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비장애학생 공동캠프 “손 마주 잡으니 세상이 따뜻”

  • 입력 2005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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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지리산 자연휴양림에서 열린 ‘장애·비장애 청소년 통합캠프’에서 청소년들이 할아버지 숲 해설가에게서 나무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지리산=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12일 지리산 자연휴양림에서 열린 ‘장애·비장애 청소년 통합캠프’에서 청소년들이 할아버지 숲 해설가에게서 나무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지리산=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이 다 힘들어. 하지만 보람도 있어. 어려움을 하나씩 극복해 가기 때문이야.”

시각장애인인 임복희(19·여·광주 세광학교) 씨의 말에 박진주(14·경남 진주시 삼현여중 1학년) 양은 크게 감동을 받은 표정이었다.

함께 만든 새집을 임 씨가 나뭇등걸에 고정시키는 것을 도우면서 박 양이 말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는 것, 열심히 산다는 것 그리고 좌절하지 않는다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애인과 짝이 되어 이틀을 보낸 박 양은 자신이 부쩍 커진 느낌이 들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할아버지와 손자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숲 속의 학교가 열렸다. 사단법인 숲생태지도자협회(회장 지성희 성공회 신부)가 10∼12일 지리산 자연휴양림에서 연 ‘장애·비장애 청소년 통합캠프’가 그것이다.

올해로 두 번째인 이 행사는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이 후원해 경남 함양군 지리산자연휴양림과 강원 횡성군 청태산자연휴양림에서 이달 초부터 3차례에 걸쳐 열렸다.

행사는 오감(五感)과 마음으로 만나는 세상이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지를 체험해 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아울러 장애인과 비장애인, 노인 세대와 청소년 세대가 숲 속에서 어울림으로써 계층 간 통합을 이루어 나가자는 뜻도 있다.

모채은(11·전북 전주시 송북초교 4학년) 양은 “점자 배우기를 통해 장애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단순한 불편함이라는 사실을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숲 속 활동도 재미있다. 오감활동은 청진기로 나무의 수액이 뿌리에서 올라가는 소리를 듣는 것부터 잎사귀 살펴보기, 씨앗 이야기, 곤충과 식물 관찰하기, 야생화 보고 느끼기 등으로 꾸며졌다.

숲해설가 유도남(64·광주 한울시니어클럽 소속) 씨는 “만난 지 하루 만에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이처럼 밝게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지리산=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forum@donga.com

▽몽골 청소년 90여명, 인제 내린천서 래프팅▽

지난해 한국에 온 몽골 소년 잠스랑(11)은 ‘바캉스’가 뭔지 모른다.

매일 잠스랑이 깨기도 전에 공장에 나가 늦은 밤에 돌아오는 엄마. TV를 보는 게 놀이의 전부인 잠스랑은 엄마의 손을 잡고 놀러 간다는 생각은 꿈도 꿔 본 적이 없다. 1999년 한국으로 온 엄마와 몇 년을 떨어져 지낸 걸 생각하면 함께 사는 것만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잠스랑은 요즘 누가 ‘엄마’란 말만 꺼내도 덜컥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고인다. 불법 체류자 신분이던 엄마는 5월 단속에 걸려 강제 출국됐기 때문. 엄마는 “금방 돌아오마”라고 약속했지만 홀로 남겨진 이별을 받아들이기엔 11세의 나이가 너무나 버겁다.

그런 잠스랑이 생전 처음 친구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다.

11일 강원 인제군 인제읍 고사리 내린천 상류. 사회봉사단체 ‘사랑밭’이 주최하고 레저이벤트업체인 ‘레저스’가 후원한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행사 ‘2005 희망의 래프팅’에 참여한 것.

이날 내린천에는 잠스랑이 있는 재한몽골인학교 말고도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부천외국인노동자센터 등에서 8세에서 19세까지 90여 명이 모였다. 우즈베키스탄과 페루 출신 몇 명을 제외하면 모두 몽골에서 온 아이들이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장소에서 잠스랑은 처음엔 웃음이 잘 나오지 않았다. ‘엄마랑 함께였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옆의 일힘바야르(16)를 보면서 울음을 꾹 참았다. 형 역시 지난해 아버지가 강제 출국돼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의젓하게 자신을 돌봐줬다.

다른 형들이나 누나도 얼굴 표정이 굳어 있긴 마찬가지. 이들은 부모들처럼 자신들도 대부분 단기비자가 만료된 ‘불법 체류자’ 신분이기 때문에 낯선 환경에 놓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의 이은하(李銀夏·여) 지역복지팀장은 “2002년 3월부터 불법 체류 중인 아이들도 학교를 다니게 해주면서 직접적인 단속은 없어졌지만 한국 아이면 훈방될 작은 법규 위반에도 강제출국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이 예민하다”고 말했다.

거칠고 냉담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바뀐 건 내린천에 들어가 준비운동을 하면서부터. “비가 내리니 조심해야 한다”며 세세히 챙겨주는 강사 아저씨들의 마음이 전달됐다. 딴 짓만 일삼던 암바트(15)도 얼굴에 물을 끼얹는 강사의 친근한 장난에 웃음보를 터뜨렸다.

재한몽골인학교의 보르마(49·여) 교장은 “아이들은 누가 자기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금방 안다”면서 “한국인들이 모두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해 그런 것이지 조금만 잘해주면 금방 친근하게 대한다”고 귀띔했다. 늦은 저녁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잠스랑은 오랜만에 곤히 잠들었다. 꿈속에서 엄마라도 만났는지 얼굴엔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인제=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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