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법 공백 틈타 ‘밤샘 천막농성’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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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신고 ‘24시간’-집회용품 ‘천막’-장소는 ‘인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로 1일부터 야간 옥외집회가 허용된 이후 하나 둘씩 등장하기 시작한 ‘천막 밤샘 농성’으로 경찰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야간집회를 금지할 때는 천막을 세우고 농성하더라도 저녁이 되면 불법집회가 되는 만큼 철거할 수 있었지만, 야간집회 허용 이후부터는 이런 법 규정을 적용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16일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13일부터 전북 전주, 경남 창원, 인천, 광주, 대전, 울산 소재 지방노동청 또는 지청 앞 인도에서 ‘노동조합법 재개정 및 반노동정책 규탄’ 구호를 내걸고 무기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건너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천막을 치진 않았지만 햇빛 가림막을 친 채 농성 중이다. 또 충남 서산, 경북 구미, 창원에서는 분규 사업장의 노조가 회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천막농성을 위해 24시간 집회신고를 한 상태다. 농성이 24시간 계속되면서 집회를 지켜봐야 할 경찰로서는 업무 부담이 상당히 커진 셈.

야간집회 허용 전에는 경찰이 천막농성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상 야간집회 금지 조항을 적용해 해산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집시법 개정 무산으로 7월부터 사실상 24시간 집회가 가능해져 경찰이 이를 막을 근거가 없어졌다. 인도를 포함한 도로와 공원에서 천막농성을 벌일 경우 사후에 도로교통법 또는 공원관리법상 무단점용으로 고발해 과태료를 물릴 순 있지만 집시법상으로 이를 금지할 규정은 없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에도 천막농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집시법 개정안 처리 불발로 경찰이 천막농성을 저지할 수 없게 됐다”며 “구미의 한 분규 사업장 앞에는 노조의 농성용 천막이 30여 채나 설치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지자체에서 행정지도에 적극 나서주면 좋겠지만 6·2지방선거에서 야당 지자체장이 대거 당선되면서 이런 협조 요청도 쉽지 않게 됐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급한 대로 집회용품으로 ‘천막’을 신고하는 경우 이를 통제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다. 천막을 시위용품으로 신청하면 공원관리법이나 도로교통법 위반이 될 수 있는 만큼 자제를 요청하는 수준이라는 것. 경찰 관계자는 “천막 밤샘농성을 막을 수 있는 관련 규정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경찰 내부에서 천막농성 허용 여부와 관련해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만 천막농성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9월 정기국회를 계기로 천막농성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국회 앞에는 각종 민원을 제기하는 단체들의 ‘밤샘 농성 텐트촌’이 만들어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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