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이청준『당신들의 천국』

  • 입력 2007년 2월 27일 03시 03분


환자들만의 천국에선 행복할 수 있을까요

초원의 살육전에서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한 동물들이 외딴 숲 속에 모였습니다. 그곳은 나무도 잘 자라지 않고 햇빛도 잘 비치지 않아 동물들이 살기를 꺼리는 곳이었습니다. 싸움에서 승리한 동물들이 진 동물들을 이곳으로 몰아낸 것이죠.

그들이 싸움에서 진 대가(代價)는 혹독했습니다. 그들은 이마 위에 ‘패배자’라는 낙인을 찍은 채 살아야 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무력함과 열등함을 배워서는 안 되기에 어린 새끼들과도 함께 살 수 없었습니다. 그들처럼 싸움에서 질 무력한 동물들은 태어나봤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새끼를 낳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그들은 힘센 동물들의 지배와 감시를 받으며 살아갔습니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반항을 하려 했다가는 보복이 따를 뿐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이 숲을 다스리기 위한 힘센 동물이 나타났습니다. 동물들은 이번에도 힘센 동물이 그들을 무섭게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새로 나타난 지배자는 사나운 맹수가 아닌, 무척 온순해 보이는 사슴이었습니다. 사슴은 큰 눈을 껌뻑이며 숲 속의 동물들을 연민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잘 보살펴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숲 속의 동물들은 조금 의아해했지만, 사슴 역시 다른 맹수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눈빛을 외면했습니다.

사슴은 숲 속의 동물들이 삶의 의미를 찾도록 그들의 삶의 터전인 숲 속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로 했습니다. 이 숲은 높은 산에 가려 온종일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았고 그래서 풀이나 열매들도 잘 자라지 않았습니다. 사슴은 이 음침한 숲에 빛을 드리우고자 산을 옮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숲 속의 동물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반항하지 않고 산에서 바위와 흙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사슴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길고 지루한 시간들이 흘러갔습니다. 동물들은 무의미한 노동을 하였습니다. 바위에 깔려 죽은 동물들도 있었고 고된 노동에 지쳐 스스로 벼랑에 몸을 던진 동물들도 있었습니다. 참기 힘든 시간들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죠. 일을 하다 잠시 쉬던 동물들은 눈앞의 풍경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의 숲 속에 가늘게나마 햇빛이 비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어느새 정말 산을 옮기고 있었던 거죠. 동물들에게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된 노동의 고통을 참아내며 최선을 다해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삶의 목표를 세워 준 사슴을 향해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사슴은 동물들의 생기 있는 움직임을 보며, 자신의 생각대로 동물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산을 모두 옮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동물들의 숲 속에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힘센 동물들은 이제 그 숲을 빼앗고 싶어 했습니다. 사슴은 약한 동물들이 힘센 동물들에게 숲을 빼앗기지 않게 하기 위해 힘센 동물들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막기로 결심했어요. 그렇게 해서 약한 동물들만의 숲을 만들기로 말입니다.

동물들은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슴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숲을 산으로 둘러쌓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산을 쌓으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조금 넉넉히 먹을 풀과 열매가 필요했을 뿐이었습니다. 그걸 먹고 힘을 길러 다시 초원으로 나가고 싶었을 뿐이었죠. 하지만 사슴은 약한 동물들이 힘센 동물들을 이겨낼 수 없기에, 그들 스스로만의 공간에서 살아가길 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사슴은 자신이 약한 동물들의 천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숲 속에 갇혀 살아야 했던 동물들에게 그곳은 감옥과 같았습니다. 사슴은 약한 동물들의 처지를 겪어 본 적이 없어서 동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결국 동물들은 사슴에게 실망을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진심을 알아줄 것 같았던 사슴이 자신들을 오히려 고립시키고, 그들이 힘센 동물보다 약하다는 것을 더욱 크게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슴이 만든 천국은 ‘약한 동물들의 천국’이 아닌, 사슴과 같이 강한 자들을 위한 ‘그들만의, 당신만의 천국’일 뿐이었죠. 동물들에게 사슴은 언제까지나 ‘우리’가 아닌 ‘당신’일 뿐이었으니까요.

‘당신들의 천국’은 한센병 환자들에게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어 주려고 했던 한 병원 원장의 이야기입니다. 일반인들에게 혐오감의 존재였던 그들이 그 ‘천국’ 속에서는 차별 없이, 온전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그들만의 섬은 만들어졌을지 몰라도 그들의 행복은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왜 ‘환자들의 천국’은 완성될 수 없었던 것일까요? 그는, 한센병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할 수는 있었지만 그 병을 앓아 보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원장 역시 힘센 사슴처럼, 나병에 걸린 사람들의 진심을 알지 못한 채 자기가 마음대로 그들의 천국을 그려낸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결국 그는 그들의 천국이 아닌, 그 자신만이 만족할 수 있는 천국을 만든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은 무엇이 ‘천국’이라고 생각하나요? 혹시 지금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천국에 의심이 생기는 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천국을 찾는 길이 쉽지 않듯, 이 책을 읽어내는 일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나의’, ‘우리들의 천국’을 만들고 싶다면, 포기하지 말고 읽어 보세요.

박진선 학림 필로소피 논술 전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