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농성서 잠행농성으로?

  • 입력 2008년 10월 30일 03시 03분


민노총 이석행 위원장 등 ‘쇠고기 수배’ 6명 잠적

경찰 50여명 포위 무색 “종교시설이라 검문 한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도피생활을 해온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국민대책회의)’ 핵심 관계자들과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 등 ‘촛불집회 수배자’ 6명이 잠적했다.

경찰은 29일 오후 1시 반경부터 촛불집회 수배자들이 보이지 않자 조계사 측의 양해를 얻어 조계사 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등 주요 시설물들을 대상으로 수색을 펼쳤으나 이들의 행적을 찾지 못했다.

잠적한 수배자 중 박원석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한용진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권혜진 흥사단 사무처장, 백성균 미친소닷컴 대표, 김동규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 등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올해 7월 초부터 조계사에서 지내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수배를 받아 온 이 위원장은 지난달 22일 조계사로 들어갔다.

수배자 6명이 동시에 사라졌다는 점에서 경찰은 이들이 조직적으로 조계사를 빠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29일은 초하룻날인 음력 10월 1일이라 평소보다 법회가 많았고, 조계사를 찾는 신도들도 많아 경내가 어수선해 도피하기 좋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공동상황실장은 조계사를 빠져나온 뒤 국민대책회의 상황실로 전화를 걸어 “조계사를 빠져나와 잠행 농성에 들어간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는 “박 실장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조계사를 떠나 잠행 농성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 위원장은 11월 9일 열리는 노동자 대회에 참가해 대회사를 할 계획이다. 그러나 자진 출두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이 위원장은 조계사 측이 그동안 세 번이나 나가 달라고 말해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수배자들의 잠적을 놓고 경찰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총 150여 명의 사복 경찰관을 조계사 주변에 배치해 50명씩 3교대로 24시간 수배자들의 움직임을 감시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수배자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이들은 24일 오전 김광일 국민대책회의 행진팀장이 조계사를 빠져나간 것도 몰랐다. 경찰은 수배자들이 정확히 언제, 어떻게 도주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조계사가 사찰인 데다 총무원장 지관 스님 차량 검문으로 곤욕을 치렀기 때문에 그동안 제대로 검문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경찰은 검거 전담팀을 구성해 달아난 수배자들을 찾고 있고, 수배자들이 검문 대상이 아닌 조계종 업무용 차량(총 49대)을 이용해 빠져나갔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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