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대이동]<上>효율성-균형발전 원칙 지켜졌나

  • 입력 2005년 6월 27일 03시 11분


코멘트
176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결정하면서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국토 균형발전과 재도약이다. 현재 346개 공공기관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정부 방침에는 수긍할 점도 적지 않다.

하지만 24일 발표한 이전 계획을 보면 이런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지 적잖은 의문이 든다. 정부가 제시한 △균형발전 △효율성 △기관 의견 반영 등 3대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함께 있어야 할 기관이 지역 안배를 위해 분산 배치된 사례가 눈에 띄고, 향후 기초자치단체끼리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다 재차 찢어지는 경우도 예상된다.

○ 비슷한 업무가 다른 지역으로

공공기관 이전지역을 결정하는 데는 지역산업과 연관성이 큰 기관과 중소기업을 묶어 지역 특화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 반영됐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원칙이 깨진 배치가 적지 않다.

한국감정원은 당초 토지공사와 함께 국토개발관리군(전북)으로 묶여 있었다. 그러나 토지공사는 전북으로, 한국감정원은 대구로 찢어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과 함께 건강생명군(강원)으로 분류됐던 국민연금관리공단은 혼자서만 경남으로 가게 됐다.

특히 같은 에너지안전군으로 묶여 있던 기관 중에서 가스공사는 대구,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충북, 국립방재연구소는 울산으로 쪼개졌다.

노동복지군에서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이 대구로, 근로복지공단은 울산으로 가게 됐다.

당초 정보기술(IT)진흥군(전남 또는 충북)에 속했던 한국전산원은 기타 이전기관으로 바뀌어 대구로 자리를 옮겼다.

최막중(崔莫重·환경계획학)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지역안배와 정치논리로 이전 지역을 선정하다가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 같다”며 “이런 지역안배가 선택과 집중에 따른 국가 경쟁력 강화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불균형 해소 원칙 지켜졌나

공공기관 이전의 최대 목표는 국토 균형발전.

이를 위해 재정자립도, 인구증가율 등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 유리하도록 차등 배치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광역시보다는 도가 혜택을 더 받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배치된 공공기관의 수, 본사 인원, 지방세 납부액 등을 비교 분석해 보면 이 원칙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대표적인 곳이 강원과 전남. 강원은 관광공사를 포함해 13개 기관을 유치했지만 이들 기관이 지난해 납부한 지방세는 34억2300만 원에 불과하다. 전남은 농업기반공사와 농수산물유통공사 등 15개 기관을 유치했지만 이들 기관의 지난해 지방세 납부액은 34억500만 원에 그쳤다. 이는 광역시 가운데 가장 적은 울산(11개 기관·42억1100만 원)보다도 적은 규모다.

전남보다 재정자립도가 약간 나은 전북은 토지공사 등 13개 기관을 가져갔는데 이들이 지난해 낸 지방세는 176억1200만 원으로 전남보다 5배가량 많다. 광주에 한전을 배치했기 때문에 전남이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박상우(朴庠禹) 국장은 “공공기관의 세수나 인원 외에 지역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도 반영했기 때문에 지자체가 체감하는 것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며 “기관 배치 선정기준을 조만간 공개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 무시된 기관 의견

이전 기관의 희망을 반영하겠다는 배치 기준은 ‘립 서비스’에 그쳤다. 정부가 올해 4월 이전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견조사 결과와 실제 배치 결과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달 일부를 공개한 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면 18개 기관 가운데 1순위 희망지로 배치된 기관은 자산관리공사(부산)와 농업과학기술원(전북) 2곳에 불과하다. 관광공사(강원) 등 3개 기관은 2순위로, 토지공사(전북) 등 3개 기관은 3순위 희망지로 결정됐다.

반면 한국전력 주택공사 석유공사 등 10개 기관은 희망지역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배치됐다.

대부분의 기관이 수도권이나 행정도시와 가까운 곳을 희망지로 꼽아 모두 들어줄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