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대에 가려진 ‘추한 音大’

  • Array
  • 입력 2011년 2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교수의 폭언 폭행… 콘서트 입장권 강매… 스승의 날엔 명품 요구

서울의 한 명문대 음대에 다니던 A 씨는 2년 전 학교를 그만두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지도교수의 폭언과 폭행, 콘서트 입장권 강매, 명품 선물 요구 등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A 씨만 경험한 게 아니다.

최근 서울대는 음대 B 교수가 학생들을 오랫동안 구타해 왔다는 내용의 e메일 진정서를 받고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B 교수가 10여 년간 자신이 참가하는 음악회에서 박수 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일렬로 세운 채 때리거나, 콘서트 입장권을 강매한 정황이 포착됐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음악계의 무대 뒤에는 오랜 기간 숨겨오고 쉬쉬해온 고질적인 병폐가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 음대 교수, 학생에게 폭언, 폭행까지

경기도 내 4년제 음대 성악과를 나온 C 씨는 아직도 학부시절 지도교수를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진다. C 씨는 교수와의 일대일 레슨 때나 수업 중 수시로 폭언에 시달렸다. 그는 “지도교수가 레슨 때 ‘이렇게 형편없는 실력으로 노래 왜 하느냐. 목청은 좋으니 노래하지 말고 배추장사를 하라’고 수시로 폭언을 했다”며 “가르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모멸적이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음대에 재학 중인 D 씨(22)는 “이번에 문제가 된 B 교수가 학생들을 때린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학생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고 말했다. D 씨는 “전통적으로 위계질서가 강한 성악과나 관악기를 다루는 기악과에서는 선배들이 기합 준다며 후배들을 때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 입장권 강매, 스승의 날 명품 선물 요구도

지도교수의 콘서트 입장권을 수십 장씩 사고 교수에게 고가의 선물을 하는 관행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D 씨도 한 장에 3만 원인 지도교수의 콘서트 입장권을 60만 원어치나 샀다. 그는 “돈 있는 애들이야 부모님이 대신 내주지만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은 티켓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E 씨(28·여)는 “지도교수와 일대일 레슨을 받는 도중 ‘표가 몇 장이나 필요하냐’고 묻는데 도저히 ‘2장’이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며 “억지로 10장 이상은 사서 친구들에게 나눠 준다”고 털어놨다. C 씨는 “성악과 교수들의 경우 공연에서 아리아를 불렀는데 박수 쳐주고 환호하는 사람이 없으면 안 좋은 소문이 퍼지기 때문에 학생들을 동원해 박수부대로 세운다”고 전했다.

스승의 날 고가의 선물을 하는 관행도 학생들에게는 부담이다. 숙명여대 음대에 재학 중인 F 씨(24·여)는 지난해 스승의 날 같은 교수에게 레슨을 받는 학생 5명과 돈을 모아 지도교수에게 50만 원대 명품 지갑을 선물했다. 그는 “명절이나 스승의 날이면 늘 백화점에 가서 수십만 원대 선물을 샀는데 학생으로선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악기 장사’도 만연된 문제다. E 씨는 “지도교수가 특정 제조사의 어떤 악기가 좋다고 하면 교수 눈치 때문에 학생들로서는 안 살 수가 없다”며 “교수 소개를 받고 사는데도 악기상에서 다른 가게보다 훨씬 높은 값을 부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 좁은 음악계…교수 눈 밖에 나면 끝

이런 문제가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교수와 선배의 힘이 막강한 우리 음악계의 구조 때문이다. 학생 수는 많고 오케스트라 등 취업 자리는 워낙 좁다 보니 담당 교수나 고참 선배에게 한 번 찍히면 사실상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가 어렵다. 실력도 필요하지만 ‘누구의 제자’라는 신분이 더 크게 작용하는 현실에서 지도교수의 말은 곧 ‘법’이 된 지 오래다.

지도교수의 유명 콘서트는 물론이고 소규모 공연이나 심지어 해당 교수의 개인적인 행사에도 수십 명의 제자가 찾아오는 것도 다른 분야에서는 보기 힘든 음악계만의 오랜 관행 중 하나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김모 씨(26)는 “최근 진정서로 문제가 된 B 교수를 내부 고발한 학생이 누구인지 이미 음대에 소문이 난 상태”라며 철저하게 익명을 요구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