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성적은 사교육비順이 아니다

  • 입력 2005년 9월 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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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부모의 소득 수준과 학력에 따라 비례한다는 최근의 한 연구 결과가 교육계에 적잖은 파장을 미치고 있다.

이제 부자가 아닌 사람은 밥상머리에서 “누굴 닮아서 이렇게 공부를 못하니?”라는 말도 못하게 생겼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교육이 계층 재생산의 통로가 되고, 교육의 결과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좌우되는 사회는 봉건 세습사회나 다름없다”며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이 연구 결과가 우리 사회의 소득 및 지역 간 교육 격차의 단면을 보여 준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소득에 따라 성적에 차이가 나는 것이 한국만의 현상이며, 전교조의 주장대로 사교육비 액수가 가장 큰 변수일까?

소득이 높으면 사교육비 지출이 높을 수 있다. 하지만 최저생계 수준의 생활을 하면서도 무리해서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훨씬 많다.

그뿐인가. 부자 중에는 상속을 받거나 부동산 투기를 한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대체로 우수한 두뇌와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즉 고소득자는 학습에 유리한 유전자를 물려받았거나 좋은 교육환경 속에서 가족의 높은 기대와 관심을 받으며 자랐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이런 요인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사교육비 차이가 성적 격차로 직결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추론이다.

사실 한국은 교육을 통한 부의 대물림이 심하다는 자체 평가와는 달리 국제적으로는 교육의 형평성이 가장 높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몇 달 전 방한한 베리 맥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국장도 “학업성취도 국제비교(PISA)를 보면 한국은 학생의 성적이 부모에 따라 결정되는 비율이 14.2%로 OECD 평균 20.3%보다 훨씬 낮다”고 칭찬했다. 다만 높은 성취도에 비해 만족도가 낮다는 점이 그가 지적한 문제점이었다.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성적에 관한 이 연구 결과를 내놓은 고려대 김경근(金炅根) 교수도 요즘 난처하다고 한다. 부유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자녀의 성적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사교육비 때문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 성적 격차의 요인에는 유전적 요인, 부모의 교양 수준 등 소위 ‘문화자본’의 영향이 더욱 크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최근 국내에도 발간된 ‘괴짜경제학’의 저자 시카고대 스티븐 레빗 교수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사회통념 가운데는 잘못된 것이 너무 많다고 설파한다. 미국에서도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의 점수는 부모의 소득에 정비례한다. 하지만 그는 미국 교육부의 ‘아동 성취도 발달에 관한 장기적 연구(ECLS)’라는 대규모 데이터를 활용해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박물관에 가거나 매일 책을 읽어 주는 등 그동안 자녀교육에 유용하다고 알려진 행위들이 실제로 자녀의 성적과 무관하다는 것을 통쾌하게 입증하고 있다.

미국과 우리의 현실이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녀의 성적은 사교육에 돈을 많이 쓰느냐, 아니냐는 한 가지 요인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정성희 교육생활부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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