 해군행사 기획업무를 맡았다. 최 중령과 김 소령은 올해 초 발족한 천안함 재단에서 지원받은 금액을 전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 “숨진 동기들 아직도 꿈속에 나타나”

천안함은 처참한 모습으로 두 동강이 났지만 그날 살아남은 장병들의 가슴속에서 여전히 파도를 헤치며 달리고 있다. 아직 군에 남아 있는 현역 장병들은 ‘천안함 장병’이라는 직함으로 충남 천안시와 경기 화성시 에덴의 집 등 복지시설에 봉사를 나간다. 최근 한 현역 장병이 천안의 한 소녀가장에게 천안함 장병 이름으로 100만 원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소녀가장은 이 돈으로 고등학교 입학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제대한 예비역들은 어느새 9명으로 늘었다.

“틈만 나면 구토하던 것도 없어지고 살도 붙었고, 가끔 꿈에 죽은 동기들이 찾아오긴 하지만…시간이 지나다 보니 많이 괜찮아졌어요.”

지난해 8월 전역한 해상병 546기 통신병 최성진 씨(22)는 최근 경남 창원의 자택 부근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최 씨는 “1월 천안함재단 멘터링사업 참여차 평택으로 올라가 오랜만에 생존 장병들을 다 만났는데 일상적인 대화만 오갔다. 사건과 관련해서는 누구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제대한 지 한 달 된 병기병 안재근 씨(23)는 “선임이었던 김효형 하사와 계속 함께 지낸 것이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동기였던 고 김선명 병장 아버지의 응원도 큰 힘이 됐고 재학 중인 계명대에서는 등록금 전액을 총장특별장학금으로 지원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고맙고 힘이 나지만 아직도 악몽을 꾸고 있다고 한다.

“죽은 애들이 나와 ‘내가 여기서 이런 자세로 여기서 죽었어’라고 말한 뒤 사라져 버리곤 해요. 배에 물이 차면서 가라앉는 모습도 자꾸 나오고요.”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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