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그곳엔 ‘서울의 기억’이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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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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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타임캡슐
20∼400년 후 열어보게… 시내 20여곳 땅속에 묻혀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터에/새날이 와/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내가 죽는 날/그 다음 날…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한 마리 새….”

노원구 상계동에 위치한 ‘천상병 테마공원’은 시인 천상병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2009년 만들어졌다. 이 공간에는 천 시인의 대표 시 중 하나인 ‘새’가 적힌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 옆에는 그의 대표작인 ‘귀천(歸天)’ 시비(詩碑)도 있다. 세상을 떠난 지 18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완전히 새처럼 날아가진 못했다. 시비와 기념비 밑에 그가 쓴 편지와 일기, 시낭송 CD, 즐겨 듣던 라디오, 즐겨 마시던 맥주와 막걸리 등 유품 70점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노원구는 2009년 천상병 시인을 기리기 위해 ‘천상병 타임캡슐’을 만들어 이곳에 묻었다.

○잊고 있던 발밑 서울 타임캡슐

노원구 관계자는 “천 시인이 노원구 상계동에 잠시 살았던 것을 기리기 위해 공원을 만들고 그 밑에 타임캡슐을 만들어 묻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기념식’으로만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매년 10월 이곳에서는 ‘천상병 시인 기념 사업회’ 주최로 시낭송 행사, 각종 문화 공연 등이 열린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념비 한구석에 20여 편의 시 낭송이 자동으로 나오는 기계도 설치했다. 캡슐 개봉일은 시인 탄생 200주년이 되는 2130년 1월. 캡슐 봉인을 뜯을 때까지 노원구는 기념행사를 계속 열 계획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 그 밑에는 역사를 품은 타임캡슐이 깊은 겨울잠에 빠졌다. 최근 서울시가 조사한 시내에 묻힌 타임캡슐 개수는 20여 개. 이 중 서울시 및 산하 기관, 자치구가 관리하는 것은 6개다. 그 외는 기업 및 학교, 국가 기관 등에서 관리하고 있다.

서울시 타임캡슐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중구 필동 한옥마을에 묻힌 ‘서울 천년 타임캡슐’이다. 1994년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해 서울시는 보신각종을 본뜬 캡슐을 만들고 서울을 상징하는 문물 600점을 담았다. 1994년 최고 음반 판매를 기록한 가수 김건모의 2집 CD, 쉰들러리스트 영화 CD 같은 문화상품부터 소형 카세트, 우황청심원, 버스 토큰 등이 캡슐 안에 담겨 있다. 봉인 해제는 400년 후인 2394년이다.

이후 타임캡슐 제조 열풍이 일었다. 1995년 대검찰청은 근대 검찰제도 도입 100주년을 기념하는 ‘검찰 타임캡슐’을 만들었다. 두산그룹은 1996년 창업 100주년을 기념하며 회사 역사자료들을 넣은 타임캡슐을 종로구 종로4가 광장시장 앞에 묻었다. 이 중 검찰 타임캡슐은 가장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개봉되는 캡슐(2395년)로 알려졌다.

○‘스토리텔링’ 콘텐츠로

최근에는 자치구 및 서울시 산하기관에서도 타임캡슐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서울대공원은 개원 100주년을 맞아 동물원 내 인기 프로그램인 ‘돌고래쇼’ 동영상부터 직원 명함, 역대 공원장 사진을 담은 타임캡슐(2109년 개봉)을 만들었다. 양천구와 은평구는 구청 건립 20주년, 30주년을 각각 기념하기 위해 제작했다. 송파구는 태극기, 송파구민의 독도수호결의서명 등을 담은 ‘독도 사랑 타임캡슐’을 만들어 독도경비대에 전달했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400년 이상 잠들어 있어야 하는 만큼 부식을 막는 것이 관건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부분 스테인리스 특수강으로 몸통을 만들고 내부에 세균 번식을 막아주는 아르곤 가스를 넣어 진공처리를 한다”고 설명했다.

내용 측면에서 필요한 것은 ‘사후 관리’다. 그동안 타임캡슐 정책은 매설 기념식 이후 이렇다 할 내용이 없었다. 백호 서울시 행정국장은 “당장은 열어볼 수 없지만 고고학적 차원에서 귀중한 자료”라며 “테마별 타임캡슐 ‘스토리텔링’ 자료집 발간, 각종 기념행사 개최 등 시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릴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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